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찬성이 3년6개월 만에 오른 옥타곤은 한국에서 시차상으로 15시간 떨어진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 도요타센터였다. 정찬성은 여기서 경기 시작 150초 만에 전광석화처럼 상대를 몰아붙여 쓰러뜨리고 승리를 확정한 뒤 땀으로 흠뻑 젖은 상반신에 태극기를 둘렀다.
정찬성은 심판과 맞잡은 손을 들어 승리를 확인하고 옥타곤에서 곧바로 진행된 인터뷰에서 공백 기간 동안의 준비 과정과 승리의 소감을 밝혔다. 그리고 악수를 청하며 축하하는 장내 아나운서의 마이크를 다급하게 붙잡고 코리안탑팀에 감사를 표한 뒤 이렇게 말했다.
“제가 이런 말을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지금 대한민국 시국이 많이(매우) 어렵습니다. 대한민국 사람들이 한마음으로 화합해서 이번에는, 이번만큼은 마음 따뜻하고 강력한 지도자가 탄생하길 기도합니다.”
정찬성이 이역만리 타지에서 어렵게 입을 열어 미국 관중들 앞에서 말한 것은 박근혜정부 국정농단 세력의 처벌을 촉구하는 촛불민심을 향한 위로, 그리고 새롭게 시작할 대한민국의 희망 찬 미래였다.
정찬성은 5일 도요타센터에서 열린 UFC 파이트 나이트 104 페더급 매치에서 데니스 버뮤데즈(미국)를 1라운드 시작 2분30초 만에 테크니컬녹아웃(TKO)으로 제압했다. 버뮤데즈는 이 체급 9위의 강자다. 정찬성은 오른손 어퍼컷 한방으로 승부를 갈랐다.
정찬성에게 이 경기는 3년6개월 만의 복귀전이었다. 또 올해 한국 선수가 출전한 첫 번째 UFC 대회였다. 정찬성은 2013년 8월 조제 알도와 가진 UFC 163 페더급 타이틀전에서 어깨 탈구로 TKO 패배를 당한 뒤 부상 부위 수술과 병역의 의무를 지면서 오랜 시간 옥타곤을 떠났다.
정찬성은 수술 후유증과 장기 공백을 극복하고 재기에 성공한 자신처럼 조국이 다시 일어서길 바라는 마음으로 옥타곤 케이지 문을 열고 나가기 직전 장내 아나운서의 마이크를 다급하게 붙잡고 시국을 말했다. 통역가는 영어로 정찬성의 발언을 옮기는 과정에서 “강한 대한민국”을 한국어로 말했다.
관중석에서는 정찬성의 아내가 아이의 사진을 프린팅한 스마트폰을 품에 안고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중계방송으로 경기를 시청한 팬들도 함께 울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 타임라인에는 “정찬성의 마지막 한 마디에 눈물을 왈칵 쏟았다” “그 와중에 나라를 걱정하는 파이터에게 감동했다” “정찬성처럼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용기를 얻었다”는 글이 쏟아졌다.
중계방송사 해설진은 “가슴 먹먹한 승리 소감을 말했다. 시국이 어렵고 대한민국이 여러 상황에 봉착했지만 정찬성의 멋진 경기를 통해 국민 모두가 조금은 어려운 상황을 극복할 힘을 찾지 않았나 싶다”고 말했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