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스타디움 앞 지하보도에 세월호 참사 희생자를 모욕한 낙서를 지운 한 시민의 선행이 뒤늦게 알려졌다. 묵직한 팔로 글자 하나하나를 깨끗하게 지운 뒤 “마음 편하게 잘 수 있겠다”고 말했다.
남성 A씨는 지난 20일 오전 2시40분 페이스북에 대구스타디움 앞 지하보도에서 낙서를 지운 과정을 사진으로 촬영해 올리면서 “힘든 일요일이 힘든 월요일로 되겠다. 그래도 마음 편히 잘 수 있겠다”고 적었다.
지난 일요일이었던 19일 밤부터 시작한 낙서 제거 작업이 페이스북에 사진을 올린 시점까지 계속됐던 것으로 보인다. A씨는 직접 구입한 세척제로 낙서를 지우고 깨끗한 지하보도 벽을 촬영했다. 스프레이의 붉은 색상이 조금 남았을 뿐 지하보도는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A씨는 페이스북 계정을 실명으로 운영하고 있지만 자신의 나이나 거주지를 공개하지 않았다. A씨는 사람들의 찬사와 관심이 부담스러운 듯 22일 현재 사진과 글을 삭제했다.
다만 자신의 선행을 소개한 ‘실시간대구’라는 이름의 페이스북 계정에 “사진에 나온 곳은 (낙서를) 모두 지웠다. 현수막 등 나머지(모욕 문구)는 시청에서 지우겠다는 확답을 받았다”고 댓글을 남겨 낙서를 지운 사실을 확인했다.
A씨의 계정에는 “존경한다” “사랑한다” “진짜 멋진 남자다” “복 받을 것”이라는 찬사와 감사의 인사가 쏟아졌다. 자신을 대구시민이라고 밝힌 한 네티즌은 “정부가 이 남성에게 표창해야 한다”고 추천했다.
A씨는 삭제하기 전 페이스북 게시물에 “영화처럼 경찰은 늘 현장에 늦지”라고 농담을 던졌다. 대구 수성경찰서는 낙서로 세월호 참사 희생자를 모욕한 용의자를 추적하고 있다.
경찰은 지난 19일 오후 10시30분쯤 ‘붉은색 스프레이로 대구스타디움 앞 지하보도 벽에 낙서가 있다”는 신고를 받고 현장으로 출동해 낙서를 확인했다. 현장 주변에서 용의자가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스프레이통을 발견하고 감식을 의뢰한 뒤 인근 CCTV를 확인하고 있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