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분의 아이들 세상] 고집 센 아이는 이렇게 해보자

입력 2017-02-16 13:56
이호분 연세누리정신과 원장
초등학교 3학년 남자아이 P는 원하는 것은 열심히 잘하지만 마음이 내키지 않으면 선생님의 지시에도 꿈쩍도 하지 않는다. 수업시간은 물론 체육시간에도 동작을 전혀 따라하지 않는다. 그러니 자주 야단을 맞았고 담임선생님들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정도였다. 학교에서 쫒겨 오다시피 집으로 돌려보낸 적도 있었다.

친구들이 신체적으로 접촉하는데도 거부감이 많고, 자기 물건을 누군가 만지는 것도 몹시 싫어한다. 자연히 친구들도 P를 멀리하게 됐는데 그러자 그동안 얌전하던 아이가 갑자기 욱하며 친구들에게, 선생님들에게 공격적인 행동을 보이게 되었다.


P는 어려서부터 갖고 싶은 장난감이 있으면 며칠 동안 졸라서라도 꼭 손에 넣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었다. 옷이나 신발도 자기가 원하는 것, 원하는 색만 입어야 했다. 먹는 것도 유아 때부터 우유만 먹으려 하고 이유식과 밥을 먹지 않으려 했다고 한다. 자연스레 먹고 싶은 음식만을 편식하는 습관이 생겼다. 

또 뭔가에 몰두해 있으면 불러도 대답을 하지 않아 부모의 애를 태우곤 했다. 한마디로 키우기 매우 힘든 아이였던 셈이다.

P의 엄마는 아이의 요구를 계속 받아주면 버릇이 없어진다는 주변의 말을 듣고 P의 고집을 꺾어야 한다는 생각에 집착했다. 그러다 보니 아이와 전쟁을 치르는 게 다반사였다. 아이가 고집을 꺾지 않고 버티면 엄마는 화가 폭발해 감정을 추제하지 못하고 아이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도 있었다. 때로는 지쳐 아이가 요구하는 것을 무기력하게 들어 주기도 했다. 엄마는 일관성을 잃었고, 아이는 욕구를 자제하는 힘을 키우지 못했다.

P처럼 까다로운 기질을 가진 아이들은 통계적으로 볼 때 10% 정도 된다. 타고난 이런 기질의 아이들은 변화에 적응하는 능력과 유연함이 떨어져 ‘고집스럽다’는 오해를 받기 쉽다. 촉각, 청각, 미각 등에도 매우 예민해 먹이고 입히는 사소한 일이 모두 힘들다. 부모도 일상에서 이런 일이 반복되면 지치고 그러다 보면 P의 엄마처럼 일관성을 잃게 된다. 그러면 아이의 고집은 갈수록 세지고, 사회 적응력은 더욱 떨어지게 된다.

이런 아이들에게 하고 싶은 일을 못하게 막고,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시키는 건 매우 힘든 일이다. 부모는 아이가 갖지 못한 유연함을 발휘해 아이에게 타협하는 법을 가르쳐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이는 부모, 선생님, 친구들과 ‘힘겨루기’에 불필요한 에너지를 쓰면서 인생을 낭비할 수 있다. 부모가 먼저 화내지 않고 아이를 다루는 기술을 습득해야 한다.

친구가 놀러 왔는데 친구가 자신의 장난감을 못 만지게 하고 함께 놀려고 하지 않는 아이가 있다고 하자. 아이의 감정을 억압하는 부모는 윽박지르거나 꾸짖으며 “너는 왜 그렇게 이기적이니? 장난감은 같이 갖고 노는 거야!”라고 말할 것이다. 반면 자기 아이의 감정을 중시하는 부모는 아이에게 “네가 친구와 나누어 갖는 게 싫구나. 네 마음대로 하렴”하고 반응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두 가지 모두 바람직한 태도는 아니다. 아이의 감정을 존중하되 문제 해결력을 기를 기회로 사용하는 게 좋다. 즉 아이의 생각에 먼저 귀 기울여 주고 아이에게 선택권을 주는 식이다. “네가 좋아하는 장난감을 친구와 나누어 노는 게 싫구나? 그렇다면 그 장난감을 치워두고, 같이 놀기 원하는 다른 장난감을 꺼내어 같이 놀 수도 있어. 어떤 게 좋은지 선택해 볼래?”라고 제의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같은 결정이라도 P처럼 고집 센 아이는 스스로 선택하고 생각을 정리하게끔 만들어줘야 한다. 그래야 자기 욕구를 조절하는 능력도 키울 수 있고, 타협도 배울 수 있다. 부모 입장에서도 지시하려는 것이 꼭 절대적인지 먼저 살펴볼 필요도 있다. 

절대적인 원칙, 즉 안전에 위협을 주거나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닌 경우에는 아이와 타협할 필요가 있다. 다만 몇 가지의 절대적인 원칙은 정해 놓고, 이 원칙만큼은 일관성 있고 단호하게 적용해야 한다.

이호분 (소아청소년 정신과 전문의, 연세누리 정신과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