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권의 핵심 실세인 우병우(50·사법연수원 19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처음으로 죄수복(수의·囚衣)을 입었습니다.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에서 말입니다. 구속영장이 청구된 그는 오늘 오전 영장실질심사를 받은 뒤 오후에 구치소로 와서 수의로 갈아입고 독방에 갇혔습니다. 영장심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대기해야 합니다. 영장이 발부되면 이곳에 그대로 수감됩니다. 화려한 인생을 살다 나락으로 급격히 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 전 수석의 이력은 눈부십니다. 서울대 법대 재학 중 제29회 사법시험 최연소 합격(1987년 만 20세), 1990년 서울지검 검사 임관 이후 동기 중 선두로 승승장구,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2부 부장·대검찰청 중앙수사부 1과장·범죄정보기획관·수사기획관 등 요직을 거친 특수통, 검사장 승진 탈락 후 2013년 검사 생활 마감했으나 다음해 대통령 민정비서관으로 화려하게 부활, 2015년 민정수석비서관 승진…. 그러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지난해 10월 민정수석에서 사퇴한 뒤 칩거하다 구속영장까지 청구되는 신세로 전락한 것입니다. 오늘 밤늦게 또는 내일 새벽에 나올 영장심사 결과는 어떻게 될까요. 공식 수사 63일째(2월 21일 화요일)의 두 번째 이야기입니다.
# 또 레이저 눈빛 발사한 우병우=우 전 수석은 오늘 오전 9시30분쯤 서울 강남구 대치동 특검 사무실로 나왔습니다. 그는 “최순실을 여전히 모르느냐”는 취재진 질문에 기존대로 “모른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특검팀 차량을 타고 서울중앙지법으로 이동했죠. 오전 10시쯤 도착한 법원에서도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졌습니다. “국정농단 묵인한 것 맞냐” “문체부 인사에 부당하게 개입했냐” “특감실(특별감찰관실) 해체 주도했냐” 등의 질문을 받았죠. 그는 “법정에서 입장을 충분히 밝히겠다”고 간단히 답하고 법정으로 향했습니다.
그러다 한 기자가 “구속되면 마지막 인터뷰일 수도 있는데 한마디 해달라”고 하자 우 전 수석은 2초 정도 그 기자의 아래 위를 훑으며 매섭게 노려봤습니다. 특유의 ‘레이저 눈빛’을 발사한 것이죠. 지난해 11월 검찰에 출석했을 때 “가족회사 자금 유용을 인정하는가”라고 질문하는 여기자를 날카로운 눈빛으로 쏘아보던 그 모습 그대로입니다. 심기가 아주 불편했던 모양입니다. 다시 “최순실을 왜 자꾸 모른다고 하냐”라는 질문이 나오자 곧바로 “모른다”고 말한 뒤 법원 검색대를 지나 법정으로 들어갔습니다.
# 서울대 법대 후배 판사에 달린 우병우 운명=영장실질심사는 오전 10시30분 오민석(48·사법연수원 26기)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 심리로 열렸습니다. 특검팀에서는 검찰 출신인 이용복(56·연수원 18기) 특검보와 양석조(44·연수원 29기) 부장검사 등이 참석했습니다.
우 전 수석에 대한 혐의는 4가지입니다. 직권남용, 직무유기, 특별감찰관법 위반, 국회 증언·감정법 위반입니다. 가장 핵심적인 쟁점은 어제 이규철 특검팀 대변인이 설명한대로 직권남용입니다. 민정수석 권한을 남용해 공무원 좌천 인사, 반강제 퇴직 등에 압력을 가했다는 의혹과 관련된 혐의입니다. 또 이석수 전 대통령 직속 특별감찰관의 내사를 방해하고 특별감찰관실 해체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혐의도 있습니다. 최순실씨 국정농단을 묵인·방조한 의혹도 포함돼 있습니다. 하지만 우 전 수석은 각종 의혹을 부인한 바 있습니다. 영장심사에서도 특검 수사팀과 변호인 측은 치열한 법리 공방을 벌였습니다.
영장심사는 오후 3시50분까지 장장 5시간20분 동안 진행됐습니다. 심사가 길어져 중간에 10분간 휴정 시간도 가졌습니다. 지난 16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영장심사 역대 최장 기록(7시간30분)을 깨진 못했지만 이것도 엄청난 기록입니다. 우 전 수석은 심사가 끝난 뒤 법정을 나오면서 의혹에 대해 소명을 다했다고 말했습니다. 우 전 수석은 곧바로 서울구치소로 향했습니다. 구치소에서는 수의로 갈아입고 독방에서 대기해야 합니다. 초조한 심정일 것입니다.
법원 정기 인사 이동으로 어제 수원지법에서 서울중앙지법으로 전보돼 영장전담 업무를 맡은 오 부장판사의 결정만 남았습니다. 오 부장판사는 우 전 수석의 서울대 법대 후배입니다. 오 부장판사가 우 전 수석에게 수갑을 채울까요? 우 전 수석의 운명은 오 부장판사에게 달려 있습니다. 그 결과를 지켜보죠.
박정태 선임기자 jt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