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교사가 ‘왕따 제도’를 교실에서 운영했었고 벌금형을 받았다는 뉴스도 접했다. 교사의 말을 듣지 않거나 숙제를 해오지 않는 아이들은 ‘1일 왕따’, ‘5일 왕따’ 등으로 만들고 학생들로 하여금 그 아이에게 말도 걸지 않도록 하는 제도였다고 한다. 교사가 아이들에게 엄청난 폭력을 행사하도록 지도한 셈이다.
학교 폭력에 대한 제도적, 물리적 통제가 강화된 이후로 신체적인 폭력은 다소 줄어든 듯 보이지만 실제론 폭력의 방법이 더욱 교묘해졌다. 특히 사이버 공간을 통해 폭력이 행사되는 경우가 많이 늘어 피해자 입장에서는 대처하기도 어렵고 사회적인 고립과 무력감은 더욱 심각하다.
피해 학생들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증상이나 해리 증상을 느낀다. 해리 증상은 개인의 의식이나 기억, 정체성, 감정, 행동 등에서 정상적 통합이 와해되거나 부분적으로 단절된 상태를 갖는 상태를 말한다.
이런 증상 뿐 아니라 심지어 상대를 죽이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는 분노 상태나 피해 망상이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상당수 부모들은 적절한 치료 없이 학년이 바뀌거나 전학을 하면 상황이 나아지겠지 기대한다. 하지만 피해 학생들의 마음의 상처는 적절한 심리적인 개입이 없는 한 평생 지속된다.
그래서 가해 학생을 처벌하거나, 그들로부터 분리한 뒤 겉으로 보이는 피해자의 안정에 안도하면 절대 안된다. 필자가 치료하는 환자들 중에는 어려서 학교 폭력을 당한 후 고등학생, 대학생이 된 후에도 자신을 괴롭혔던 친구들에게 복수하고 싶다고 호소하는 이들이 많다. 어떻게 해서라고 찾아내 직접 따지고 제대로 사과를 받아야겠다고 집착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피해 당시 임시 방편으로 전학시키고 안심시키면서 자신의 감정을 돌봐주지 못한 부모를 심하게 원망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심지어 부모와 말도 하지 않고 사회는 물론 가족과의 관계에서도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히키코 모리(은둔형 외톨이)가 되어 병원을 찾아오는 경우도 있다.
피해자들은 직접적인 가해자 뿐 아니라 자신이 놀림과 조롱을 받을 때 모른 척하거나 조금씩 동조했던, 가해자의 행동에 웃으면 맞장구를 쳤던 다수의 친구들에 대한 원망감을 갖고 있다. 아무도 자신을 편들어 주지 않은 상황에 배신감을 느끼고 세상을 등지게 되는 것이다. 히키코 모리 수준까지는 아니어도 마음속에 사람과 세상에 대한 불신과 원망을 갖고 있어 깊이 있는 감정교류를 못하는 경우도 많다.
여러 연구 결과에서도 나타나듯 학교 폭력을 해결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요인은 가해자도 피해자도 아닌, 주변에서 지켜보는 다수의 아이들 즉 ‘방관자’들의 태도라고 한다. 선생님이 안보시는 곳에서 교묘하게 일어나는 학교 폭력을 막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주체는 피해자나 가해자가 아닌 다수의 방관자들이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에 달렸다는 얘기다.
가해자들은 폭력적인 행동이나 피해자를 향한 놀림 행동을 한 뒤 주변 친구들이 관심을 가져주고 호응을 해주면 부추김을 받고 이러한 행동을 더욱 강화하게 된다. 반면 다수 방관자의 태도가 가해자의 행동에 부정적일 때는 가해 행동이 현저히 줄어든다. 옆에 있는 친구들이 가해자의 행동을 소극적으로라도 말리거나 눈살을 찌푸리는 등의 표정이라도 보이면 가해자의 폭력은 훨씬 줄어들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 아이들이 가해자들의 행동에 적극적으로 맞설 수 있다면 좋겠지만 굳이 나서 맞서지 않더라도 ‘폭력은 나빠, 약한 친구의 마음을 이해해’라는 생각을 표정이나 태도로만 드러내도 학교 폭력은 꽤 막을 수 있다. ‘다수의 힘’인 셈이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폭력을 용인하거나 미화하지 않는 태도를 가르치는 게 중요하다.
그러면 누구한테서 이런 태도를 배워야 할까. 당연하게도 부모와 교사다. 그런데 대다수 아이들의 태도를 가르쳐야 할 가장 영향력 있는 교사가 ‘1일 왕따’나 ‘5일 왕따’ 같은 폭압적인 제도를 운영했다는 건 기절초풍할 노룻이다. 아이들에게 매일 매일 폭력을 가르치고, 폭력에 무감각해 지도록 마취시켜 왔다는 얘기 아닌가? 무서운 일이다. 그 교사가 가르친 아이들은 조금씩, 조금씩 영혼을 도둑맞았다.
이호분( 소아청소년 정신과 전문의, 연세누리 정신과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