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과정에서 특혜는 없었다는 공식 입장을 밝힌 것을 두고 재계에서는 특검팀의 수사 압박이 턱밑까지 치닫자 내놓을 수 밖에 없었던 자구책이라고 해석하는 분위기다.
삼성그룹은 이번 입장 표명을 통해 '청와대, 최순실로부터 협박을 받은 피해자'라는 그동안의 주장과 같은 맥락의 행보를 보였다.
다만 특검의 심기를 건들지 않은 선에서 무죄를 주장해왔던 종전의 모습과는 달리 "합병 과정에서 어떠한 특혜도 받은 사실이 없다"고 선을 그은 것은 매우 이례적으로 받아들여진다.
9일 재계·법조계에 따르면 최근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 2015년 7월 진행했던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과 관련한 '삼성그룹 순환출자 문제 심사'에서 수상한 정황을 포착, 공정위에서 근무했던 실무자들을 줄소환하는 한편 압수수색을 벌였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이 합병한 뒤 두 회사에 지분이 있던 삼성SDI 지배력이 커졌고 결국 이 같은 상황은 삼성 계열사간 순환출자고리를 강화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에 공정위는 삼성 SDI가 소유한 삼성물산 주식을 강제로 매각하도록 만드는 심사를 진행, 삼성SDI가 삼성물산 주식 500만주를 매각하라고 요구했다.
특검팀은 이와 관련, 당시 공정위가 삼성SDI 측에 삼성물산 주식 1000만주를 매각하라고 통보하려고 했으나 청와대의 외압으로 이를 축소한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만약 특검팀의 추적결과, 당시 삼성의 합병 과정에서 물밑 거래가 있었다는 것을 공정위가 포착했었다는 점을 밝혀내게 된다면 삼성그룹의 계획에는 큰 차질을 빚을 공산이 크다.
삼성이 그리는 큰 그림은 미르·k스포츠재단 등에 대한 지원은 박근혜 대통령의 강요로 어쩔 수 없이 수용한 것이라는 입장 등으로 요약된다.
최순실씨 모녀에 대한 지원 등도 청와대와 최순실의 협박에 어쩔 수 없이 지원한 것일 뿐이지 금전적 이득을 바라지는 않았다는 것이 삼성의 이번 최순실 사태 출구전략 중 하나다.
하지만 삼성의 권력 승계 과정에서 청와대와 삼성간 모종의 거래가 있었을 것이란 의혹이 특검조사 결과 사실로 밝혀질 경우 상황은 최악으로 치닫게 된다.
당장 이 부회장이 뇌물죄 등으로 인해 재판 과정에서 사법처리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이 경우 삼성은 심각한 경영 공백 상황을 맞게 된다.
이 같은 상황을 의식한 듯 삼성은 그동안의 소극적인 대응에서 적극적인 대응으로 태도를 180도 바꿨다.
삼성그룹은 "삼성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이 종결된 2015년 9월에 공정위의 요청에 따라 순환출자 관련 자료를 공정위에 보냈다"라며 "삼성은 당시 로펌 등에 문의한 결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은 순환출자가 단순화되는 것이므로 공정거래법상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공정위는 삼성 합병건을 검토하면서 법규정의 미비 및 해석의 어려움으로 인해 '합병 관련 신규 순환출자금지 제도 법집행 가이드라인'을 마련했다"며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삼성SDI는 삼성물산 주식 500만주를 합병 후 6개월 내 자발적으로 처분하지 않으면 공정위가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삼성은 공정위의 유권해석에 대해 이견이 있었지만 순환출자를 해소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500만주를 처분했다"며 "삼성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과 관련된 순환출자 해소 과정에서 어떠한 특혜도 받은 사실이 없다"고 일축했다.
한편 특검의 수사 압박이 삼성을 계속 옥죄어 오면 올수록 삼성의 대응 강도는 높아질 것으로 관측된다.
재계 한 관계자는 "특검이 청와대를 겨냥한 수사와 삼성에 대한 수사를 더욱 진행하면 진행할수록 이를 방어하기 위한 삼성의 모습이 활발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