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에 되게 춥죠? 오늘 너무 추워가지고….”
배우 류준열(31)은 언제나처럼 살갑게 인사를 건넸다. 특유의 환한 미소와 함께. 영하의 날씨에 밖에서 사진 촬영을 마치고 카페 안으로 들어온 뒤였다. 영화 관련 인터뷰로 만난 건 처음. 최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마주한 그는 작품에 대한 만족감으로 사뭇 들뜬 듯했다.
류준열은 영화 ‘더 킹’에서 당당히 주역을 소화해냈다. ‘소셜포비아’(2014) ‘로봇 소리’ ‘섬, 사라진 사람들’ ‘글로리데이’(이상 2015) ‘계춘할망’(2016) 등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펼쳤으나 상업영화에서 이토록 비중이 큰 배역을 맡은 건 처음이다. 정치검사 박태수(조인성)의 삶을 통해 권력을 풍자한 영화에서 그는 태수의 죽마고우이자 폭력조직 ‘들개파’의 2인자 최두일을 연기했다.
‘더 킹’은 류준열이 tvN ‘응답하라 1988’(응팔)로 스타덤에 오른 뒤 선택한 첫 작품이었다. 앞서 MBC ‘운빨로맨스’에 출연했으나 촬영 시기는 ‘더 킹’이 먼저였다. 차기작 선정에 있어 고민이 많았을 법하지만 류준열은 “캐릭터가 주는 맛이 있었기에 부담은 없었다”고 했다. 그만큼 두일 캐릭터가 매력적이었다는 얘기다.
두일은 ‘들개’ 이미지에 딱 들어맞는 인물이다. 순박하고 의리가 있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끝까지 지켜낸다. 박태수, 한강식(정우성), 양동철(배성우) 등 검사들이 실리를 추구하며 시시각각 태세를 바꾸는 데 비해 두일은 변함이 없다. 답답하리만치 우직하다.
그런 두일을 류준열은 들개 같은 눈빛으로 표현해냈다. 특히 엔딩신에서의 슬픈 눈빛이 쉽사리 잊히지 않는다. 마치 숨이 끊기기 직전 한 마리의 짐승 같은 느낌. 류준열도 이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사실 이 기사의 타이틀은 류준열의 요청으로 지어진 것이다. “기사 제목에 꼭 들개 넣어주세요. 들개 류준열을 만나다(웃음).”
물 흐르듯 몰아치는 그의 유쾌한 언변에 어느덧 정신을 놓아버린, 그 날의 기록이다.
-‘더 킹’ 출연 제안을 받고 뛸 듯이 기뻤다고. 당시 기분이 어땠나.
“제가 한재림 감독님의 굉장한 팬이었어요. 감독님의 전작 ‘연애의 목적’(2005) ‘우아한 세계’(2007) ‘관상’(2013) 세 편을 다 재미있게 봤거든요. ‘나중에 이 감독님과 꼭 작업하고 싶다’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시나리오를 받으니까 너무 설레고 떨리더라고요. 재미있는 게, 제가 감독님 미팅 가기 전에 세 작품을 다시 봤거든요. 근데 ‘연애의 목적’ 대사가 다 기억나는 거예요. 그만큼 명작이었지 않나 싶습니다(웃음).”
-한재림 감독의 작품이라 정말 감회가 남달랐을 것 같다.
“그렇죠. 처음에 책(시나리오)을 받고 읽어보지도 않고 하고 싶다는 생각부터 들었어요. 그만큼 감독님에 대한 신뢰가 있었죠. 역시나 술술 읽히더라고요. 원래 제가 책을 되게 느리게 읽는 편인데 이 시나리오는 영화 러닝타임 정도로 술술 읽혔어요. 그리고 감독님 처음 뵀을 때 연예인 보는 느낌이었어요. ‘내가 즐겨보던 영화를 이 사람이 만들었구나.’ 실제로 뵈니까 되게 기분이 이상하더라고요.”
-정우성 조인성 등 선배들을 봤을 때도 그렇지 않던가.
“당연히 그랬죠. 두 분 다 워낙 제가 배우를 꿈꾸기 이전 학창시절부터 TV나 영화에서 맹활약하시던 분들이잖아요. 뭐, 예상하시는 바와 같이. 기자님들은 우성 선배님, 인성 선배님 처음 뵀을 때 어땠어요?”
-아하하. 깜짝 놀랐다.
“깜짝 놀랐죠? 같은 기분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각자 느끼시는 것이 저와 아주 가까운 느낌이지 않을까(웃음).”
-스스로 극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을 꼽아본다면.
“저는 아무래도 엔딩신이었던 것 같아요. 사실 저는 엔딩신부터 찍었거든요. 첫 촬영은 학창시절 버스신이었는데, 그 다음 촬영이 바로 엔딩신이었어요. 그래서 더 기억에 남고, 감독님도 애를 많이 써주셨죠. 그때 굉장히 집중해서 찍었어요.”
-그 장면에서 정말 들개 같은 눈빛이 나온 것 같다.
