“군에 가기 전엔 그저 키 큰 학생이었죠. 키가 187㎝거든요. 동대문에 옷을 사러 많이 다니긴 했는데 그렇다고 모델이 꿈이었던 적은 없었습니다. 적어도 입대하기 전까지는 말이죠.”
충남 부여 출신으로 선교사가 되고 싶어 장신대에 입학한 그의 인생을 바꾼 사람은 군대 후임이었다. 의상디자인을 전공한 후임은 범상치 않은 체격을 가진 선임에게 ‘모델’의 세계를 소개해줬다. 군인 둘이 마주 앉아 패션잡지를 보며 모델의 세계에 대해 이야기했던 게 그를 지금의 자리로 인도한 출발점이었다.
2014년 제대한 후 그의 마음에는 모델에 대한 열망이 가득 차 있었다. 프로필 사진을 들고 유명하다는 모델 에이전시의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어느 누구의 소개도, 특별한 경력도 없었지만 그에겐 모델이 되고 싶다는 열망이 있었다. 그의 비전을 엿본 한 대형 에이전시가 그를 발탁했다.
‘신입 모델’의 일상은 좌충우돌의 연속이었지만 허드렛일도 마다하지 않는 성실함이 큰 무기였다. 우여곡절 끝에 2015년 2016 봄·여름 시즌 서울패션위크에 모델로 데뷔했다. 평소 존경했던 디자이너 김서룡의 쇼에서였다.
“어리둥절했죠. 그런데 그때 또 다른 도전을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어차피 늦게 시작한 일인데 큰물에서 활동하자는 생각만으로 뉴욕행 비행기 티켓을 샀고 혈혈단신으로 세계 패션계의 중심인 뉴욕에 섰습니다.”
이 또한 ‘무작정’ 추진한 일이었다. 그러나 뉴욕 모델 에이전시의 벽은 높았다. 문전박대가 일상이 됐지만 ‘열 번은 찍어 보자’는 심정으로 에이전시를 돌아다닌 결과 한곳에서 ‘함께 일해보자’는 긍정적인 답을 얻었다. 겨우 모델 에이전시에 소속됐지만 또다시 밑바닥 생활이 이어졌다. 하지만 지난해 1월에 열린 2016 가을·겨울 시즌 뉴욕패션위크에 모델로 서는 행운을 거머쥐었다. 세계 4대 패션쇼 중 하나였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기 위해 지난해 초 귀국해 교생실습까지 마치고 학사모를 썼다. 현재는 국내 유수의 모델 에이전시인 에스팀 엔터테인먼트 소속으로 본격적인 뉴욕 패션계 진출을 준비하고 있다.
“뉴욕에서도 세계적인 모델들이 소속돼 있는 에이전시인 빌헬미나 모델스(Wilhelmina Models)와 함께 일하게 됩니다. 모델로 활동하는 제 삶의 자리가 점점 넓어진다는 생각을 하니 가슴 벅찹니다.”
이세한은 그러나 선교사로서의 꿈도 접지 않았다. “제 안에 살아 숨 쉬는 신앙을 향한 열정만큼은 감출 수가 없어요. 동숭교회 청년부 새가족반에서 리더로 활동하고 있는데 뉴욕에 가서도 신앙생활을 잘하겠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귀한 자질을 통해 그리스도인으로서 영광 돌리는 삶을 살아야죠.”
그의 삶에 있어 ‘무작정’이란 결국 주님의 인도하심이 아니었을까. 그는 지면을 통해 꼭 감사인사를 전하고 싶은 분들이 있다고 했다.
“새벽마다 기도해 주시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랑을 잊을 수 없어요. 부모님의 기도 덕분에 지금의 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더 나아가 준비 없이 시작한 일이었지만 이만큼 이끌어 주신 분은 당연히 예수 그리스도시죠. 지금도 절 좋은 곳으로 인도하시는 주님의 사랑을 순간순간 체험합니다.”
그는 부여 고향 마을 규암교회에서 목회하는 아버지 이상덕 목사와 어머니 박순임 사모를 가장 존경한다고 고백했다.
장창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