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의 주요 집행기관이었던 한국문화예술위원회(예술위)가 뒤늦은 사과를 했다.
예술위는 23일 홈페이지에 박명진 예술위원장과 임직원 일동의 명의로 ‘사과문’을 올렸다. 예술위는 “문예진흥기금 사업 추진 과정에서 발생한 지원 배제 사태로 상처받으신 예술가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블랙리스트 사태 발생 후 문화예술계의 비판에도 침묵을 지켜오던 예술위가 입장을 발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예술위는 “국민과 예술가를 위한 기관으로서 부당한 간섭을 막아냈어야 하나 그러지 못했다. 독립성을 확보하지 못한 기관으로서 힘이 없었고 용기가 부족했다. 많은 임직원들이 노력했지만 외부개입을 근본적으로 차단하는 데는 역부족이었다”고 해명했다. 이어 “그동안 특검의 수사에 충실히 임했고 감사원 감사도 진행 중이다. 이런 일련의 조사로 인해 사과가 늦어진 점을 혜량해 달라”면서 “책임져야할 일에 대해 마땅히 책임지겠다”고 덧붙였다.
예술위는 블랙리스트 사태의 재발을 막기 위해 제도 개선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예술위는 “예술계의 의견을 폭넓게 제도개선에 반영하기 위해서 앞으로 예술 현장을 부지런히 찾아다니도록 하겠다”며 “조속한 시일 내에 문화예술계의 다양한 의견을 적극 수렴하여 소신 있게 일하고 자율성을 확립할 수 있도록 추가적인 대책을 발표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예술위의 이날 사과문에 대해 예술계의 반응은 한마디로 싸늘하다. 이미 늦은데다 진정성이 없다는 것이다. 한달 전인 지난 1월 23일 문화체육관광부가 실국장이 기자회견을 열고 대국민 사과를 했을 때 비판을 면치 못했었는데, 예술위는 홈페이지에 겨우 사과문을 한 장 올리는 것으로 대신하려 한다는 것이다. 이마저 예술위 노조가 사측에 대국민 사과와 재발 방지 대책 등을 요구하는 성명서를 내야 낸다고 촉구한 것이 외부에 알려지면서 나왔다.
김미도 연극평론가는 “예술위의 뒤늦은 사과문에서 전혀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리고 박명진 위원장의 사퇴가 없는 사과문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말했다. 실제로 예술위의 사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예술가들이 박 위원장의 사퇴와 관계자들의 처벌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에 대해 백선기 예술위 홍보팀장은 “아직 정해진 것은 없다”고 답했다.
다음은 ‘사과문’ 전문이다.
금번 문예진흥기금 사업 추진 과정에서 발생한 지원 배제 사태로 상처받으신 예술가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국민과 예술가를 위한 기관으로서 부당한 간섭을 막아냈어야 하나 그러지 못했습니다. 독립성을 확보하지 못한 기관으로서 힘이 없었고 용기가 부족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많은 임직원들이 지원 배제를 거부하고 배제가 최소화되도록 다방면으로 노력을 기울여 왔습니다만 외부개입을 근본적으로 차단하는 데는 역부족이었습니다.
그동안 특검의 수사에 충실히 임하였으며 감사원 감사도 진행 중에 있습니다. 이런 일련의 조사로 인해 사과가 늦어진 점 혜량해 주시기 바랍니다. 관련하여, 저희가 책임져야할 일에 대해서 마땅히 책임지겠습니다.
이번 사태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제도 개선을 준비해 왔습니다. 이미 심사위원의 선정 방식을 공개적이고 투명하게 대폭 개선해서 2017년도 사업 심의에 적용하였으며 불만사항을 신고 받아 다루기 위해 옴부즈만 제도를 신설했습니다. 복원 되어야 할 사업들을 다시 세우고 예산 확충을 위한 노력도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간의 경위도 말씀드리고 예술계의 의견을 폭넓게 제도개선에 반영하기 위해서 앞으로 예술 현장을 부지런히 찾아다니도록 하겠습니다.
조속한 시일 내에 문화예술계의 다양한 의견을 적극 수렴하여 소신 있게 일하고 자율성을 확립할 수 있도록 추가적인 대책을 발표하도록 하겠습니다.
금번 사건으로 문화예술 지원이 위축되어서는 안 되겠기에 예술위원회가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고 새로운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많은 질책과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2017. 2. 23.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 및 임직원 일동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