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씨와 김씨는 오는 12일 서울 종로구 경복고 부설 방송통신고등학교를 졸업한다. 그것도 아주 우수한 성적을 얻어 함께 ‘면학(勉學)상’을 받게 됐다.
이씨는 아내 때문에 고등학교를 두 번이나 다녔다. 전혀 들을 수 없는 1급 청각장애인인 아내의 도우미가 되기 위해서였다. 2급 청각장애인인 자신이 세상 밖 소리를 조금이라도 듣고 아내에게 알려주기 위해 방통고 수업에 어김없이 참석했다.
“제가 조금이라도 듣잖아요. 선생님 말씀을 안 놓치려고 이를 악물고 들었다가 아내한테 입모양으로 전해줬어요. 아내는 또 이를 악물고 그걸 공부했습니다.”
남편 이씨는 젊은 시절 검정고시로 고교과정을 마친 뒤 경원대에 진학했을 정도로 학업에 열심이었다. 점점 귀가 어두워지고 생계마저 위협하자 대학을 중퇴했다.
아내 김씨는 어렸을 때 심한 중이염으로 청력을 완전히 잃었다. 아무 것도 들을 수 없으니 더 이상 말을 배울 수 없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이었다. 그때부터 공장에 취직해 생업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다. 공부가 하고 싶으면 일기를 쓰며 한글을 잊지 않았다. 오빠의 책과 시집을 몰래 꺼내 읽었다. 그녀가 쓴 자작시 노트는 아직도 소중한 보물처럼 책꽂이에 꽂혀 있다.
두 사람은 20년 전 지인의 소개로 부부의 인연을 맺었다. 결혼하며 서로 굳게 약속했다, 언젠가는 꼭 함께 공부해 못다 이룬 청춘의 꿈을 이뤄보기로. 김씨는 딸(17)과 아들(8)을 낳아 기르느라 사력을 다했고, 이씨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온 힘을 다했다.
그 틈에도 아내는 2014년 근로자와 주부를 위한 중학교 과정 2년을 졸업했다. 한문도 익혀 한문 8급과 7급, 6급 자격증을 잇달아 취득했다.
그리고 남편에게 “좀 더 공부가 하고 싶은데요”라고 넌지시 마음을 비쳤다. “자식들한테 당당한 엄마가 되고 싶다”는 소망에서였다. 남편은 흔쾌히 허락했을 뿐 아니라, 그때부터 아내의 귀가 됐다.
2014년 경복고 부설 방통고에 같이 입학했다. 등교할 때는 당시 5살이던 아들을 업고 갔다. 아내가 강의를 듣지 못해 수업을 못 따라가면, 남편이 노트에 적어 알려줬다. 온라인 수업도 자막을 보며 공부했다.
“수업시간에 우리 집 식구들을 배려해주신 선생님과 학생분들께 어떻게 감사함을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아내 김씨는 어눌한 말투지만 또박또박 말했다.
“제게 진짜 사랑의 눈을 뜨게 해준 아내가 너무 고마워요.”
방통고 이정곤 교무부장은 “우리가 두 분에게 더 고맙다”며 “남편은 아내의 귀가 돼 선생님 말씀을 전하고 아내는 한 순간도 한 눈 팔지 않고 공부에 정진하니 다른 동급생들마저 감탄하며 더 학업에 매달렸다”고 했다.
김씨는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 사회복지학과에 입학해 학업을 계속한다. 또 서울 중구 영락교회 안에 있는 서울성서신학원에서도 진학했다. 교회에서 자신과 같이 청력을 잃은 사람들에게 사랑과 믿음을 가르치는 전도사가 되는 게 꿈이다. 남편 이씨는 한국방송통신대 농학과에 입학한다. 나중에 귀농하면 살림살이를 도맡겠다는 생각이다.
“마음 착한 아내가 박사까지 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하나님이 마음만은 누구 부럽지 않은 부자인 우리 가정을 더 행복하게 만들어주실 줄 믿습니다.”
남편 이씨의 말 속에서 부부의 두 가슴에 든 사랑이 밤하늘의 별처럼 빛나고 있었다.
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