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분의 아이들 세상] 조르고 참지 못하는 아이 해결 방안

입력 2017-02-23 10:18
이호분 연세누리정신과 원장
정서적으로 결핍되어 있는 아이들에게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증상 중 하나가 지나치게 물질적인 요구가 많다는 것이다. 

부족한 부분을 물질적인 탐닉으로 채우려 하기 때문인데 문제는 물질적인 만족감이 정서적 결핍감을 보상할 수 없다는 점이다. 게다가 아이의 물질적인 요구는 끊임없이 더 늘어나기만 한다는 점이 딜레마다.

H는 초등학교 3학년 남학생이다. 부모가 맞벌이를 해 할머니가 주로 양육했다. H는 요구사항이 많다. 특히 물질적인 요구가 많아 할머니로서는 감당하기가 힘들다. 조립 완구나 로봇, 게임용 카드 등 비교적 값비싼 장남감도 새로운 모델이 나올 때마다 사달라고 졸랐고 별로 필요하지 않은 물건도 시시때때로 눈에 띌 때 마다 요구했다. 

부모의 보살핌을 잘 받지 못하고 할머니 손에 자라야 하니 안쓰러운 마음에 가능하면 사달라는 요구를 들어주려 했지만 그럴수록 아이의 요구 사항은 늘어만 갔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요구가 관철되지 않으면 할머니에게 떼를 부리며 드러눕고, 심지어 할머니를 밀치거나 욕하기까지 했다. 

할머니는 잔소리도 자주 하고 아이에게 간섭을 많이 하는 스타일이었지만 아이를 통제하지는 못했다. 아이의 요구를 들어 주다가 지치면 아이에게 화를 내거나 짜증내며 폭발하는 행동이 반복됐다. 

그나마 H를 통제 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엄마였다. 엄격하고 화를 잘 내는 엄마를 H는 무서워했고 엄마에게는 좀처럼 마음을 내보이지 않고 눈치를 봤다. 아빠는 밖에서 놀기 좋아하고 가정에는 충실하지 못했다. 그 미안함 탓에 아빠는 엄마 몰래 아이에게 원하는 장난감이나 물건을 사주곤 했다.

물질적 보상이 많아도 정서적 결핍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부모가 깨달아야 한다. 하지만 대개 이런 부모들은 해달라는 거 다 해 주었는데 애정 결핍이나 관심 부족이라니 너무나 억울하다고 말한다. 자신이 자랄 때와 비교하면 너무나 풍족한 상황인데 말이다. 

하지만 아이와 집중해서 놀아 주거나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일주일에 얼마나 되는지, 아이의 가장 친한 친구의 이름이 누구인지 등을 물어 보면 대답을 잘 못한다. 그리고 깨닫는다. 아이에게 무엇이 중요했었는지.

아이도 또래에 비해 부족한 욕구 조절력을 키워야한다. 욕구를 조절하는 능력은 태어나서 엄마 젖을 먹는 순간부터 조금씩 자라는 것이다. 배고픈 아이는 울음으로 배고픔을 표시하고 엄마가 젖을 물리는 데 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 시간 동안 아이는 배고픔을 참고 기다려야 한다.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어가면서 욕구를 참는 힘도 조금씩 커진다. 그러나 H와 같은 아이는 어느 순간부터 이런 자아의 성장이 정지된 상태인데 그걸 복원시켜야 한다. 물론 수년에 걸쳐 진행된 발달 지연이 하루아침에 회복 되는 건 아니다. 조금씩 참고 견디는 시간을 늘려가야 한다.

예를 들면 사흘이 멀다 하고 조르고 떼를 쓸 때마다 사주던 장난감을 일주일이나 2주에 한번 규칙을 정해 놓고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대신 달력에는 커다랗게 ‘장난감 사는 날’ 이라고 적어 놓는다. 기다리는 기간에는 조르거나 떼쓰지 않기로 약속하고 달력을 보고 잘 참아낸다면 매일 매일 칭찬을 해주는 식으로 훈련을 시키는 것이다. 

부모는 아무리 바빠도 장난감을 사기로 약속한 날짜와 시간은 지켜야 한다. 이렇게 반복하면서 기다려야 하는 시간을 3주, 1달 이런 식으로 늘려 나간다면 아이들은 의외로 잘 참아낸다. 왜 일까? 

아이는 칭찬과 관심을 받으면 욕구를 참는 힘이 생긴다. 떼를 써 자주 장난감을 받는 것과 이런 식으로 참아내고 칭찬받으면서 가끔 장난감을 받는 것, 어떤 게 아이의 충족감이 더 클까? 당연히 후자다. 부모는 최소의 비용을 들이고 아이의 충족감은 최대화 되니 부모와 아이 모두 윈윈하게 된다. ‘아이의 성장’ 이라는 커다란 선물은 덤으로 얻게 된다.

이호분 (소아청소년 정신과 전문의. 연세누리 정신과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