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지금 우리가 경험하는 실제는 완전히 다르다. 상품의 구입과 사용으로 자신을 타자와 구분하고 이를 통해 사회적 지위와 위치를 인정받는 데 그 본질이 있다. 대중매체와 온갖 종류의 광고는 값비싼 상품으로 포장할수록 더 괜찮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24시간 내보낸다. 사람들은 배우자와 자녀, 공동체와 대화하기보다 광고를 보고 스마트폰을 문지르는 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소비사회를 사는 그리스도인/존 캐버너 지음/박세혁 옮김/IVP
미국 세인트루이스대 철학교수인 저자는 이를 교회와 예배행위로 빗댔다. 대형 쇼핑몰은 ‘소비의 예배당’이다. ‘영원(eternity)’은 캘빈 클라인의 향수병 안에 담겨있고 ‘무한(infinity)’은 일본 닛산자동차 안에 들어있다. 인간의 마음은 더 이상 초월적인 하나님이 거하시는 보좌가 아니다. 기독교인들 역시 삼위일체 하나님을 본받아 다른 이들을 알아가고 사랑하는 일을 하지 않는다. 역설적이게도 가난한 이들과 소외된 이웃, 갇힌 이와 조국을 잃은 난민을 무시하는 사람들이 바로 크리스천들이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저자는 소비사회의 대표격인 미국을 예로 들며 오늘날 미국 사회는 인간의 몸과 영혼까지 상품으로 간주해 사고파는 최악의 소비사회가 됐다고 개탄한다. 위험한 것은 사물과 물질의 소유가 아니라 그에 대한 우상숭배다. 기술이 위험한 것이 아니라 그에 대한 굴복이 위험하며, 자본주의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것이 칭송하는 삶의 방식이 문제라고 단언한다. 책은 물신숭배에 빠진 미국 사회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면서 참된 신앙과 구원의 길을 제시한다.
저자는 미국 사회를 물건을 소비하고 소유하는 데서 일종의 구원을 맛보는 우상숭배 사회로 규정한다. 미국 사회가 사람을 대체할 수 있고 사고 팔 수 있는 상품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이 자신과 타인을 사물로 인식할 때 폭력과 두려움, 소외의 삶을 살 수밖에 없다. 저자는 이를 설명하기 위해 다양한 사례와 통계를 제시한다. 사례만 읽어나가도 미국사회가 얼마나 사악한 소비주의 신흥종교에 빠져있는지 알 수 있다.
책의 후반부는 이렇게 소비주의 우상숭배에 빠진 미국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기 위한 성서·신학적 토대와 구체적 실천 방향을 제시한다. 저자는 소비주의 사회에서 그리스도를 따르는 길은 거룩한 저항과 자발적 소외,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 실천에 바탕을 둔 문화 변혁적 삶과 문화 창조에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우리를 가두는 (소비의) 갑옷을 벗고 눈을 뜨고 상처 입은 이들을 바라보며, 소비자의 꿈이 기껏해야 거짓 약속이었고 최악의 경우 악몽일 뿐이었음을 깨닫게 해주는 이들의 말을 가슴에 새기라”고 권면한다. 무엇보다 성경이야말로 이 거대한 물신숭배 종교를 깨부수는 가장 반문화적이며 가장 혁명적인 책이라고 강조한다.
저자는 그리스도인 각자가 한 사람의 성자로 살라고 주문한다. 장애인을 섬기는 목회자, 가난한 이들의 권리를 옹호하며 집 없는 아이를 입양한 판사, 식료품점을 순회하며 팔고 남은 음식을 모아 노동자들이 머무는 집에 가져다주는 어느 중산층 부부가 모두 성자다.
책은 영어 원서로는 1981년에 초판이 나왔고 91년과 2006년에 각각 개정판을 냈다. 저자는 그때마다 당시 상황을 반영해 서문을 새로 썼다. 서문만 읽어도 이 책이 왜 ‘소비사회라는 놀이터에 떨어진 예언자적 굉음’이란 칼 바르트적 찬사를 들었는지 실감할 수 있다. 저자가 직접 추천한 도서 목록을 보면 그 방대함과 세심함에 다시 놀란다.
신상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