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배우 정우성 “난 여전히 도전하는 청년” [인터뷰]

입력 2017-02-12 19:55 수정 2017-02-12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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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정우성(44)은 영화 ‘더 킹’에서 완전히 망가지기로 했다. 대중이 분노를 쏟아낼 수 있는 대상이 되고자 스스로를 무너뜨리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기꺼이 비웃음을 사기로 했다. 무려 대한민국 미남(美男)의 대명사인, 그가 말이다. 단호하고도 분명한 용기. 그건 도전이었다.

‘더 킹’에서 정우성이 연기한 정치검사 한강식은 권력의 화신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줄을 대고 기생하며 얻은 권력을 제 멋대로 휘두른다. 겉보기엔 우아하고 품위가 넘친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불의와 부정이 뒤엉켜 썩은 내가 진동한다. 자신을 따르는 수하는 성에 차지 않으면 가차 없이 잘라낸다.

“용기가 필요한 시나리오였죠. 그 용기가 (제게는) 참여하고 싶은 자극제였어요. 정권마다 매번 문제가 되지만 누구도 바로잡을 생각은 하지 않고 계속 이용하려고만 드는, 그런 현실에 대한 문제제기가 필요한 거잖아요. 그게 ‘더 킹’이었고, 당연히 같이 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최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정우성은 ‘더 킹’ 출연을 결심한 배경에 대해 흔들림 없는 눈빛으로 이야기했다. 권력의 허망함을 조롱하는 영화는 상당 부분 우리 현실과 닮아있다. 역대 대통령과 실제 사건들을 직접 거론해 현실감을 극대화했다. 134분간 시원스런 풍자가 펼쳐지지만 그 끝에는 결국 쌉쌀한 뒷맛이 남는 이유다.

전작 ‘아수라’에서 암흑 같은 세상을 비관한 정우성은 ‘더 킹’에서 다시 한 번 현실 비판적 인식을 드러냈다. 그는 “나도 이제 40대 중반이 됐다. 기성세대에 접어들면서 ‘내 직업을 통해 세상과 어떤 소통을 할 수 있을까, 또 어떤 목소리를 내야 할까’라는 고민이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그런 선택의 폭을 확장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놨다.


“너무 어른 같다? 꼭 그렇진 않아요. 사실 전 (지금도) 청년이고 싶거든요. 그건 초심에 대한 얘기인 것 같아요. 다만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에 대한 일관성만큼은 지키고 싶어요. 무모해보일 수도 있겠죠. 그러나 상황에 타협하고 싶진 않아요. 내가 도전하고자하는 것에 대한 무모한 시도는 늘 하고 싶거든요. 그런 일관성 안에서 좀 더 나은, 내 나이에 맞는 성숙함을 확장해가야겠죠.”

‘더 킹’은 후배 조인성과 함께한 작품이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컸다. 과거 같은 소속사에 몸담았던 두 사람은 감독과 배우로 만나 god 3집 뮤직비디오를 함께 완성하기도 했다. 그러나 배우 대 배우로 만나 연기 호흡을 맞춘 건 처음이다.

“업계 사람들끼리 동료의식을 갖고 인간적인 교류를 나누는 것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긴다”는 정우성은 “정작 나를 동경한 후배에게 얼마나 무관심했었나를 돌아보며 부끄러움과 미안함을 느꼈다. (조)인성이를 생각했을 때 그런 생각이 밀려왔다. 현장에서 본 조인성은 이미 너무 의젓한 배우가 돼있더라. 이런 멋진 후배에게 나도 더 멋진 선배가 돼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사회적 지위가 높아질수록 개인에게는 명성과 명예가 주어질 테다. 정우성은 이를 “책임감”이라고 했다. “저는 ‘비트’(1997) 이후 작품 선별을 고민할 수밖에 없었어요. 당시 파급효과가 너무 컸고, 그걸 실질적으로 느꼈으니까요. 조폭영화는 일부러 출연하지 않았죠. 주어진 명예를 받아드는 건 굉장히 순간적이지만, 그걸 어떻게 책임감 있게 유지해나가는지가 중요한 거잖아요. 세상에 대한 소통 방식과 나만의 철학도 필요하고요.”


최근의 정우성은 한결 열린 마음으로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거의 매년 한 작품 이상씩을 선보이곤 한다. 그는 “20대 때는 너무 고지식하게 일했던 것 같다”며 머쓱해했다.

“그땐 한 작품 촬영 중 들어오는 다른 시나리오는 보지도 않았어요. 굉장히 선택이 느렸죠. 지금 와서 돌아보니 ‘멍청한 놈. 왜 작품이 그것밖에 없니. 좀 더 많은 걸 해보지’ 하는 아쉬움이 들더라고요. 그런 보상심리가 작용한 것 같아요. 영화 산업이 커지면서 선택의 폭이 넓어진 측면도 있지만요.”

정우성 이름 석 자 앞에는 여러 타이틀이 붙여진다. 단편영화 ‘킬러 앞에 노인’(2014)을 연출한 감독. 이윤정 감독의 ‘나를 잊지 말아요’(2016)를 세상에 내놓은 제작자. 지구촌 아픔에 공감하는 UN(유엔) 난민기구 친선대사….

“어떤 수식어가 제일 마음에 드세요?” 그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영화배우 정우성.”

특별한 부담감이나 무게감을 느끼지는 않는다고 했다. 그저 무던히 노력할 뿐. “영화배우 정우성이 가져야 하는 세계관의 확대가 끊임없이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직업적으로도, 개인으로도 말이죠.”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