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토리 한 알도 주어 삼키려는 욕망은 끝이 없다. 다람쥐에게 도토리는 생존이고 삶이다. 물질, 자본, 권력 욕망으로 질주하는 인간은 선과 악의 그물망 안에 갇힌 채 뒤틀린다. 그물을 뚫고 나온 악은 법 정신을 훼손한다. 도토리는 다람쥐가 입속으로 삼켜야 생존할 수 있다. 삼키고 자연으로 흩어진 배설물들은 멧돼지가 살아 갈수 있는 토양이 된다. 자연의 순환은 생존의 순리고 자연의 질서다.
지난해(2016.9.24~25일까지) 대학로 예술극장에서 초연되어 올해 국립극장 달오름극장(2017.1.24~2.5일)에서 재공연한 오태석 연출의 신작 ‘도토리’는 지적 장애를 가진 삼렬과 일렬이 이야기다. ‘나라슈퍼’ 삼례 3인조 사건 피해자들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사건은 알려진 대로 누명을 쓰고 17년을 감옥에서 보내고 난 뒤 무죄 판결을 받았다. 연출은 두 인물을 중심으로 죄를 뒤집어쓰고 출소한 뒤에도 법과 삶의 질서를 지켜가며 배려하며 살아가는 극중 인물의 인생의 길목에서 권력의 규제와 통제, 사회적 약자들을 바라보는 냉소와 편견의 사회적 시선을 검은 망토를 입혀 그림자로 형성되는 상징성을 드러낸다.
출소 송별회는 희화화된 다람쥐와 등산객들이 뒤 섞여 도토리 줍기 상황극이 펼쳐지고 도토리 한 알도 질서를 지키고 배려와 나눔으로 공생하는 다람쥐와 청솔모, 도토리 한 알이라도 더 줍고 삼키려는 등산객들을 교차 대비시켜 탐욕의 욕망들이 풍자 된다.
재공연에서는 모호한 장면들과 극적 비약이 강하게 들어난 장면구성들을 일부 정리를 하고 파편화된 서사의 흐름과 극적 장면들의 배치를 다듬었다. 극중에서 검사의 딸로 분한 경자를 통해 유도와 컬링 경기의 올림픽 장면을 삽화시켜 공정한 삶과 평등한 사회의 성숙성을 환기한 전작의 장면을 들어내고 파편화된 에피소드를 다듬었다.
별 세 개 와 리코더 장면에서 벨 소리가 울리면 요란스럽게 움직이던 캐릭터들을 들어내고 극중 인물의 통제와 감시의 수단으로 사용되는 핸드폰 문자판(자음과 모음)을 더 확장시켰다. 일렬과 삼렬에게 비 조합으로 전송된 낱말은 출소 후에도 사회적 감시와 시선, 규제와 통제성을 강하게 드러낸다.
IT강국, 자본주의로 상징화 되는 삼성 등 세계적 기업이 있는 대한민국 지도에서 배려, 공정사회, 법의균형은 여전히 소외되거나 실종됨을 강조한다. 검사로 설정된 경자아빠는 경자모의 환영에서 시달리는 죽은 동물들과 인간이 뒤엉켜 죄의 업(業)은 윤회(業報)된다는 연출의 불교적 시선은 ‘경자네’ 장면을 통해 더 비약되고 확장된다.
아파트 응접실로 설정된 무대공간으로 쏟아지는 죽어간 날 짐승들과 귀천을 떠도는 망자의 육신들이 초현실적으로 섞여진다. 탐욕의 욕망을 거세하고 업을 덜어낼 수 있는 것은 경자아빠가 피해자인 삼렬과 가족들을 데리고 티베트로 달려가 속죄 할 때 비로소 용서를 받고 화해 할 수 있다는 장면구조는 극 주제가 명확해 진다.성숙된 사회로의 진입은 더 많은 잔소리가 필요해 보인다.
