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재벌 출신 대통령과 미디어 재벌의 ‘수상한’ 밀월관계

입력 2017-02-09 20:04 수정 2017-02-10 03:51
루퍼트 머독 뉴스코퍼레이션 회장(왼쪽 뒷모습)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장녀 이방카.

부동산재벌 출신인 도널드 트럼프(70) 미국 대통령과 세계적인 언론재벌인 루퍼트 머독(85) 뉴스코퍼레이션 회장 간의 ‘수상한 관계’에 의혹의 눈길이 쏠리고 있다. 둘의 밀월 관계가 도마에 오르며 미국판 정경(政經) 및 권언(權言) 유착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8일(현지시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두 재벌 간 유착 관계는 양가 집안 딸들의 끈끈한 관계에서부터 확인할 수 있다. FT는 트럼프의 장녀 이방카(35)가 머독의 딸인 그레이스(15)와 클로이(13)의 재산 3억 달러(3439억원)를 관리해주는 ‘5인 신탁위원회’의 위원이었다고 보도했다. 

 이방카의 대변인도 이런 사실을 공식적으로 확인했고, 미 대선 다음 달인 지난해 12월 말 위원직에서 물러나 지금은 관련이 없다고 밝혔다. 두 딸의 재산은 머독 소유의 뉴스코퍼레이션과 21세기 폭스의 주식 자산으로 미성년자인 이들을 대신해 신탁위원회가 관리해 왔다.
루퍼트 머독의 전 부인 웬디 덩과 딸 그레이스(왼쪽)·클로이 [사진=시나웨이보]

 이방카는 머독 집안과 10년 가까이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특히 2008년 이방카와 남편인 재러드 쿠슈너 현 백악관 선임고문이 한때 결별 위기를 맞았을 때 머독이 두 사람을 자신의 요트에 초청해 화해를 주선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머독의 전 부인 웬디 덩(鄧文迪·48)이 2010년 요르단에서 극소수 지인만 초대해 두 딸의 세례식을 할 때도 이방카를 초대했고, 지난해 9월에는 덩과 이방카가 US오픈 테니스 결승전을 함께 관전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포착되기도 했다. 머독과 이혼한 덩은 트럼프 대통령 취임 전야 만찬에도 초청받아 이방카와 나란히 사진을 찍으며 여전한 친분을 과시했다.
머독(왼쪽)과 이방카가 미국 대선 다음주인 지난해 11월 15일(현지시간) 뉴욕의 트럼프타워 로비에서 만나 서로 인사하고 있다. 데일리메일 홈페이지

 문제는 사적으로 형성된 두 재벌 집안의 결속 관계가 공적 영역으로까지 확대될 가능성이다. 실제 트럼프와 머독은 지금도 수시로 연락을 주고받는 사이인 것으로 알려졌다. FT도 미국 잡지 뉴욕매거진의 지난달 보도를 인용해 트럼프가 머독에게 미디어 산업을 관리·감독하는 미 연방통신위원회(FCC) 위원장 자리를 제안한 적이 있다고 전했다. FCC는 머독 소유의 21세기 폭스를 감독할 뿐만 아니라 미디어 기업 간 인수·합병 계약도 심사하는 기관이기에 여러모로 부적절한 인사가 될 뻔했다는 반응이 나온다.

 양측의 끈끈한 관계가 경제적 손익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실제로 머독은 지난해 12월 미국 대형 통신사 AT&T가 자신의 경쟁자인 타임워너사를 매입하자 트럼프에게 규제 강화를 요구하며 계약 불허를 요구하기도 했다. 타임워너사는 머독이 한때 인수하기 위해 눈독을 들이다 실패한 회사로 산하에 워너브라더스 영화사와 HBO 드라마 채널, CNN 방송 등을 둔 미디어 그룹이다.

 무엇보다 트럼프가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을 구분하지 않고 행동하는 대통령이라는 점도 세간의 우려를 키우고 있다. 트럼프는 이날에도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미국의 고급 백화점 노드스트롬이 이방카의 의류 브랜드(이방카 트럼프)를 퇴출한 데 대해 공개적으로 비판해 논란이 됐다.

 트럼프는 트위터에서 “노드스트롬이 이방카를 매우 부당하게 대우했다”면서 “그녀(이방카)는 훌륭하다. 언제나 내가 올바른 일을 하게 만든다! (퇴출 결정은) 끔찍하다!”고 주장했다. 이 글은 대통령의 공식 트위터 계정(@POTUS)을 통해서도 재전송됐고, 백악관도 트럼프의 이런 신경질적 반응을 적극 옹호했다. 숀 스파이서 백악관 대변인은 정례브리핑에서 트럼프의 트윗을 어떻게 보느냔 기자들의 질문에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과 이방카의 이름(브랜드)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에 대한 불만을 갖고 이방카를 비난하는 것이기에 트럼프 대통령이 이방카를 옹호하려고 한 것”이라고 대통령의 ‘심기경호’에 나섰다. 그는 이어 “트럼프 대통령은 가족들을 옹호하고 그들의 사업 활동과 성공에 대해 박수갈채를 보낼 권리가 있다”고 강조했다.
트럼프가 자신의 개인 트위터 계정에 남긴 반응.

 하지만 미국 대통령의 '제 식구 감싸기'는 당장 집중적인 비난의 표적이 됐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윤리 자문을 맡았던 놈 아이젠은 “너무나도 충격적”이라며 노드스트롬에 불공정경쟁법 위반 혐의로 트럼프 대통령을 고소하라고 조언했고, 민주당 밥 케이시 상원의원(펜실베이니아)은 대변인을 통해 “대통령이 가족을 부유하게 하길 거부한 민간기업을 비난한 것은 비윤리적이고 부적절하다”고 일갈했다. 

 이날 일부 트럼프 지지자들은 트위터 등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노드스트롬 불매운동’에 들어갔지만, 노드스트롬의 주가는 ‘역설적이게도’ 이날 뉴욕 증권시장에서 44.53달러로 전날보다 4.09% 상승한 채 마감됐다. 

 한편 이번 ‘사태’를 계기로 ‘이방카 트럼프’ 브랜드 퇴출이 다른 유통업체로 확대될지도 관심을 모으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이날 TJX컴퍼니(상설할인매장 T.J맥스와 마셜스의 지주회사)도 “지난주에 이방카 트럼프 브랜드의 제품을 매장에 따로 진열하지 않기로 했다”고 보도하며 “특히 ‘이방카 트럼프’란 브랜드 표지판은 완전히 폐기토록 했다”고 덧붙였다.

 앞서 미국에선 ‘지갑을 움켜줘라(Grab Your Wallet)’라는 이름의 반 트럼프 시민단체가 지난해 10월 트럼프의 음담패설 영상(여성의 생식기를 ‘움켜쥔다’는 언급이 등장해 집중적인 비난의 표적이 됨)이 공개된 직후부터 트럼프 브랜드 전반에 대한 불매 캠페인을 펼쳐오고 있다.

구성찬 기자 ichthu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