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소송법 '국익 해치지 않으면 허용' 명시
'대통령기록물법' 위반 여부도 꼭 확인해야
청와대가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압수수색을 불허한다는 의사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특검팀이 청와대 6곳을 압수수색 대상으로 지목하자 청와대가 3곳은 가능하다는 입장을 전달했다는 국민일보 보도를 청와대 정연국 대변인이 전면 부인하고 나섰다.
국민일보는 2일자 “특검 ‘靑 6곳 압수수색’ vs 靑 ‘안돼… 3곳만 가능’”이란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다. 국민일보 보도를 요약해보자.
“특검은 청와대 비서실장실, 민정수석실, 정책조정수석실, 제1부속실, 경호실, 의무실 등을 압수수색 대상으로 지목해 통지했다. (중략) 청와대는 ‘경내 압수수색은 안된다는 원칙에 변함이 없다’는 입장이다. 다만 본관에 위치한 제1부속실과 비서실장 등 참모진이 근무하는 위민관(비서동)에 대한 압수수색은 절대 불가하지만, 대신 경호실과 의무실은 제한적으로 허용할 수 있다는 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검이 비서실장실과 민정수석실 등에 대한 압수수색을 고수하자 정책조정수석실까지 더해 3곳의 압수수색을 받아들이는 절충안도 내놨다고 한다.”
청와대는 국민일보 보도에 대해 “사실이 아니다”고 부인했다. 정연국 대변인은 2일 출입기자들에게 보낸 문자메시지를 통해 “청와대는 기존 입장에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청와대의 기본 입장은 압수수색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청와대는 지난해 10월 검찰 특별수사본부가 압수수색을 시도할 때도 수사팀의 청와대 경내 진입을 불허하고 임의 제출 형식으로 자료를 제출했다. 이번에도 청와대 입맛에 맞는 자료만 주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청와대는 경내 압수수색을 불허하는 근거로 형사소송법을 들고 있다. 하지만 형사소송법 제110조를 보면 청와대의 해석이 얼마나 아전인수 격인지 알 수 있다. “제110조(군사상 비밀과 압수) ①군사상 비밀을 요하는 장소는 그 책임자의 승낙 없이는 압수 또는 수색할 수 없다. ②전항의 책임자는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해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승낙을 거부하지 못한다.”
특검팀이 군사상 비밀을 요하는 청와대에 들어가 압수수색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든 이들은 박근혜 대통령, 김기춘 전 비서실장, 우병우 전 민정수석,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 정호성 전 부속비서관 등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직간접적 연루 의혹을 받고 있는 인사들이다. 이들이 국정농단·블랙리스트 작성·정경유착·정유라씨 이대 특혜 입학 의혹 등을 받지 않는다면 청와대 압수수색을 할 필요도 없다.
형사소송법 제110조 ①항만을 보면 청와대 입장에 동조할 수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형사소송법 제110조 ②항을 보면 청와대 주장에는 전혀 설득력이 없다.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해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압수수색을 거부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청와대가 특검팀의 압수수색에 응하지 않겠다는 것과 ‘중대한 국익’과 무슨 관련이 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압수수색 결과 박 대통령의 혐의를 입증할 만한 구체적인 물증이 나올 것을 우려해 이중, 삼중의 방패막이를 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특검팀의 청와대 압수수색 의지는 확고하다. 이규철 특검팀 대변인은 2일 정례 브리핑에서 “압수수색 장소가 박 대통령 의혹과 관련한 모든 장소(국민일보가 보도한 6곳 언급)로 보면 되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범죄 혐의와 관련 있는 장소 및 물건에 대해 할 수 있기 때문에 방금 말씀하신 장소들이 포함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 대변인은 그동안 진행된 정례 브리핑에서 “청와대는 대통령의 기록물이 보존되는 지역이고, 여러 서류는 보존할 의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 대변인은 일각에서 제기하는 청와대의 증거 인멸에 대해 “아무리 증거를 없애려고 해도 불가능할 뿐 아니라 증거 인멸할 경우 다 드러날 수 있다”면서 “압수수색 과정에서 (증거 인멸 여부를) 충분히 조사할 수 있으며, 그런 측면에서라도 압수수색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 대변인이 ‘대통령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대통령기록물법)을 강조한 것은 대통령기록물을 손상·은닉·폐기·반출할 수 없고, 이를 어기면 엄한 처벌을 받기 때문이다.
대통령기록물법은 “대통령기록물 생산기관의 장은 보존기간이 경과된 대통령기록물을 폐기하려는 때에는 전문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폐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누구든지 무단으로 대통령기록물을 파기·손상·은닉·멸실 또는 유출하거나 국외로 반출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대통령기록물을 무단으로 파기하거나 국외로 반출하면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고, 대통령기록물을 무단으로 은닉·유출·손상·멸실시키면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청와대가 대통령기록물을 파기·손상·은닉·멸실·유출·국외 반출을 했을 경우 이 대변인이 강조한 것처럼 압수수색을 하면 적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사정을 종합할 때 청와대가 ‘중대한 국익’ 때문에 압수수색을 불허한 것으로 보는 국민이 얼마나 될까. 결정적인 물증이 나오는 것을 우려하거나 대통령기록물의 훼손 행위를 감추기 위해 형사소송법 등을 거론하며 압수수색을 사실상 ‘방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지켜보고 있는 국민은 전 과정을 속속들이 알아야 할 권리가 있다. 또 범죄 혐의를 낱낱이 밝혀내려면 청와대 압수수색과 박 대통령의 대면조사는 반드시 필요하다. 청와대는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으며 특검팀의 압수수색을 거부하면 안 된다. 특검팀의 압수수색을 조건 없이 수용하고, 수사에 성실히 임하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그것이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예우다.
염성덕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sdyu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