“크으, 고맙습니다. 시나리오를 읽을 때부터 두일이에게 굉장히 들개 같은 느낌이 있었어요. 그리고 감독님이 굉장히 들개를 좋아하시는 것 같더라고요. 농담 삼아서 영화사 이름도 ‘들개필름’으로 하려고 했대요. 와일드독(Wild-dog) 이런 느낌으로. 본인이 만든 인물에 그걸 담아내어 저에게 주셔서 감사하죠(웃음).”
-언론시사회 때도 ‘들개의 눈빛’이라는 평이 나왔는데.
“와일드독이 굉장히 두일이라는 인물을 잘 표현하는 말이지 않나 싶어요. 감독님의 어떤 숙원, 염원을 잘 해소해드리지 않았나(웃음). 두일이 보면 들개 같지 않나요? 그 마지막에 도망 다니기가 귀찮다며 가진 돈 다 털어서 수트 하나 사 입고. 크으.”
-두일 이외에 극 중 욕심났던 다른 캐릭터가 있다면.
“아니요. 없어요. 전 오직 들개. 들개로 살다 들개로 죽겠습니다. 기사 제목에 꼭 들개 넣어주세요. 들개 류준열을 만나다(웃음).”
-두일을 표현하는 게 쉽지만은 않았을 것 같은데.
“제가 하고 싶은 연기랑 맞닿은 부분이 있어서 되게 즐겁게 촬영했어요. 음, 사람이 살아가면서 자기감정을 대놓고 표현하는 경우가 거의 없잖아요. 명동이나 강남에 가보면 사람들이 걸어 다닐 때 별로 표정이 없듯이. 그런 점에 있어서 배우로서 가져야할 연기의 목표는, 인간답게 표현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저 나름대로 그 지점을 찾아가고 있어요. 두일이 같은 경우 그런 부분을 잘 표현하기 좋은 인물이었고, 결과적으로도 잘 되지 않았나 싶어서 좋았던 것 같아요.”
-선배들이 ‘류준열 연기는 담백하다’는 칭찬을 많이 하던데, 본인만의 연기 방식이 있나.
“담담하게 표현하는 게 더 인간적이지 않나 싶어요. 보통 진짜 필요한 순간 이외에는 자기감정을 숨기고 사니까. 그런 수많은 인간 군상 중 하나를 표현하려면 담담한 방법이 맞지 않나.”
-선배들이 해준 조언 중 기억에 남는 게 있다면.
“초심에 대해서 얘기를 많이 해주신 것 같아요. ‘지금 네가 해온 거 잘 봤다. 되게 좋다. 앞으로도 그대로 가 보라’고 조언해주셨어요. 그게 결국을 초심을 잃지 말라는 얘기가 아닌가 싶어요. 세 분 선배님들이 워낙 칭찬을 많이 해주셨어요. 촬영하면서 계속. 그게 막내의 묘미이지 않나(웃음). 너무 예뻐해 주셔서 감사하죠.”
-그 ‘초심’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얘기해줄 수 있나.
“저는 30년을 제 방식대로 살아왔고, 그대로 작품도 해왔잖아요. 제가 선택한 길들이 좋은 결과로 이어진 것 같아서 그 자세를 잃지 않으려고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계속 저답게 해나가고 싶어요. 그래서 팬들에게도 ‘가장 자기다운 모습을 지키라’고 얘기하곤 하거든요.”
-‘류준열답다’는 건 뭔가.
“음, 어려운 질문이네요. ‘당신의 매력이 뭐라고 생각하세요?’라고 물으면 할 말이 없는 것처럼(웃음). 그냥, 건강한 생각을 많이 하려고 하는 것 같아요. 사람이 따뜻하고 깨끗한 걸 보려고 하면 그것만 보이거든요. 반대로 안 좋은 것만 보려고 하면 안 좋은 것 투성이고요. 되도록 장점을 보려고 노력하면 세상이 아름다워질 것 같아요.”
-차기작 ‘택시운전사’ ‘침묵’ 개봉을 앞두고 있고 ‘리틀 포레스트’ 촬영도 들어갔다. 장르를 가리지 않고 열일 중인데.
“만약 재미있는 작품이 없으면 저는 1년이고 2년이고 (활동을) 안 할 것 같아요. 있으니까 계속 하는 거예요. 다행히 시간이 허락하니까. 제 팬들은 제가 굉장히 다양한 캐릭터를 해보길 원하시더라고요. 좀비영화 찍어달라거나 의사 역할 해달라거나 사극을 해보라고도 하시고…. 너무 많으니까 그냥 ‘아, 작품을 많이 하길 바라는 구나’ 싶어서 그렇게 하고 있어요(웃음).”
-팬들이 정말 열정적이더라. 류준열 기사마다 댓글이 줄줄이 달린다.
“제 팬들 열정적입니다. 진짜 깜짝 놀랄 정도로(웃음).”
-그 인기의 이유는 뭘까.
“이건 ‘당신의 매력은 뭐죠’와 같은 질문인데…(웃음). 그냥 자기와 비슷한 사람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본인과 비슷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끌리는 거죠. 저도 팬들에게 배울 때가 많아요. (그런 감정을) 서로 나누고 공유하는 즐기고 얘기하는 시간들이 다 너무 재미있는 것 같아요.”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