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 성경 해석에 따르라?… 스스로 답 구해보세요

입력 2017-02-03 15:08
“공부가 없었다면 개혁도 없었을 것이다.”

뚱딴지같은 소리처럼 들리지만 종교개혁사가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다. 르네상스 시대 지식인들은 히브리어와 헬라어 원서로 성경을 읽었다. 대표적 인문주의자였던 에라스무스는 원서를 읽다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 4:17)는 성구가 “고해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로 오역된 것을 발견했다. 본래 성경은 개인의 참회를 강조했으나 기존 교회는 성직자 앞에서의 죄책 고백을 구원의 열쇠인 양 가르쳤던 것이다. 이런 것들이 하나둘 발견되면서 로마가톨릭교회의 권위에 금이 갔다. 마르틴 루터도 성경을 공부하면서 면죄부 판매가 성경의 가르침에 정면으로 위배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때마침 인쇄술의 발달로 성경이 널리 보급됐다. 그리스도인들이 스스로 말씀을 읽고 혼자 묵상하면서 성직자가 성경을 전유하는 시대는 막을 내렸다.


오늘날 한국교회에도 이런 ‘공부’가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크다. 김근주 느헤미야기독연구원 교수는 3일 “여전히 많은 목회자들이 성경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거나 교회 중심으로 가르친다”고 지적했다. 그 예로 ‘권세들에 복종하라’는 구절이 포함된 로마서 13장을 들었다. 최근 일부 목회자가 이를 근거로 대통령 퇴진 요구가 옳지 않다고 주장했다. 평상시에는 목사의 권위에 도전해선 안 된다는 데 인용하기도 한다. 김 교수는 “세월호 참사가 왜 일어났느냐고 물었을 때 어떤 목사는 ‘하나님이 더 큰 복을 주기 위해 고난을 주신 것’이라고 답했다는 데 과연 그렇게 쉽게 말할 수 있는 것이냐”며 “그리스도인들은 스스로 성경을 읽고 공부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헤아릴 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하나님의 참된 뜻을 분별하기 위해 목회자에게만 의존하지 말고 스스로 공부를 해야 한다는 얘기다.

하나님의 질서에 어긋나는 것을 고쳐나가기 위해서도 공부가 필요하다. 고재백 기독인문연구원 원장은 “공부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비판적 사고력을 기르는 것이고 이것이 (종교개혁의 근원이 된) 인문정신”이라고 단언했다. 비판이 실종될 때 오류가 시정되지 않고 공동체는 경직돼 간다. 교회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고 원장은 “한국교회는 영성에 비해 지성이 매우 부족하고 일부에서는 반지성주의적 기류마저 있다”고 꼬집었다. 성경이나 신앙생활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면 ‘믿음이 부족하다’거나 ‘기도를 더 하라’고 답하는 게 다수 교회 분위기라는 것을 고려하면 놀라운 지적이 아니다.

하나님 나라를 확장해 나가는 데도 지성이 필요하다. ‘공부하는 그리스도인’의 저자인 이원석 작가는 “북유럽 국가의 복지수준이 높은 것은 시민들의 정책 이해도가 높고 사회적 공감대가 넓기 때문”이라며 “그 바탕에 ‘시민대학’과 같은 지역공동체 공부모임이 있다”고 설명했다. 공부모임에서 구체적 정책에 대한 토론이 활발히 이뤄지고 이를 통해 사회적 가치를 공유해 간다는 것이다.

시민대학을 시작한 이는 덴마크의 국부로 불리는 니콜라이 그룬트비(1783~1872) 목사였다. 그는 ‘내면의 개혁’이 사회발전의 핵심이라고 보고 기독교적 가치를 바탕으로 한 학교를 세웠다고 한다. 이 작가는 “스웨덴 등 북유럽 여러 국가가 덴마크의 교육모델을 따라했다”며 “한국에서도 기독교인들이 이런 소규모 아카데미나 공부모임을 통해 사회변화를 이뤄갈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기독교인들은 공부모임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가치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하고 그 소망을 품을 수 있다. 사회문제의 대안을 고민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복음주의 지성의 스캔들’(2010)의 저자 마크 A 놀은 이 책에서 “미국의 복음주의자들은 대중적인 차원에서 큰 성공을 거뒀지만 진지한 지성을 지켜가는 데는 실패했다”고 꼬집었다. 지성의 역량을 발전시키지 않은 결과 지성이 약화됐고 문화로부터 멀어졌다는 것이다. 한국교회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1970~80년대 한국교회는 청년문화의 중심이었지만 오래 전 그 자리를 교회 밖에 내줬다. 그러나 하나님에게 의지한다면 우리에게 희망은 있다. 그리스도인들이 공부한다면 500년 전 유럽에 일었던 개혁의 물결이 우리에게도 밀려올지 모른다. 

‘자, 이제 공부하러 갈까요.’

강주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