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에 범죄 입증 자료 많을 가능성
탄핵 인용 고려해 만반의 준비해야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청와대 압수수색을 다시 강행할 뜻을 강력히 시사했다. 이규철 특검팀 대변인은 7일 정례 브리핑에서 “특검팀이 저번(3일) 압수수색 나갔을 때 청와대로부터 임의제출 이외의 어떤 방식도 수용할 수 없다는 불승인 사유서를 받았다”면서 “(그러나) 특검팀은 임의제출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 대변인은 “(청와대의) 정식 공문이 접수되면 특검팀이 취할 수 있는 후속조치를 취할 생각”이라며 “그 내용에 대해서는 그때 가서 말씀드리겠다”고 말했다.
이 대변인은 청와대 강제진입 여부에 대해서는 “그런 부분을 구체적으로 말할 수는 없고 과연 이 상태로 압수수색을 마무리하고 임의제출 받는 방식으로 상황을 종료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더 다른 방안이 없는지 최종적으로 검토하고 압수수색 영장 기간(오는 28일) 이전에 어떤 식으로든 마무리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특검팀이 청와대 뜻대로 자료를 임의로 받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특검팀은 6일 ‘수사 기간 연장 카드’도 꺼내면서 청와대를 압박했다. 이 대변인은 이날 “수사 기간 연장 승인 신청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검법상 수사 기간은 오는 28일 끝나지만 30일 연장할 수 있다. 특검팀이 수사 기간 연장 승인 신청을 하면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승인 여부를 결정한다. 황 권한대행 측은 “요청이 오면 승인 여부를 검토하겠다”는 원론적인 입장만 밝힌 상태다.
특검팀이 청와대의 자료 임의제출 제안을 거부하고 수사 기간 연장 카드를 꺼낸 것은 다목적 포석으로 해석할 수 있다. 우선 특검법상에 명시된 수사대상 14가지와 이들 의혹을 수사하면서 인지한 사건을 조사하기에는 물리적으로 시간이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최순실씨 딸 정유라씨의 이화여대 부정 입학사건은 사실상 일단락됐고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특검팀은 7일 블랙리스트 사건과 관련해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구속기소하고 김상률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과 김소영 전 청와대 문화체육비서관을 불구속 기소했다. 김 전 실장과 조 전 장관에 대해서는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죄와 강요죄, 위증죄를 적용했다.
하지만 특검팀이 가장 역점을 두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씨, 삼성을 포함한 기업들의 정경유착 의혹에 대해서는 아직도 수사가 진행 중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되면서 다른 대기업에 대한 수사는 사실상 시작하지도 못했다.
우병우 전 민정수석의 직무유기 의혹 등은 이제 막 수사에 착수한 상태다.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이 특검팀에 제출한 업무수첩 39권에 대한 심도 있는 검토 작업도 필요한 실정이다. 아직도 갈 길이 먼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청와대의 임의제출 방안을 일축하고 수사 기간 연장 방침을 밝힌 것은 박 대통령과 황 권한대행을 압박하기 위한 카드로 보인다. 박 대통령 대면수사와 청와대 압수수색을 조건 없이 수용하라고 강도 높게 촉구한 것으로 불 수 있다.
헌법재판소에서 진행하는 탄핵심판이 3월 초순 ‘인용’으로 결정 나면 박 대통령을 민간인 신분으로 불러 수사·기소할 수 있는 길도 열어둔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이 현직에 있는 한 형사상 불소추 특권의 대상이지만 헌재가 탄핵심판에서 인용 결정을 하면 박 대통령의 신분이 민간인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특검팀은 수사 기간을 연장해 놓고 헌재의 탄핵심판 과정을 지켜보면서 청와대 압수수색과 박 대통령에 대한 고강도 조사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으로 관측된다.
청와대에 대한 압수수색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안 전 수석이 특검팀에 제출한 업무수첩 39권은 청와대 압수수색이 왜 필요한지를 한눈에 알 수 있게 한다. 얼마 전까지 청와대 사무실에 보관돼 있었던 이들 수첩에는 2014년부터 지난해 11월 구속 직전까지 안 전 수석의 업무 내용이 자세히 적혀 있다. 이들 수첩은 안 전 수석이 부인의 뇌물수수 혐의에 대해 선처를 호소하며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수첩은 검찰이 확보한 업무수첩 17권과는 다른 내용이다. 특검팀이 확보한 안 전 수석의 업무수첩 39권을 분석하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추가 혐의들이 드러날 가능성이 농후하다.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안종범 전 수석, 정호성 전 부속비서관 등 피의자들이나 박 대통령과 우병우 전 민정수석 등 국정농단 의혹을 받고 있는 인사들의 청와대 사무실이나 컴퓨터에는 자신들도 모르는 자료들이 남아 있을 수 있다. 구속기소된 안 전 수석의 업무수첩 39권이 청와대 사무실에 버젓이 있었던 것을 보면 지나친 추론이라고 할 수도 없다.
청와대는 형사소송법을 거론하며 청와대 압수수색을 거부하고 있지만 설득력이 없다. 비밀을 유지해야 할 자료들이 있다면 압수수색 현장에서 청와대 관계자와 특검팀이 협의해 처리하면 될 일이다. 국민은 청와대가 추가로 범죄 혐의가 드러나거나 움직일 수 없는 증거들이 나올 것을 우려해 압수수색에 응하지 않고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이제 공은 황 권한대행에게로 넘어갈 것이다. 황 권한대행은 특검팀이 수사 기간 연장 승인을 신청하면 좌고우면하지 말고 승인해야 한다. 특검팀은 수사에 속도를 내면서 박 대통령 대면수사와 청와대 압수수색을 관철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수사 기간이 연장되고 헌재의 탄핵심판이 인용될 경우에 대비해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한다. 다시는 이 땅에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같은 불행한 일이 생기지 않도록 모든 의혹을 파헤치고 피의자들을 엄벌해야 마땅하다.
염성덕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sdyu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