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연석, 연기밖에 모르는 이 낭만 배우의 직진 [인터뷰]

입력 2017-02-02 00:02
킹콩엔터테인먼트 제공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게 이건데, 난 이것만 생각하고 달려온 놈인데…. 내가 이걸 안 해도 행복할 수 있을까? 이것 말고 다른 어떤 일을 하며 살 수 있을까?’

배우 유연석(본명 안연석·33)이 최근 가장 흔들렸던 순간, 홀로 수없이 되뇌인 질문. 여기서 ‘이것’은 ‘연기’라는 단어로 치환된다. SBS ‘낭만닥터 김사부’ 합류 전 그는 데뷔 이래 14년 만에 처음으로 쉼표를 찍었다. 거침없이 내달린 그에게 주어진 몇 개월간의 공백은 스스로도 꽤 낯선 경험이었을 테다.

이런저런 고민에 시달렸으나 그 시간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연기에 대한 끓어오르는 갈증이 명쾌한 해답이 되었으니. 한결 산뜻해진 마음으로 유연석은 ‘낭만닥터 김사부’ 촬영에 들어갔다. 그래서인지 결과 또한 성공적이었다. 시청률 작품성 연기력에서 모두 부족함 없는 성과를 거뒀다.

극 중 ‘흙수저’ 집안에서 태어나 근성과 오기로 외과의사가 된 강동주 역을 소화한 유연석은 안정적인 연기로 전체적인 흐름을 잡았다. 자신의 성공만을 위해 분투하던 그가 괴짜 천재의사 김사부(한석규)를 만나면서 진정한 의사로 거듭나는 과정을 설득력 있게 그려나갔다.

혹자는 tvN ‘응답하라 1994’(응사·2013) 이후 4년 만에 찾아온 인생작이라 한다. ‘칠봉이’의 뒤를 이을 인생캐릭터를 만났다는 말도 나온다. 그러나 유연석은 차분했다. 최근 서울 강남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에게 들뜬 기색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영화 ‘올드보이’(2003)로 데뷔하고 나서 근 10년간 별다른 성과를 못 냈던 시절도 있거든요. 넘치는 사랑을 받으면 부족할 때도 있을 거라 생각을 해요. 이번에도 마찬가지죠. 너무나 과분한 사랑을 받아서 다음에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모르겠지만, 성적에 상관없이 저에겐 똑같이 소중한 작품들이에요. ‘낭만닥터 김사부’도 그런 과정 속 하나의 작품인 거죠.”

유연석은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한다. 한 가지 이미지를 고수하고 싶지 않아서다. 어떤 경험이든 좋은 밑거름이 될 거라는 강한 믿음이 있다. 꿈을 이루기 위해 여전히 ‘들이받고’ 있다. 그렇게 그는 치열하게 연기를 사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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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사랑을 받았는데, 동주 캐릭터가 처음부터 본인에게 잘 맞았나.
“처음에는 어색했어요. 미성숙한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 자체가 어색했는데 어느 샌가 점점 맞아가더라고요. 캐릭터가 성장하면서 저 또한 성장해나간 것 같고요. 그래서 후반부에는 불편함 없이 연기한 것 같아요.”

-‘낭만닥터 김사부’를 찍으면서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아무래도 의학용어라든지 수술신이라든지 일반인들이 전혀 알 수 없는 용어들과 행동들을 해야 하니까 쉽지 않았죠. 처음에는 암호처럼 보이기도 했어요. 그것도 계속 하다 보니까 익숙해져서 조금씩 나아지더라고요. 재미도 있고(웃음).”

-촬영장 분위기가 워낙 좋았다고. 시청률에 좋은 영향을 받았나.
“첫 방송 전부터 너무 좋았었어요. 시청률이 점점 올라가니까 물론 기뻤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무의미해지더라고요. 많은 분들이 공감해주고 있다는 걸 안 순간부터는 수치가 그리 중요치 않았던 것 같아요. 이미 기대했던 것 이상을 달성했으니까요. 그래서 중반 이후에는 더 공을 들여서 작품 완성도를 높이려는 노력을 많이 했죠.”

-출연 제의를 처음 받았을 때는 어떤 점에 가장 끌렸나.
“미성숙한 인물이 조금씩 성숙하고 성장해나가는 부분에 끌렸던 것 같아요. 그리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들이받는 청춘의 모습을 보여주는 모습들이 흥미로웠어요.”