배우 송영광은 극의 균형을 잡고 정지영은 극의 탄력을 형성한다. 서사는 축약과 비약으로 뒤틀리고 배우들은 말에 결이 살아 있는 언어로 숨을 쉬고 맨 발로 무대를 걷고 뛰면서 날것들의 역동성을 생산해 내는 극단 목화와 오태석 연출가의 화음은 동일한 작품으로 매번 다른 무대를 그려내고 있다.
데뷔 50년, 오태석 연극의 화력(火力)
올해 데뷔 50년인 오태석(78) 연출이 생산하는 ‘연극’은 젊다. 초연된 작품들은 더하고 빼기를 거듭하면서 연극언어로 좁혀 질 수 있는 통로까지 막아선다. 반세기 동안 연극을 만들고 수많은 이야기를 쏟아냈어도 허구세계의 연극실험은 종점이 없다. 극적 구성은 더하고 빼기를 거듭하면서 연극언어로 좁혀 질 수 있는 마지막도 작품은 손질되고 흔들어진다.
연출이 특유의 연극적 재료들을 들고 화화반응을 일으키는 실험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통증을 호소하게 된다. 난해함과 모호함, 그리고 비약적으로 극의 형태와 윤곽을 만들고 양식화된 극적 표현과 설정들 틈새로 우리의 전통과 연희로 연극의 가락을 만들면서 한국연극의 독자적인 연출세계를 구축했다.
작품 이해의 통증을 겪으면서도 노장이 들려주는 허구세계를 듣고 싶고 표현양식의 쓰임새를 보고 싶은 것은 오태석 연극의 화력(火力)이 변함없기 때문이다.
1967년 신춘문예에 희곡 ‘웨딩드레스’ 로 당선되어 작가로 데뷔했다. 이듬해인 1968년도에는 국립극단에서 그의 작품 ‘환절기’가 올라갔다. 84년도에 극단 ‘목화’ 창단작품으로 오태석 작, 연출 ‘아프리카’로 문예진흥원 소극장(현 아르코 소극장) 에서 ‘오사단’ 이라고 불리는 그의 1세대 제자들과 공연하며 동인제 극단으로 목화를 창단했다.
이후 작·연출로 독특한 연극양식을 생산해 내면서 단원들과 30년 넘게 연극 지켜내며 오늘 날 까지 80여 작품을 직접 쓰고 연출을 해오고 있다. 정확히는 데뷔 50년, 극단 목화의 수례바퀴를 끌고 달려온 세월은 올해로 34년이 된다.
극단 ‘목화’가 동인제 극단을 만들어 단원들과 물레를 돌리는 연극정신으로 한 올 한 올 무대를 향해 뽑아 올린 연극생산성은 독특한 연극색채로 독자적인 연극세계를 구축했다. 독창적인 실험성을 탑재해 관객을 향해 파고드는 연극적 독소(毒笑)는 강하다. 독소는 강한 연극적 실험의 화기(火氣)로 반사된다.
서사는 비약적인 논리로 파편화 된 채 무대를 뚫고 채색시켜나가는 이야기는 시, 공간의 흐름을 역행하고 에피소드로 파편화된 장면들은 비약으로 확장된 채 시, 공간을 초월하고 생(生)과 사(死)는 혼재되어 삶의 경계를 초월하고 서사는 비현실적인 극적장치와 난해함으로 흩어져 극단 목화의 배우들과 오태석 연출이 창작한 연극은 단단한 장금장치로 봉쇄된다. 잠금장치를 해놓은 생략, 비약, 의외성과 배우들의 날것으로 발화되는 즉흥성으로 무장된 극적구성들을 풀기위해서는 상당한 진통을 겪게 된다.
