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충원 샬롬누리영광교회 목사(평택샬롬나비 학술위원장)
목사와 평신도는 평등하다. 목사는 상위계급이 아니라 성도들과 동일한 계급이고 신분이다. 목사가 평신도들에게 함부로 지시하고 명령하고 군림할 수 없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남자나 여자나 그리스도 안에서 차별이 없다면, 목사나 평신도나 그리스도 안에서 차별이 없다.
교회는 민주적이어야 한다. 목사는 하나님의 권위를 가지고 성도들 위에 군림할 수가 없다. 목사가 신학교 3년을 나오고 시험을 보아서 목사안수를 받아 목사가 되었지만 그 자격요건이 목사로 하여금 평신도와 목사를 구분하고 그들과 차별하여 대우를 받을 조건을 만들지 않는다.
목사는 성도이고 성도들 중의 하나이다. 그들에게 말씀을 가르치고 성도들을 훈련할 책임을 주었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은 그들로 하여금 성도들 위에 서서 성도들이 그에게 복종하고 그의 말을 맹종할 이유를 주지 않는다.
성도들은 목사 아래 있지 않고 그리스도의 권위 아래 있다. 그래서 목사가 권위로 군림하려 할 때 자유를 주장할 수 있다. 성도들이 들어야 할 것은 목사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다.
목사의 말은 어떤 때는 하나님의 말씀이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 그들의 신학적인 지식들은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가리고 있고 그들의 인간적인 욕심이 교회의 운영을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나게 만든다.
목사들은 성도들보다 더 하나님의 뜻에 가까운가? 그래야 하지만 현실은 오히려 성도들보다 더 완고하고 더 순수하지 못하다. 그들이 목사라는 이유로 성도들이 그들에게 순종해야 한다는 말은 일종의 폭력적인 요구이다. 평신도가 스스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여 능동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따르게 하지 않고 단지 목사의 말에 고분고분 따르게 만들면서 이렇게 하는 것이 당연히 예수님을 따르게 만드는 것은 하나님의 자리에 서서 성도들이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것을 가로막는 것이다.
목사는 하나님을 잘 모른다. 이 사실에서 목사는 출발해야 한다. 성도들과 동일하게 하나님을 잘 모르고 그래서 그들과 함께 하나님을 더 잘 알려고 하나님을 추구하는 동료들일 뿐이다. 목사나 평신도나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들이고 서로 간에 도움을 주고받아야 할 지체들이다.
목사가 성도들보다 나은 것 이상으로 성도들이 목사보다 나은 것이 많다. 목사가 성도들을 이끌어야 한다면 동시에 성도들에게 이끌림을 받아야 한다. 목사와 평신도의 관계는 상호적이지 일방적이고 위계적이지 않다. 목사와 성도 간의 관계를 위계적으로 만든 것은 유교의 가부장적 전통이고 목사의 교만과 무지이고 성도들의 순진함과 비겁함이다.
우리가 목사를 위계적으로 높은 자리에 둠으로써 성도들은 성장하지 못했고 자율적 그리스도인으로 서지 못했다. 예수를 오래 믿고 직분자가 되었지만 주를 아는 지식이 어린아이와 같고 하나님의 말씀과 목사의 말을 구분하지 못한다.
목사의 말만 들어 왔기에 세상을 모르는 목사가 가르쳐 준 진리로써 세상을 영적으로 바르게 이해할 수 없게 되고 따라서 세상에서 주를 섬기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따르게 되었다. 목사를 따르는 성도들이 세상에서 빛이 되지 못한 것은 너무 당연한 이치이다. 목사와 평신도의 엄격한 위계적인 구분은 폐기되어야 할 악습이다.
오늘날 사회에서 민주주의가 위기를 맞고 있고 민주주의의 회복이 절실한 과제라면, 교회 내의 민주화는 더 절실한 과제이다. 이것은 교회를 세속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복음화시키는 것이다. 교회가 세상처럼 권위주의 아래 예속되어 있는 것에서 복음적인 평등의 정신으로 회복되는 것이다.
이것은 이미 루터가 만인제사장론으로 제안한 것이다. 지금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한다고 야단이다. 그러나 우리는 루터의 종교개혁이 시작한 목사와 성도의 평등화의 과제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아니 너무 이 과제의 완수는 심각하게 막혀 있다.
목사가 평신도의 말에 귀를 기울여 들을 수 있는 교회, 성도들이 목사의 말에 반대하고 이의를 제기하고 성경에 입각해서 동등한 자리에게 토론할 수 있는 교회가 일어나야 한다. 목사가 틀릴 수 있고 성도들이 맞을 수 있는 관계가 정상적이다.
목사의 말을 항상 옳다고 인정되고 성도들의 말은 대부분 틀린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교회라면 이것은 정상적인 교회가 아니다. 평신도들은 목사와 생각이 다를 때 더 자기를 주장할 수 있어야 한다. 목사의 폭력적 권위주의에 대항하여 해방을 선언하고 부당한 차별에 대항하여 평등을 주장해야 한다.
목사의 권위에서 해방된 평신도, 자율적으로 성경을 읽고 성경의 원리를 따라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성숙한 성도들을 위해서 목사는 존재한다.
목사와 성도 간에 차이가 있다면 목사는 더 겸손하게 주님의 마음을 가지고 성도들을 섬기는 자라는 것이다. 목사의 권위를 말하려면 섬김을 말해야 하고 이것 말고는 더 낮아져야 한다.
*외부 필자의 기고 및 칼럼은 국민일보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