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용산구(구청장 성장현)가 안중근 의사(義士) 추모행사와 이봉창 의사 기념관 건립을 추진한다.
구는 오는 13, 14일 이틀동안 안 의사를 추모하는 다채로운 행사를 갖는다. 13일에는 용산구 효창공원 내 안 의사의 가묘(假墓)를 찾아 단체헌화를 하는 ‘효창원 가는 길’을 진행한다. 오전 9시30분 성장현 용산구청장과 한국홍보전문가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 숙명여자대학교 학생 등 40여명이 함께 효창공원을 찾는다.
1946년 백범 김구 선생 주도로 조성된 안 의사의 가묘는 삼의사(이봉창·윤봉길·백정기) 묘 바로 옆에 위치해 있다. 묘단 아래에는 ‘유방백세(遺芳百世·꽃다운 이름이 후세에 길이 남다)'라는 네 글자가 새겨져 있다.
이어 오전 10시30분에는 용산아트홀 소극장에서 지역 고등학생들이 직접 만든 ‘안중근 의사 UCC’를 3편 상영한다. UCC제작에는 용산공고, 오산고, 서울디지텍고 학생 11명이 제작에 참여했다. 구는 지난 20일 이들 학생들을 ‘명예 안중근 의사 지킴이’로 임명했다.
이어 ‘우리 가슴 속의 안중근 토크콘서트’가 낮 12시까지 진행된다. 서 교수와 독립기념관 김주용 박사가 패널로 참여하며 성 구청장도 참여해 구에서 역사 바로 세우기 사업을 시작하게 된 배경과 그간의 성과, 향후 계획 등을 밝힌다.
사형선고일 당일인 14일 아침에는 ‘안중근 의사의 마지막 소원’ 영상물을 용산구와 서 교수의 SNS를 통해 배포한다. 이 영상은 구와 서 교수가 함께 제작했으며 국제적 홍보를 위해 영어판도 함께 배포할 예정이다.
성장현 구청장은 “조국을 위해 헌신한 안 의사의 마지막 소원은 ‘대한독립’과 ‘고국귀환’이었다”며 “안 의사의 유해를 하루속히 발굴하고 효창원 빈묘에 제대로 모시기 위해서는 범국민적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1879년 태어난 안 의사는 1909년 10월 26일 만주 하얼빈역에서 침략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했다. 러시아 헌병에게 체포돼 일본 관헌에 넘겨진 그는 이듬해 2월 14일 사형이 선고됐고 3월 26일 32세의 짧은 일기를 끝으로 처형됐다.
용산구는 지역의 대표적 독립투사인 이봉창(1901~32) 의사의 생애를 대중에 알리기 위해 작은 기념관을 건립하기로 했다.
기념관은 이 의사의 옛집이 자리했던 효창동 118번지 인근에 들어설 예정이다. 현재 주변은 효창4구역 주택재개발사업이 진행 중이며 재개발조합은 내년 말 아파트 준공과 함께 479.1㎡ 규모의 소공원을 구에 기부채납할 예정이다.
구는 조합과 서울시 협의를 거쳐 해당 소공원을 ‘역사공원’으로 용도 변경하고 이곳에 2018년까지 연면적 60㎡ 이내로 이 의사 기념관을 건립할 예정이다. 기념관 내부에는 이 의사의 생애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전시관 등을 조성할 계획이다.
이 의사는 1901년 용산구 원효로2가에서 신흥 자본가의 아들로 태어나 청파동에 있던 문창학교에 입학했다. 이후 가세가 기울어 효창동으로 이사했으며 과자가게, 약국 점원 등으로 일했다.
1931년 중국 상하이로 건너가 한인애국단에 가입했다. 이후 임시정부 국무위원 김구 선생의 지시를 받고 일왕 히로히토를 암살하기로 결심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본으로 32년 1월 8일 히로히토를 향해 수류탄을 던졌으나 실패하고 체포되었다. 그 해 10월 비공개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이치가야형무소에서 사형이 집행됐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됐다.
성장현 구청장은 “이봉창 의사는 결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후손이 없어 안중근, 윤봉길 등 다른 의사들에 독립운동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기념사업이 활발히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열사가 살았던 용산구가 그 분을 기리는 데 앞장서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념관 건립을 추진하게 됐다”고 말했다.
라동철 선임기자 rdch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