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깨비 드라마 봐도 괜찮을까… 종교학자가 답하다

입력 2017-02-01 17:04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연예인에게는 ‘갓종민’ ‘유느님’ 같은 별명이 붙는다. 얼굴이 예쁘면 여신, 공부를 잘하면 공신(工神)이다. 맨손으로 기업을 일으킨 이에게는 ‘신화를 창조했다’는 찬사가 쏟아진다.

한 청년이 성경을 내밀고 있다. 최근 초등학교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기독교에 대해 이야기 했다는 이유로 징계를 받아 논란이 됐다. 종교의 자유가 점점 더 제약되는 시대다. 우리는 어떤 신앙으로 살아가야할까?

현대사회에는 종교적인 현상이 가득하다. 굳이 불교나 이슬람교 같은 특정 종교의 이름을 내걸지 않더라도 다양한 신들이 있고 갖가지 ‘신앙’이 범람한다. 채식주의자가 생활습관 전체를 바꾸려고 노력하는 모습은 신앙인보다 더 신실하다. 특정 브랜드라면 무조건 믿고 비싸게 사도 아까워하지 않는 소비행태, 대통령의 탄핵에 찬성하거나 반대해 목숨을 던지는 일도 종교적 맹신과 닮았다. 오히려 종교인들은 거대한 참사 앞에서 신의 뜻을 설명하지 못해 당황한다.

신앙은 넘쳐나지만 진리는 찾기 어려운 이런 포스트종교 사회에 기독교인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도깨비가 나오는 드라마를 봐도 괜찮을까. 반려동물을 위해 기도해도 될까. 어쩌면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나의 신앙이 맹신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기독교인은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구원의 길이고 진리라고 믿기로 작정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다른 종교나 종교현상을 유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다른 종교와 비교하면서 자신의 신앙을 재발견할 수 있고, 세상 가운데 신앙인으로 살아가는 일도 새로운 시각으로 다시 생각할 수 있다. 이럴 때 종교학이 유용한 도구다.


이 책은 국내의 종교학자 16명이 22개 주제로 나눠 쓴 글을 엮은 종교학 입문서다. ‘청년을 위한 종교인문학 특강’이란 부제처럼 대학생 정도면 읽을 수 있게 쓰였다. 순서에 상관없이 22개 강의 중 아무 글이나 골라잡아 읽어도 괜찮다.

딱 한 편만 읽어야 한다면 이창익 고려대 연구교수가 쓴 제6강 ‘왜 우리는 유일신을 상상하는가’를 추천한다. 종교학이 어떤 학문인지 맛볼 수 있는 글이다. 인류의 종교가 발전해온 과정을 다신교에서 유일신교로, 컬트 종교에서 책과 문자의 종교로, 문화적으로 특수한 종교에서 세계종교로 전환해온 과정으로 간략하게 정리하고 있다. 

이 교수가 쓴 ‘미디어 테크놀로지는 종교를 어떻게 변화시킬까’라는 제목의 제8강은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 예배시간에 초대형 화면으로 설교자를 비추고 동영상으로 교회소식을 전하는 요즘 교회의 풍경을 다른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다.

“종교는 자기의 정보를 저장하고 전달하고 계산하기 위해서 당대의 미디어 테크놀로지를 이용할 수밖에 없으며, 역으로 이러한 미디어 테크놀로지는 그 시대의 독특한 영혼과 마음을 구조화함으로써 종교 경험의 가능성을 제한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마음과 영혼을 기계 안에 저장한 채 텅 빈 몸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인간과 기계가 몸과 영혼을 나누어 갖는 현상, 그래서 둘의 결합 없이는 인간이 존재할 수도 없는 현상이 이제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것입니다.”(171~172쪽)

한국교회를 비판적으로 관찰한 글도 여럿이다. 18강 ‘요즘 한국에서 기독교는 왜 그렇게 비판받을까요’는 물론이고 16강 ‘교회와 사찰을 매매해도 되는가’, 19강 ‘한국 개신교의 해외 선교, 어떻게 볼 것인가’, 20강 ‘국가조찬기도회에 참석하는 대통령, 어떻게 보아야 하나’는 서로 다른 문제를 고찰하지만 결론은 거의 똑같이 교회의 대형화와 성직자의 증가에 따른 성장의 한계를 원인으로 지적하고 있다.

책을 읽다보면 우리가 기독교의 본질로 알고 믿어온 많은 부분이 사실은 종교의 보편적인 모습이거나 때로는 퇴행이기도 하다는 걸 깨닫게 된다. 그런 껍데기를 모두 벗겨낸 신앙의 정수(精髓)는 무엇일까. 답은 독자에게 맡겨져 있다.

김지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