‘초분’(1973) 이후 그는 한국연극의 논쟁의 중심에 서 있었다. 전통과 현대, 동(東) 과 서(西)가 혼재되어 연극적인 그물망을 만들며 촘촘한 미로로 엮여져 있는 그의 연극은 직관과 감성 그리고 파격과 즉흥으로 춤을 추면서 한국 연극계를 뒤흔들었다. 판소리와 탈춤, 굿으로 시, 공간을 초월하며 강렬한 화력으로 무장하는 극단 목화 배우들의 에너지는 관객의 오감을 잡아 당겼다. 극단 목화 배우들의 입으로 되 살려내는 3, 4조 또는 4, 4조의 대사의 운율은 우리 말 의 입말을 살려냈고, 배우들은 말에 결이 살아 있는 언어로 숨을 쉬고 맨 발로 무대를 걷고 뛰면서 날것들의 역동성을 생산한다.
‘춘풍의 처’(1976), 유년기의 전쟁체험을 상징적으로 되살린 ‘자전거’(1983)는 그가 유년기(11)살 때 겪은 한국전쟁의 핏물의 잔혹사는 자전거를 서술하는 모티브가 됐다. 그의 기억은 여전히 전쟁과 죽음 그리고 역사성을 관통해 현재로 전이된다. 20세기 세기말의 현상과 인신매매를 ‘심청전’과 연관시킨 ‘심청이는 왜 두 번 인당수에 몸을 던졌는가’(1990), 사도세자와 영조의 갈등을 다룬 ‘부자유친’(1987), 백제 병사의 원혼을 달래는 ‘백마강 달밤에’(1993) 등은 현대와 과거의 역사성이 혼재되어 상징적인 오브제로 배열되어 굿판을 벌리고 무당을 통해 현실과 과거, 죽음과 삶의 경계를 허물며 역사성을 소환하며 극을 연결하는 오태석 연출의 상징의 기호들과 극적 장치들은 복잡한 의미를 생산한다.
‘태’(1974)는 단종의 핏줄의 역사를 장전하고 죽음과 생명이 교차되는 윤회(輪廻)의 역사다. 죽음은 생명으로 순환되며 권력의 욕망으로 갈라진 너덜거리는 육신의 몸으로 귀천의 객이 된 역사의 망자들은 탯줄로 그 숨이 이어져 살아 있는 역사가 된다. 기발하고 엉뚱하면서도 날카로운 작품들은 오태석 연출의 실험적인 놀이성에 친숙해 져야 한다. 장면을 수십 차례 되돌리고 파격적인 오브제를 연결하고, 파편화된 장면과 에피소드들을 조립하고 조합해 머리를 돌려야 작품을 이해하는 열쇠를 얻게 된다.
비로소 열쇠를 쥐었을 때, 관객은 연극을 품는 온기가 달라지거나 강렬한 자국으로 남게 된다. 그것은 오태석 연출가가 창단 이후 34년 동안 한 결 같이 관객에게 전달하는 연극생산 방식이고 극단 목화가 생산한 연극이 기다려지는 이유다.
그동안 극단 목화의 한배를 타고 연출가 오태석과 작품세계를 항해를 한 1세대(조상건, 박영규, 정진각, 김일우, 정원중, 한명구)와 2세대격인 손병호, 홍원기, 정은표, 김병춘, 이명호, 유해진, 성지루, 박희순, 임원희, 황정민, 장영남 등은 90년대 후반까지 목화배우로 활동했고 현재는 TV, 연극, 영화를 넘나들며 배우로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현재 목화를 이끌며 오태석 연출의 신호를 받고 있는 3세대 배우들로는 송영광, 정지영, 김봉현, 유재연, 이병용, 김보현, 박현정과 30여명의 단원들이 목화를 이끌고 있으며 배우 정진각과 의상 이승무는 변함없이 오태석 연출 무대를 지켜내고 있다. 극단 목화의 연극적 생산 방식의 색감이 여전히 발해되거나 초점이 흔들거리지 않는다. 3세대 목화 배우들 중에 송영광은 목화 특유의 어법과 맛을 살려내고 있고 현재 극단 목화에서 목화 출신배우들의 대를 이어갈 장자(長子)역할을 하고 있다. 정지영은 배우 황정민, 장영남을 이어 여배우로서의 입지를 탄탄하게 다지고 있다.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