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현지시간)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 오헤어 국제공항에서 열린 반 이민 행정명령 반대시위에 아버지를 따라 나선 미리엄 이을드름(7)과 아딘 벤닷아펠(9)은 무등을 타고 손피켓을 들었다. 히잡(무슬림 여성의 머리 스카프)을 두른 이을드름과 키파(유대인 남성의 정수리 모자)를 쓴 벤닷아펠이 나란히 아버지들의 어깨 위에서 ‘사랑’과 ‘증오의 종식’이 적힌 피켓을 든 모습은 시카고트리뷴 사진기자의 카메라에 담겨 폭발적인 반향을 이끌어냈다.
사진을 촬영한 누치오 디누조 기자는 타임지와의 인터뷰에서 공항 시위 사흘째 되던 날 국제선 터미널에서 해당 장면을 포착했다고 밝혔다. 디누조 기자는 “28∼29일엔 시위 참가자가 1500명에 이를 정도로 많았지만, 30일엔 미국 입국 외국인을 돕던 변호사를 포함 시위 인원이 수십 명에 불과했다”면서 “히잡을 쓴 소녀가 피켓을 든 모습을 보고 셔터를 누르기 시작했다”고 촬영 당시를 회상했다.
그의 기억에 따르면 무슬림 소녀의 아버지 파티 이을드름이 딸을 어깨 위로 태워 사진 찍기 좋은 자세를 만들자 디누조의 셔터 누르는 속도 역시 덩달아 빨라졌다. 그러자 이번엔 바로 옆에 있던 유대인 소년의 아버지 조단 벤닷아펠이 아들을 목말 태우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사진기자의 본능이 발동했다는 디누조는 앵글을 고정한 채 “히잡을 쓴 무슬림 소녀와 키파를 쓴 유대인 소년이 서로 바라보기만을 기다렸고, 마침내 한 프레임에 귀여운 아이들을 모두 담아낼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디누조 기자는 곧바로 사진을 회사에 전송했지만 신문 제작 마감시간이 지나 지면엔 싣지 못하고 회사 홈페이지와 트위터에만 올렸다. 그의 사진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부터 뜨거운 반응을 불러 모았다. 하룻밤 사이에만 8000명 이상의 사람들이 사진을 자신들의 트위터로 실어 날랐고 ‘좋아요’를 누른 사람만 1만3천명이 넘었다.
경력 25년의 베테랑 사진기자 디누조는 “각종 뉴스 사진을 트위터에 올렸지만, 그간 리트윗되고 ‘좋아요’ 반응을 얻은 건 손에 꼽을 정도였다”고 멋쩍어 하면서 지난해 ‘로큰롤의 황제’ 가수 브루스 스프링스틴이 리트윗한 본인의 사진이 2000건을 기록한 것이 지금까지 최다였다고 말했다. 그는 그날 밤 본인에게 길이 남을만한 사진을 찍었다면서 사진이 인류가 조화롭게 함께 한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덧붙였다.
사진 속 주인공 소년의 아버지 조단 벤닷아펠은 31일 시카고트리뷴에 옳다고 믿는 것을 지키기 위해 연대하는 모습을 아들에게 보여주고 싶어 시위에 함께 나갔다고 설명했다. 자신의 장인과 장모가 나치 홀로코스트 생존자라고 밝힌 그는 시위 당일 “우리는 전에도 이런 일을 겪었습니다. 다시는 반복되지 말아야 합니다. 유대인들은 반 이민 행정명령에 반대합니다”라고 적은 피켓을 들었다.
소녀의 아버지 파티 이을드름은 당일 가족과 함께 미국 입국 이민자들을 돕는 변호사들에게 집에서 직접 만든 초콜릿 쿠키를 전달하기 위해 공항에 갔다면서 “사람들은 무슬림과 유대인이 서로 증오한다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곁에서 일상적인 대화를 나눈다. 우리는 함께 평화를 만들어 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무슬림 소녀의 가족과 유대인 소년의 가족은 다음주에 평화를 기원하며 저녁식사를 함께 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구성찬 기자 ichthu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