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사랑해요, 고마워요" 청각장애 아내 위해 고교 2번 다닌 '호떡장수 순애보'

입력 2017-02-08 16:59 수정 2017-02-09 20:36
호떡장사 이명우(55)·김미화(49)씨 부부는 겉으로 보면 여느 보통사람과 다름이 없다. 하지만 자세히 관찰해보면 참 특별하다. 우선 두 사람 모두 청각장애인이다. 또 둘 다 서울 신일교회 집사로 신실한 하나님의 성도다. 두 사람을 가장 빛나게 하는 건 누구도 따라올 수 없을 만큼 서로를 사랑한다는 점이다.

청각장애인 호떡장수 이명우·김미화씨 부부가 7일 오후 서울 지하철 5호선 애오개역 앞에서 판매하는 ‘웰빙’ 호떡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강민석 선임기자

이씨와 김씨는 오는 12일 서울 종로구 경복고 부설 방송통신고등학교를 졸업한다. 그것도 아주 우수한 성적을 얻어 함께 ‘면학(勉學)상’을 받게 됐다.

이씨는 아내 때문에 고등학교를 두 번이나 다녔다. 전혀 들을 수 없는 1급 청각장애인인 아내의 도우미가 되기 위해서였다. 2급 청각장애인인 자신이 세상 밖 소리를 조금이라도 듣고 아내에게 알려주기 위해 방통고 수업에 어김없이 참석했다.

12일 고등학교를 함께 졸업하는 50대 호떡장사 청각장애 부부. 강민석 선임기자

“제가 조금이라도 듣잖아요. 선생님 말씀을 안 놓치려고 이를 악물고 들었다가 아내한테 입모양으로 전해줬어요. 아내는 또 이를 악물고 그걸 공부했습니다.”

남편 이씨는 젊은 시절 검정고시로 고교과정을 마친 뒤 경원대에 진학했을 정도로 학업에 열심이었다. 점점 귀가 어두워지고 생계마저 위협하자 대학을 중퇴했다.

아내 김씨는 어렸을 때 심한 중이염으로 청력을 완전히 잃었다. 아무 것도 들을 수 없으니 더 이상 말을 배울 수 없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이었다. 그때부터 공장에 취직해 생업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다. 공부가 하고 싶으면 일기를 쓰며 한글을 잊지 않았다. 오빠의 책과 시집을 몰래 꺼내 읽었다. 그녀가 쓴 자작시 노트는 아직도 소중한 보물처럼 책꽂이에 꽂혀 있다.

두 사람은 20년 전 지인의 소개로 부부의 인연을 맺었다. 결혼하며 서로 굳게 약속했다, 언젠가는 꼭 함께 공부해 못다 이룬 청춘의 꿈을 이뤄보기로. 김씨는 딸(17)과 아들(8)을 낳아 기르느라 사력을 다했고, 이씨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온 힘을 다했다.

강민석 선임기자

그 틈에도 아내는 2014년 근로자와 주부를 위한 중학교 과정 2년을 졸업했다. 한문도 익혀 한문 8급과 7급, 6급 자격증을 잇달아 취득했다.

그리고 남편에게 “좀 더 공부가 하고 싶은데요”라고 넌지시 마음을 비쳤다. “자식들한테 당당한 엄마가 되고 싶다”는 소망에서였다. 남편은 흔쾌히 허락했을 뿐 아니라, 그때부터 아내의 귀가 됐다.

호떡을 파는 트럭에 적힌 문구, 강민석 선임기자

2014년 경복고 부설 방통고에 같이 입학했다. 등교할 때는 당시 5살이던 아들을 업고 갔다. 아내가 강의를 듣지 못해 수업을 못 따라가면, 남편이 노트에 적어 알려줬다. 온라인 수업도 자막을 보며 공부했다.

“수업시간에 우리 집 식구들을 배려해주신 선생님과 학생분들께 어떻게 감사함을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아내 김씨는 어눌한 말투지만 또박또박 말했다.
“제게 진짜 사랑의 눈을 뜨게 해준 아내가 너무 고마워요.”

이명우·김미화씨 부부 가족이 수화로 기도드리는 모습. 강민석 선임기자

방통고 이정곤 교무부장은 “우리가 두 분에게 더 고맙다”며 “남편은 아내의 귀가 돼 선생님 말씀을 전하고 아내는 한 순간도 한 눈 팔지 않고 공부에 정진하니 다른 동급생들마저 감탄하며 더 학업에 매달렸다”고 했다.

김씨는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 사회복지학과에 입학해 학업을 계속한다. 또 서울 중구 영락교회 안에 있는 서울성서신학원에서도 진학했다. 교회에서 자신과 같이 청력을 잃은 사람들에게 사랑과 믿음을 가르치는 전도사가 되는 게 꿈이다. 남편 이씨는 한국방송통신대 농학과에 입학한다. 나중에 귀농하면 살림살이를 도맡겠다는 생각이다.

“마음 착한 아내가 박사까지 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하나님이 마음만은 누구 부럽지 않은 부자인 우리 가정을 더 행복하게 만들어주실 줄 믿습니다.”

남편 이씨의 말 속에서 부부의 두 가슴에 든 사랑이 밤하늘의 별처럼 빛나고 있었다.

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