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분의 아이들 세상] 게임 중독에 빠진 아이들

입력 2017-02-02 15:03
이호분 연세누리 정신과 원장

방학 동안 컴퓨터 게임 문제로 엄마와 아이들이 실랑이를 벌이는 것은 흔한 일이다. 아이들이 게임에 빠지는 이유는 다양하지만 지나치게 성취욕이 강하고 경쟁적인 성격이 원인이 되기도 한다.

T는 중학교 3학년 남학생이다. 컴퓨터 게임에 빠져 잠자는 것도 잊고 밥을 먹으면서도 게임을 한다고 했다. 게임을 못하게 하면 엄마에게 욕을 하고, 심지어 엄마를 밀치고 폭행하기도 했다.

어릴 때 T는 머리가 좋을 뿐 아니라 공부를 썩 잘해 가족과 친척은 물론 학교에서도 온갖 기대를 한몸에 받으며 자랐다. 초등학교부터 특목고를 준비하기 위해 새벽까지 학원에서 공부했고, 당연히 친구들과 어울려 놀 시간은 없었다.

T의 가족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편이었지만 T의 교육에는 아끼지 않고 투자했다. T의 아버지는 T처럼 어려서 똑똑하다는 평을 들었었지만 가정 형편상 대학엘 가지 못했고 그것이 한이었다. 엄마 또한 매우 성취 지향적이고 열심인 분이었고, 아이에게도 그런 태도를 요구했다. 부모는 공부와 관련해 점점 더 많은 걸 요구했고 T가 느끼는 심리적인 부담도 그만큼 커졌다.

하지만 부모에게 인정받는 것이 중요했던 T는 이런 내색을 못하고 부모의 기대를 만족시켜왔다. 부모가 마음을 읽어 주지 않아 자기의 감정이 어떤 것인 줄도 모르고….

그런데 중학교 2학년에 접어들어 사춘기가 되면서 집중력도 떨어지고 생각이 많아졌다. 왜 공부를 해야하는지 이유를 알수 없었다. 당연히 성적도 떨어졌다. 특목고를 준비하는 대다수 친구들과는 다른 가정환경이 열등감으로 작용했다. 이를 보상하려고 늘 경쟁에서 이기려고 해왔던 T는 좌절을 견딜 만큼 마음이 자라지 못한 상태였다.  

친구도 별로 없어 마음을 나눌 수 없었다. 조금씩 외롭고 무기력해졌지만 부모는 눈치 채지 못했다. 그러던 차에 컴퓨터 게임에서 T는 짜릿함을 맛봤다. 공부 외 또 다른 ‘승부의 세계’에 빠진 셈이다. 게임을 통해 상대를 제압하고, 모두들 자신 앞에 무릎 꿇게 하는 성취감을 짜릿하게 느꼈다. 현실에서의 열등감을 보상할 수 있었기에 T는 현실세계로 나오기보다는 게임 속에 피신하고 싶었던 것이다.

게임에 빠지는 아이들은 T처럼 승부욕이 강하지만 무기력하거나 고립되어 있어 다른 이들과 감정을 교류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다. 고위험군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부모들은 이런 아이의 특징에는 별 관심이 없다가 게임 중독이라는 문제 행동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다급해 진다. 하지만 아이의 발달 과정을 살펴보면 적어도 3~4년 정도, 아니 그 이상 오래 전부터 문제를 잉태하고 있었고 결과로서 게임중독에 빠진 것이라고 봐야 한다. 

부모는 강하게 행동 통제를 하면 될 거라고 생각해 아이를 야단치고 통제한다. 그러다 아이가 크게 반항하면 아차 싶어 뒤로 물러난다. 이후로는 부모는 권위를 상실하고 아이와 동등한 수준에서 싸우게 되고 심지어 부모 자녀간 지위가 역전되어 아이에게 사정 하게 된다. 문제가 자꾸 미궁으로 빠져가는 것이다. 

T처럼 부모 자식간 관계가 극도로 나빠진 후에야 병원을 찾는 경우가 많다. 이런 상황이 닥치면 먼저 아이의 마음을 살펴야 한다. 게임이 현실에서 실현하기 힘든 인정욕구를 채워가는 수단이며, 현실을 회피하기 위한 피난처임을 이해하고 또 다른 건강한 안전지대를 만들어 줘야한다. 관심과 흥미를 가질만한 대안을 찾아 줘야 한다. 

게임을 자제하고 갑자기 공부를 하게 하는 건 부모의 헛된 바람일 뿐 전혀 현실적이지 않다. 유익하진 못하더라도 유해성이 적고 아이가 좋아하는 활동에 관심을 갖는 과도기를 거쳐야 하고, 아이와 함께 규칙도 정하고 생활을 조금씩 구조화 해야 한다. 조급함은 금물이다.

이호분(연세누리정신과 원장, 소아청소년 정신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