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광화 “연출가 데뷔 20주년에 극작가로서 새로운 의욕”

입력 2017-02-02 10:12
올해 연출가 데뷔 20주년을 맞아 연극·뮤지컬계 동료들과 ‘조광화展’ 여는 조광화. 김지훈 기자

“연출가 데뷔 20주년을 맞아 아이러니하게도 극작가로서 좋은 희곡을 좀더 많이 써야겠다는 의욕이 생겼어요.”

 극작가 겸 연출가 조광화(52·서울예대 교수)가 올해 연출 데뷔 20주년을 맞아 연극·뮤지컬 동료들과 함께 ‘조광화展’(제작 프로스랩)을 개최한다. 1~5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 소극장 TOM 1관에서 20주년을 기념하는 콘서트 ‘리플라이(REPLY)'를 시작으로 16일 연극 ‘남자충동’, 4월 신작 낭독회와 연극 ‘미친키스’가 잇따라 펼쳐진다.

 1일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원래 주변의 권유로 ‘남자충동’ 20주년 기념공연을 올릴 계획이었다. 그런데 그동안 연극과 뮤지컬에서 함께 작업했던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나서면서 판이 커졌다. 감사하면서도 부끄럽다”고 말했다. ‘남자충동’에 류승범, 박해수, 손병호, 김뢰하, 황영희 등 연기파 배우들이 출연하는 등 ‘조광화展’에는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대거 동참했다. 특히 조광화의 절친한 벗이자 음악감독인 구소영은 ‘리플라이(REPLY)' 콘서트를 연출하고 ‘조광화展’의 드라마투르그를 맡는 등 동분서주했다.

 중앙대 연극반 출신인 조광화는 1992년 신춘문예 희곡 부문에 ‘장마’가 당선되면서 데뷔했다. 이듬해 극단 작은 신화에서 최용훈 연출로 무대에 오른 ‘황구도’가 평단과 대중의 주목을 받았다. 그리고 ‘종로 고양이’ ‘오필리어’ 등을 잇따라 쏟아내며 차세대 극작가로 각광받던 그는 1997년 ‘남자충동’을 통해 연출가로도 이름을 알렸다. 

 그는 “극작가는 혼자서 쓰는 작업이라 외로움을 많이 느낀다. 그래서 작품을 만드는 내내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연출가가 되고 싶었던 것 같다”고 웃었다. 이어 “관객은 나를 연출가로 먼저 기억하는데 비해 평단이나 공연 관계자들은 극작가에 무게를 두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배우 박해수(왼쪽)와 류승범이 더블 캐스팅 된 연극 ‘남자충동’의 포스터.

 그의 대표작이 된 ‘남자충동’은 삼류 폭력조직을 이끄는 가부장적인 남자 장정의 이야기를 그렸다. 영화 ‘대부’의 알 파치노 콤플렉스(강한 남성이 되어야 한다는 남성의 집착과 열등의식)를 가진 그는 결국 주변과 갈등을 일으킨 끝에 파멸하고 만다. 이 작품은 1997년 초연 당시 동아연극상 작품상과 연출상 등 각종 연극상을 휩쓸었다. 이후 2004년 재연 뒤 다시는 무대에 오르지 않았다. 1998년 초연된 ‘미친키스’는 사랑에 대한 집착으로 점점 폭력적이고 자괴적으로 변하는 남자 장정의 이야기다.  다른 이야기지만 주인공을 모두 장정이라고 이름붙인 것은 덩치만 컸지 진정한 어른이 되지 못했다는 점에서 공통적이기 때문이다. ‘장정’이란 이름은 덩치 큰 청년을 가리키는 단어와 당시 그가 좋아했던 시인 장정일에서 따온 것이다.

 그는 “이번에 장정 시리즈를 다시 준비하면서 한국 사회가 사람들을 진정한 어른으로 키우지 못하는 것을 느낀다. 요즘 우리 주변에서 장정처럼 몸만 커졌을 뿐 정신적으로 미성숙한 사람들을 너무 많이 보게 된다. 그런 사람들이 가부장이 되어 허망한 이미지일 뿐인 가짜 욕망을 우리 사회에 주입시키고 있다”면서 “사실 ‘남자충동’을 다시 준비하면서 요즘 시대에 철지난 이야기가 아닐까 걱정했다. 그런데, 지금 시국을 보면서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을 실감했다. 박근혜 대통령만 보더라도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으로 대표되는 가부장주의에서 전혀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에 리딩공연 형태로 선보이는 신작은 당초 미래를 배경으로 한 또다른 장정 이야기를 쓸 계획이었다. SF물로 지구에서 농부였던 장정의 기억이 이식된 복제인간이 주인공이다. 하지만 묵시록 서사로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는 내용이 리딩공연만으로는 이해하기 쉽지 않다고 판단해 또다른 신작으로 대체됐다. ‘우중소풍’이란 제목의 이 작품은 한모금 마시면 사랑하는 사람이 보이는 술을 소재로 했다. 이 작품 역시 판타지적 요소가 강하다. 그는 “돌이켜보면 내 작품 속 인물은 늘 외로움과 정열의 감정을 강렬하게 느낀다. 어려서부터 우주인이 주인공인 SF를 좋아했는데, 세상에서 한없이 고립된 존재여서 그랬던 것 같다”면서 “신작 ‘우중소풍’ 역시 외로움과 그리움에 대한 이야기다”고 설명했다.

 그는 1999년 뮤지컬 버전으로 만든 ‘황구도’(대본)를 비롯해 ‘록햄릿’(대본) ‘베르테르’(연출) 등 일찍부터 뮤지컬에 관심을 가졌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천착한 것은 2007년 그가 대본과 연출을 맡은 ‘천사의 발톱’부터다. 이후 그는 ‘소리도둑’ ‘내 마음의 풍금’ ‘남한산성’ ‘서편제’ 등 여러 창작뮤지컬의 대본 또는 연출을 맡았다. 

 그는 “내가 예전에 쓴 연극들은 ‘센’ 이야기들이 많다. 그런 뜨거움을 담기엔 음악의 힘이 강한 뮤지컬이 좋다고 생각했다”면서 “그런데, 이제 나이를 먹고 예전보다 긍정적이 된 덕분에 힘을 빼고 글을 쓸 수 있게 됐다. 악을 쓰거나 소리지르지 않는 담담한 희곡을 쓰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그동안 작품 속에서 내 외로움을 앓는 소리로 얘기했지만 이제는 사회 안에서 가치 있는 이야기를 쓰고 싶다. 아직도 코미디는 자신없지만 인간과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우화적으로 풀어내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