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서 ‘프랑스 우선주의’ 바람이 거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내세웠던 ‘미국 우선주의’의 파동이 대서양을 넘어 프랑스를 덮친 것이다. 극우정당 국민전선(FN) 마린 르펜(48) 대표는 무소속 에마뉘엘 마크롱(39) 전 경제장관과 공화당 프랑수아 피용(62) 전 총리와 엎치락뒤치락 지지율 싸움을 하면서 확실한 극우주의 색깔을 드러냈다. 공약과 발언의 수위가 극우를 넘어 혐오에 가까워 ‘관용의 나라’에서 ‘무관용 후보’가 나왔다는 비아냥도 나오고 있다.
AFP통신과 일간 가디언은 르펜이 5일(현지시간) 남동부 리옹에서 ‘프랑스 우선주의’를 내걸고 지지자들 앞에서 화려한 대선 출정식을 치렀다고 보도했다. 르펜은 전날 발표한 144개 공약의 핵심인 “반(反)이민, 반세계화, 반이슬람 근본주의”를 외치면서 “프랑스를 누구에게도 빚을 지지 않는 나라로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특히 “금융과 이슬람의 세계화가 프랑스를 마비시켰다”며 당선되면 고립주의로 돌아가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브렉시트(Brexit·영국의 EU 탈퇴)를 따라 프렉시트(Frexit·프랑스의 EU 탈퇴)를 향한 의지도 드러냈다. 르펜은 “벨기에 브뤼셀(EU 본부 소재지)의 폭정으로부터 프랑스를 해방시키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EU가 대규모 개혁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취임 후 6개월 안에 프렉시트 국민투표를 실시하겠다”고 공약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탈퇴와 프랑스가 유로화 전 사용하던 화폐인 프랑화로 화폐단위 복귀를 추진하겠다는 발언도 이어갔다.
이민자를 향한 반감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르펜은 이슬람 신자들이 길거리에서 기도하는 것을 ‘나치의 점령’에 비유하면서 “우리는 이슬람 근본주의의 폭정 아래 살고 싶지 않다”고 강조했다. 지난 3일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서 일어난 공격을 언급하면서 외국인 범죄율을 낮추고 불법 이민자를 추방하기 위해 경찰 1만5000명을 추가 고용해 경계를 확대한다는 방침도 밝혔다. 프랑스 국적자가 외국인보다 더 혜택 받는 정책도 공약에 포함됐다.
반면 르펜의 대척점에 선 프랑스 극좌야당 좌파당 대표 장 뤽 멜랑숑(65) 대선 후보도 같은 날 두 곳에서 열린 선거 유세장에 동시에 모습을 드러냈다. AP통신은 멜랑숑이 이날 리옹에서 열린 집회에 참석하면서 500km 떨어진 파리 생드니의 집회에도 ‘동시에’ 참석했다고 전하며 비결은 최첨단 홀로그램 기술이었다고 덧붙였다. 멜랑숑 후보 대변인은 리옹에서 열린 유세에 1만2000명이 모였고, 생드니 집회엔 6000명이 참석해 가상현실로 멜랑숑의 연설을 경청했다고 밝혔다.
이를 두고 멜랑숑에 노골적인 반감을 나타내 온 극우진영에선 “(극좌파 후보가) 신기술에 대한 대중의 호기심을 이용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선동 정치를 은폐하고 있다”고 비난했지만, 르펜의 유세와 마크롱의 하루 전 리옹 연설에 각각 1만 명이 모인 것과 비교해 볼 때, 멜랑숑의 홀로그램 선거유세는 나름 성과를 거뒀다는 평가다.
한편 프랑스 여론조사기관 오피니언웨이는 6일 프랑스 대선 결선 투표에서 마크롱이 르펜을 큰 차이로 따돌릴 것이라는 설문 조사 결과를 내놨다. 설문 결과에 따르면 프랑스 대선 1차 투표에서는 르펜이 26% 득표율로 1위를 차지하고 마크롱이 23%, 피용이 20%의 득표율로 2~3위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르펜과 마크롱 두 후보의 양자대결이 예상되는 2차 결선 투표에선 마크롱이 65%의 득표율을 확보하고 르펜은 35%의 득표율에 그칠 것으로 전망됐다.
구성찬 기자 ichthu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