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비선 실세’ 최순실씨와 차명폰으로 지난해 하루 평균 3차례 정도 통화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최씨가 독일로 도피했을 때에도 하루 평균 2∼3번씩의 통화가 이뤄졌습니다. 이는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15일 서울행정법원에서 열린 ‘청와대 압수수색 불승인 처분에 관한 집행정지 신청 사건’에서 밝힌 내용입니다. 박 대통령은 왜 차명폰으로 최씨와 그렇게 많은 통화를 했을까요. 최씨를 통하지 않고는 국정을 운영하기 어려워서 그랬을까요. 최씨의 최측근이었다가 국정농단 의혹을 폭로한 전 더블루케이 이사 고영태씨의 녹취록에는 이런 말이 있죠. “VIP(박 대통령)는 이 사람(최씨) 없으면 아무것도 못해. 뭐 하나 결정도, 글씨 하나, 연설문 토시 하나 다 수정을 보고 오케이 하고, 옷도 무슨 옷을 입어야 하고.” 헌법재판소가 14일 탄핵심판 13차 변론에서 증거로 채택한 ‘고영태 녹취록’에 있는 것입니다. 고씨가 지난해 4월 지인들에게 말한 내용이죠. 차명폰 통화는 여기에 딱 어울리는 부분인가 봅니다. 공식 수사 57일째(2월 15일 수요일)의 첫 번째 이야기입니다.
# 박근혜 최순실 통화 570여 차례=서울행정법원 행정4부(부장판사 김국현)는 오늘 오전 10시 특검팀이 제기한 청와대 압수수색 불승인 효력정지(집행정지) 사건의 심문기일을 열었습니다. 특검 대리인은 이 자리에서 청와대 압수수색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그 근거로 사례 하나를 들었습니다. 바로 박 대통령과 최씨의 차명폰 통화 부분입니다.
“박 대통령이 2016년 4월부터 최순실과 차명폰으로 수백차례 통화했다. 최순실이 독일 도피 중인 상황에서도 127차례 통화한 사실이 객관적으로 확인이 됐다. 좀더 자세히 말씀드리면 박 대통령과 최순실이 은밀하게 연락하기 위해 개통한 차명폰이 있다. 대통령도 있고 최순실도 있는데 같은 날짜에 윤전추(청와대 행정관)가 개통한 것이다. 특검은 이 차명폰을 발견했다. 두 사람이 차명폰으로 2016년 4월 18일부터 10월 26일까지 국내와 해외에서 590회(특검팀 대변인이 오후 정례브리핑에서 570여회로 정정) 통화를 했다. 특히 최순실이 9월 3일 독일로 출국해서 한국에 입국(10월 30일)하기 전까지도 127회 통화한 사실이 드러났다. 독일 도피 중인 최순실이 지난해 10월 26일 jtbc 보도(태블릿PC 관련)가 나간 이후 대통령 차명폰과 통화되지 않자 장시호(조카)를 시켜 장시호 어머니 최순득으로 하여금 윤전추 차명폰에 전화하게 하고 윤전추 폰을 통해 대통령과 최순득이 통화했다. 대통령은 최순득한테 ‘최순실이 귀국하면 어떻겠냐’고 했고, 장시호가 대통령 말을 최순실에게 전달했다.” 이 차명폰 등의 증거자료들이 청와대 경내에 존재하는 것이 당연하므로 압수수색이 필요하다는 주장입니다.
차명폰 통화는 새로운 내용입니다. 2016년 4월 18일∼10월 26일 570회 통화를 최씨의 독일 도피 전후로 나눠보면 2016년 4월 18일∼9월 2일 443회 통화, 9월 3일∼10월 26일 127회 통화한 겁니다(10월 27일 이후 귀국 때까지는 차명폰 불통). 이를 하루 평균으로 계산하면 전체 기간에선 일일 3차례씩(3.0번) 통화한 것입니다. 쪼개서 보면 독일 도피 전에는 일일 3∼4차례(3.2번), 독일 도피 기간에는 일일 2∼3차례(2.4번) 통화했습니다. 박근혜-최순실 관계가 한몸 같다는 걸 느낄 수 있는 통화 수치죠.
# 행정법원 결정은?=특검 대리인과 청와대 대리인은 청와대 압수수색 집행 여부를 놓고 1시간가량 치열한 법리 공방을 벌였습니다. 특검 측은 “압수수색이 거부되면 국정농단 사건의 실체를 밝히기 위한 수사 자체가 굉장히 어렵게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또 “압수수색을 못하면 중차대한 공익 의무가 실현 안 되고,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국가의 무너진 기강을 세우거나 법치주의를 바로잡는 계기가 요원해진다”고 덧붙였습니다. 반면 청와대 측은 “특검의 신청은 의욕이 너무 앞선 ‘보여주기’ 식 수사”라며 “압수수색 외에 다른 형식으로도 수사할 수 있다”고 반박했습니다. 이어 “압수수색이 중차대하기 때문에 무조건 허용해달라는 주장은 법치주의 위반”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사건을 담당한 행정4부 재판부의 결정은 16일 나올 것 같습니다. 필요하다면 15일 자정까지 양측이 서면으로 의견을 낼 수 있도록 했기 때문입니다. 재판부는 심리 말미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번 하나의 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것이라면 거기에 따라 판단하면 되지만 이것이 유사한 법조문을 적용하는 여러 사례에 다같이 적용될 수 있기 때문에 체계적인 해석이 필요하다. 좀 더 숙고하고 고민해서 결론을 내리겠다”고 했습니다. 귀추가 주목됩니다.
박정태 선임기자 jt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