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자뷔냐, 반전이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운명이 어떻게 될 것인지가 초미의 관심사입니다. 오늘 두 번째 영장실질심사를 치른 이 부회장의 동선과 진행 상황은 지난달 18일 첫 영장실질심사 때와 아주 똑같습니다. 특검 사무실 도착, 서울중앙지법 이동, 영장실질심사 출석, 서울구치소 대기, 초조한 기다림 등의 데자뷔입니다. 심사를 마친 이 부회장은 곧바로 다시 구치소로 가 독방에 갇혔습니다. 법원의 결정이 끝날 때까지 대기하는 인치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수의로 갈아입고 2평이 채 되지 않는 독방(6.56㎡)에 머물렀습니다. TV 1대와 접이식 침대, 작은 책상이 놓여있는 독거실입니다. 저녁은 구치소가 제공하는 1400원짜리 식사로 해결해야 합니다. 설거지도 스스로 해야 합니다. 재계 1위 총수가 지난번에 이어 2번이나 굴욕적인 모습으로 있어야 하니 그 심정이 어떻겠습니까. 그나저나 영장실질심사 결과는 어떻게 나올까요. 첫 영장이 기각됐던 때의 데자뷔? 아니면 특검팀의 극적인 반전 드라마? 공식 수사 58일째(2월 16일 목요일)의 두 번째 이야기입니다.
# 이재용 운명의 날… 데자뷔냐, 반전이냐=이 부회장은 오전 9시25분쯤 검은색 승용차를 타고 서울 강남구 대치동 특검 사무실에 도착했습니다. 긴장한 표정입니다. 그는 “두 번째 구속영장 심사인데 심경이 어떤가” “계열사 순환출자와 관련해 청탁한 사실이 있는가” 등의 취재진 물음에 입을 굳게 다문 채 사무실로 올라갔습니다. 15분 뒤 이 부회장은 수사관들과 함께 다시 내려와 차를 타고 서울중앙지법으로 이동했습니다. 함께 구속영장이 청구된 박상진 삼성전자 대외담당 사장도 9시35분쯤 특검 사무실에 나온 후 이 부회장의 뒤를 이어 법원으로 향했습니다. 이 부회장은 법원에 10시 조금 넘어 도착했죠.
영장실질심사는 오전 10시30분부터 한정석 영장전담 판사 심리로 진행됐습니다. 이 부회장에게 적용된 혐의는 뇌물공여,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및 재산국외도피, 범죄수익은닉, 위증 등 5가지입니다. 특검팀이 보강 수사를 통해 뇌물공여, 횡령, 위증 외에 2가지를 추가한 겁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이후 순환출자 고리 해소 과정에서의 정부 특혜, 국정농단 의혹이 불거진 이후 최순실씨 딸 정유라씨에 대한 우회적인 승마 지원 등이 추가된 것이죠.
특검팀과 변호인 측은 불꽃 튀는 법리 공방을 벌였습니다. 특검팀에서는 양재식 특검보와 윤석열 수사팀장, 한동훈 부장검사 등 수사진 5명이 투입돼 구속 필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삼성 수사를 직접 맡은 윤 팀장과 한 부장검사가 법정에 나온 건 처음입니다. 특검팀 사활을 걸고 총력전을 펼친 것이죠. 반면 변호인단은 첫 번째 영장실질심사에 참석해 영장 기각을 이끌어냈던 판사 출신의 문강배 송우철 변호사 등이 다시 나와 ‘부정한 청탁’과 ‘대가성’이 여전히 입증되지 않은 무리한 수사라고 반박했습니다. 고검장을 지낸 조근호 변호사 등도 변호인단에 새로 가세했습니다. 삼성 측으로서도 총수 구속 위기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아 철벽 방어에 나선 것입니다.
양측의 격론이 벌어졌습니다. 그 바람에 5시간 만인 오후 3시30분에 20분간 휴정을 하고 3시50분에 재개됐습니다. 이 같은 치열한 공방으로 오늘 심사 시간은 지난번보다 훨씬 더 길어졌습니다. 지난달 18일 첫 영장심사 때는 오후 2시15분에 끝나 3시간45분이 걸렸으나 오늘은 오후 6시쯤에 끝나 장장 7시간30분이나 소요됐습니다. 2배 이상 길어진 것입니다. 역대 최장의 ‘마라톤’ 영장심사입니다. 중간에 휴정을 한 것도 처음입니다. 전례 없는 기록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심사를 마친 이 부회장은 구속 여부가 결정될 때까지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에서 대기했습니다. 초조한 심정으로 법원의 결정을 밤늦게까지 기다렸죠. 처음 구속영장이 청구돼 지난달 18일 영장실질심사를 받았을 때와 똑같은 진행입니다. 데자뷔를 보는 듯합니다. 그런데 한 판사의 심사결과는 어떻게 될까요? 지난번 영장실질심사 때는 다음날 오전 5시쯤 ‘소명 부족’을 이유로 영장 기각 결정이 나왔습니다. 데자뷔일까요, 반전일까요. 무척 궁금합니다.
# 영장담당 한정석 판사는?=이 부회장 운명의 칼자루를 쥔 한정석 영장전담 판사에 많은 관심이 쏠립니다. 만 40세의 한 판사는 고려대 법학과 출신으로 1999년 제41회 사법시험에 합격했습니다. 2002년 사법연수원을 31기로 수료했죠. 수원지법 판사로 임관해 2015년부터 서울중앙지법에서 근무하다 지난해 2월 영장전담 업무를 맡았습니다.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판사는 3명인데 이들 중 막내입니다. 다른 2명은 조의연 부장판사(사시 34회), 성창호 부장판사(사시 35회)입니다. 조 부장판사는 이 부회장에 대한 첫 번째 구속영장을 기각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한 번 영장을 맡았던 판사가 다시 같은 영장을 심사하지 않는다는 법원 내규에 따라 조 부장판사는 빠지고 한 판사가 이번에 심사를 하게 된 것이죠.
한 판사는 검찰 특별수사본부의 국정농단 의혹 수사 때 최순실씨, 그의 조카 장시호씨,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습니다. 반면 특검팀이 청구했던 최경희 전 이화여대 총장의 구속영장은 기각한 바 있습니다. 물론 최 전 총장에 대해 재청구된 구속영장의 경우 성창호 부장판사가 15일 새벽 “추가 증거자료로 범죄사실이 소명됐다”며 발부하기는 했죠. 한 판사는 오는 20일자로 단행된 법관 인사에서 부장판사로 승진해 제주지법으로 옮겨갈 예정입니다. 그런 그의 오늘 결정에 국민의 이목이 쏠려 있습니다.
박정태 선임기자 jt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