-일 뿐만 아니라 윤서정(서현진)과의 사랑에 있어서도 들이받는 캐릭터였는데.
“그렇네요(웃음).”

-실제 본인과는 얼마나 닮은 부분이 있던가.
“음…. 사랑을 들이받아 가면서 하는 편은 못 되는 것 같은데, 그렇다고 도망가는 스타일은 아니에요.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고백이라도 해보고 마무리하는 정도는 되는 것 같아요. 짝사랑을 5~7년씩 해본 적은 없어요. 해봤자 9~10개월 정도? 그래서 동주와 제가 완전히 똑같다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네요).”

-극 중 두 사람의 멜로가 짧아 아쉽다는 시청자들이 많았다.
“보통 의학드라마에서 멜로가 나오면 안 좋아하시던데 저희 같은 경우는 이상하게 분량을 더 늘려달라는 말씀을 많이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한 회당 2~3신 정도 있는 멜로신을 더 공 들여 찍으려고 많이 노력했어요. 어느 순간부터는 수술신보다도 더 열심히 찍은 것 같아요(웃음).”

킹콩엔터테인먼트 제공

-김사부 역을 맡은 선배 한석규와의 호흡도 굉장히 좋았는데.
“선배님과는 영화 ‘상의원’(2014) 때 호흡을 맞췄었는데 그때는 군신관계라서 눈을 맞추며 연기하지 못했어요. 이번에는 눈을 맞춘 정도가 아니라 들이받고 육탄전까지 벌였으니 너무 좋았죠. 한석규 선배님은 특유의 여유와 부드러운 카리스마가 있으세요. 강동주의 사부이기도 하지만, 어느 샌가 저 유연석의 사부가 되어있다고 느낀 적도 많았어요.”

-특히 언제 그렇게 느꼈는지.
“촬영하다보면 연기가 뜻대로 되지 않을 때가 있잖아요. 그러면 선배님이 구석으로 데리고 가서 조용히 어깨동무를 하며 조언을 해주세요. ‘지금도 좋은데 이런 쪽으로 한 번 해보면 어떨까?’ 잠깐 숨을 돌리게 만들어주시죠. 특히 밤새고 아침에 만났을 때 어깨를 툭툭 두드려주시면서 ‘잘하고 있다’고 말씀해주셨던 순간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그 어떤 조언보다 힘이 됐죠.”

-어떻게 보면 동주의 삶과 배우 유연석의 삶에 비슷한 부분이 많은 것 같다.
“그렇죠. 의대에 가서 전문의가 되기까지 10년 넘게 걸리잖아요. 그 과정에 얼마나 우여곡절이 많겠어요. 동주도 성공하기 위해 집착한 적이 있어요. 김사부를 만나 의사로서의 의미를 다시금 깨달았지만요. 저 역시 ‘올드보이’로 데뷔해서 ‘응답하라’로 많은 분들에게 이름을 알리기까지 꼬박 10년이 걸렸어요. 좋은 적도 많고 아쉬운 적도 많았죠. 그러면서도 좋은 작품, 좋은 선배님들을 만나 성장해온 것 같아요. 그런 면에서 동주랑 많이 닮았죠.”

-초등학교 때부터 연기자를 꿈꿨다고. 그토록 확고한 꿈의 끝자락에는 어떤 목표가 있나.
“작년쯤이었나. 이순재 선생님과 ‘꽃할배’들처럼 배우의 삶을 살아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분들이 그저 연기를 오래하셨기 때문이 아니라요. 그 연세에도 뜨거운 열정을 갖고 계시기 때문이에요. 저도 그렇게 되고 싶다는 목표가 생겼어요.”

-유연석이 생각하는 배우란 어떤 존재인가.
“기준이 계속 달라지긴 하는데요. 사람들이 속 시원히 드러내지 못하는 감정 혹은 어떤 말을 대신 해주는 사람인 것 같아요. 대신 울어주고, 대신 웃어주고, 대신 소리쳐주고, 대신 얘기해주는 사람일 수 있겠다. 뭐, 그런 생각을 했어요.”

-2017년을 맞아 기대하는 바가 있다면.
“낭만적이었으면 좋겠네요.”

-낭만적이라는 게 어떤 의미인가.
“‘낭만’에 두 가지 의미가 있더라고요.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로망. 그리고 인간미가 나는 로맨틱함. 그 두 가지가 다 있었으면 좋겠어요. 사람 냄새나는 한 해를 보내면서 제가 꿈꾸는 이상을 하나하나 이뤄갔으면 좋겠어요.”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