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선 실세’ 최순실씨의 국정농단의 끝은 어디일까요. 정부 부처 장·차관 및 민간기업 임원에 이어 외교관 인사까지 좌지우지한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그것도 외교관 경력이 전혀 없는 삼성그룹 임원을 추천해 임명시켰습니다. 이는 특별검사팀이 삼성 임원 출신인 유재경 주미얀마 대사를 소환해 조사한 결과입니다. 국민은 허탈할 뿐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도대체 무엇을 한 것일까요. ‘권력서열 1·3위’인 최순실-박근혜는 한몸처럼 움직였다고 치죠. 그런데 삼성은 왜 주요 사건마다 등장할까요. 또다른 인사농단은 얼마나 있을까요. 그런 의문을 뒤로 하고 특검팀은 최씨에 대해 알선수재 혐의로 오늘 오후 두 번째 체포영장을 청구해 법원으로부터 발부받았습니다. 전날 소환에 또 불응해 다시 강제수사에 돌입하기 위해서죠. 공식 수사 42일째(1월 31일 화요일)의 오후 이야기입니다.
# 출두할 땐 오리발 내밀다 조사 때 시인=유재경 대사는 오전 9시 참고인으로 특검팀 사무실에 출두할 때 최순실씨 추천 의혹을 부인했습니다. 유 대사는 “누가 저를 대사로 추천했는지는 알지 못한다”고 자신있게 말했습니다. 그런데 특검팀 조사가 시작되자 최씨와의 친분을 술술 불었습니다. 흔히 검찰청사에 소환될 때 혐의를 강력히 부인하다 조사 과정에서 실토하며 결국 쇠고랑을 차는 경우를 우리는 종종 봐왔습니다. 뻔한 사실도 카메라 앞에서는 부인하는 게 인간의 본성인가 봅니다.
특검팀 이규철 대변인은 오후 정례브리핑에서 유 대사에 대한 조사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유 대사가 특검 들어올 때는 부인하는 취지로 말했는데 현재 오전 조사가 끝난 시점에서는 최순실을 여러 차례 만났고, 본인이 최순실 추천으로 대사에 발탁됐다는 점은 인정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유 대사가 피의자로 전환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합니다. 소환 목적이 최씨의 알선수재 혐의를 확인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죠. 즉, 정부의 미얀마 공적개발원조사업(ODA) 과정에서 최씨가 부당하게 이권에 개입한 게 수사 초점입니다. 이 대변인은 “미얀마 사업이 중단됐다고 하더라도 알선수재의 경우 약속만 해도 처벌할 수 있어 최씨 처벌에는 문제가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지난해 5월 임명된 유 대사는 삼성전기 전무 출신으로 외교 경험이 없습니다. 그런데 대사에 어떻게 천거됐을까요. 임명 2개월 전에 최씨가 그를 직접 만나 면접까지 봤다는데 혹시 그 배경에 최씨와 삼성그룹의 유착관계는 없었을까요. 그 부분도 의심되기 때문에 특검팀의 조사대상이라고 합니다. “유 대사가 삼성에 근무했던 사람이고 삼성과 관계있었던 사람이기 때문에 최순실과 삼성이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게 이 대변인의 설명입니다.
# 우병우 문체부 인사 개입은 직권남용=지난해 상반기 문화체육관광부 국·과장급들에 대한 산하기관 좌천성 인사와 관련, 특검팀은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을 정조준하고 있습니다. 민정수석이란 공직자 인선 시 인사검증을 담당하는 자리라서 직권남용 여부가 애매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특검팀은 단호한 모습입니다.
이 대변인은 “민정수석 자리는 아시다시피 행사하는 권한이 상당히 많다”면서도 “정상적인 절차를 통하지 않고 민정수석이 관여한 부분이 있다면 직권남용이 될 여지가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전날 좌천성 인사를 당한 문체부 공무원 4∼5명을 참고인으로 소환 조사한 것도 우 전 수석을 처벌할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일 겁니다.
# 대통령 대면조사는 언제쯤=특검팀은 박 대통령 측과 대면조사 시기와 장소를 놓고 사전 조율 중에 있다는 사실을 공식 확인했습니다. 하지만 시기와 장소, 방법 등은 아직 확정된 게 없다고 하는군요. 이 대변인은 “일단 대통령 대면조사 일정은 일방적으로 결정할 사안이 아닌 만큼 결론이 나서 공식적으로 확인해드릴 사안이 있으면 그때 말씀드리겠다”고 말했습니다.
청와대 압수수색과 관련해서도 압수수색 특성상 공개적으로 말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아울러 증거인멸 우려와 관련, “청와대는 대통령 기록물 보존 지역이고 여러 서류는 보존 의무가 있어서 증거를 없애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증거를 인멸하면 그런 부분이 다 드러나기 때문에 압수수색 과정에서 충분히 조사할 수 있다”고 이 대변인은 설명했습니다.
# 최경희 영장재청구 가능성 높아=이화여대의 정유라씨 특혜와 관련해 최경희 전 총장에 대한 구속영장은 지난 25일 ‘소명 부족’으로 법원에 의해 기각된 바 있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증언이 나왔습니다. 오늘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최순실씨 재판에서 김성현 미르재단 사무부총장은 최씨가 2015년 말부터 지난해 초까지 최 전 총장을 3차례 만났다고 증언했죠. 최 전 총장이 최씨와는 특별한 사이가 아니라고 국회 청문회에서 증언한 것과는 배치됩니다.
특검팀이 보강 수사를 거쳐 최 전 총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재청구할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이 대변인은 “지난번 조사 당시에도 두 사람 사이에 여러 번 통화한 것으로 돼 있고, 오늘 추가적 내용이 나왔기 때문에 최 전 총장의 영장 재청구에 또 하나의 요소로 고려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한편 특검팀은 문화계 블랙리스트 문제로 박민권 전 문체부 1차관을 비공개 소환했고,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 관련해서는 김진수 청와대 고용복지비서관을 오늘 소환조사했습니다.
박정태 선임기자 jt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