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선 실세’ 최순실씨가 ‘민주투사’ 코스프레를 했다면 딸 정유라씨는 ‘정치범’ 코스프레를 하고 있습니다. 최씨는 지난 25일 특별검사팀에 강제구인될 때 “억울하다”며 취재진을 향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습니다. 국정농단의 장본인임에도 민주화 투쟁을 하는 투사인 듯 ‘자유민주주의’도 외쳤습니다. 그러고는 지금까지 특검팀 조사에서 묵비권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설 연휴 마지막 날인 30일에는 또다시 소환에 불응했습니다. 정유라씨가 엄마로부터 배웠나 봅니다. 정씨는 30일 덴마크 법원에서 열린 구금 재연장 심리에서 생뚱맞게 변호인과 함께 특정 정당의 특검 추천을 거론하며 정치적 편향성을 부각시키는 전략으로 나왔습니다. 본인이 정치적 탄압을 받는 ‘정치범’인양 행세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 엄마에 그 딸, 모전여전(母傳女傳)입니다. 공식 수사 42일째(1월 31일 화요일)의 오전 상황 이야기입니다.
# 최순실 2차 체포영장=최씨는 30일 오전 11시 소환을 통보받았으나 또다시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며 불응했습니다. 강압수사가 없었다는 특검팀 입장을 납득할 수 없다는 이유죠. 계속되는 ‘민주투사’ 코스프레입니다. 이에 특검팀은 31일 두 번째 체포영장을 청구할 예정입니다. 체포영장 혐의가 새롭습니다. 뇌물수수가 아니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입니다. 정부의 미얀마 공적개발원조사업(ODA) 과정에서 부당하게 사익을 챙긴 정황이 포착됐기 때문입니다. 까면 깔수록 새로운 게 나오나 봅니다.
# 현직 대사 두 번째 소환=유재경 주미얀마 대사가 31일 오전 참고인으로 공개 소환돼 조사를 받고 있습니다. 미얀마에서 오전 8시쯤 귀국해 곧바로 특검팀 사무실로 갔습니다. 현직 대사 소환은 모철민 주프랑스 대사에 이어 두 번째입니다. 특검팀 사무실에 9시쯤 도착한 유 대사는 “최순실을 만난 적 있느냐”는 취재진 질문에 “(특검에) 들어가서 답하겠다”며 명확한 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유 대사는 지난해 5월 주미얀마 대사로 임명되는 과정에서 최순실씨 추천을 받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습니다. 임명 전 최씨가 면담을 했다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유 대사는 외교 경험이 없는 삼성전기 전무 출신입니다. 그 후 최씨가 미얀마 사업을 통해 이권을 챙긴 게 아닌지가 수사 초점입니다.
유 대사가 취재진에게 밝힌 주장은 이렇습니다. 누가 저를 대사로 추천했는지는 알지 못한다, 최씨가 저를 면접해서 대사로 추천했다는 기사는 봤다, 누군가가 어떤 저의를 갖고 저를 이 자리에 추천했다면 사람을 잘못 본 것이다, 내게 임명장을 주면서 박근혜 대통령이 하신 말씀은 생생히 기억한다, 당시 박 대통령은 미얀마에 새로 문민정부가 열려 양국 간 교역을 확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여 정통 외교관보다는 신시장을 개척하도록 무역 경험이 많은 사람을 대사로 모시는 게 좋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뭐 이런 주장입니다. 근데 최씨를 모른다는 주장이 없는 게 이상하군요.
# 정유라의 ‘정치범’ 코스프레=덴마크 올보르 지방법원은 30일 정유라씨 구금 재연장 여부 심리에서 다음 달 22일까지 구금을 더 연장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특검팀의 범죄인 인도 요구와 관련, 덴마크 검찰의 송환 여부 결정을 위해 시간을 더 준 것입니다. 정씨는 올보르 구치소에 다시 수감됐습니다. 그런데 정씨가 심리 과정에서 변호인과 함께 자신이 정치적 희생양인 것처럼 부각시켰습니다. 덴마크 법정에서 느닷없이 한국 특검의 정치적 문제를 거론한 것이죠. 정씨가 변호인과 각본을 짠 듯이 보입니다. 변호인과 정씨 본인이 주고받은 특검 관련 일문일답을 보시죠(연합뉴스 인용).
Q. 한국의 특검은 누가 선정했나.
A. 박근혜 대통령이 선택했지만 추천은 국민의당이 했다.
Q. 한국에서는 특정 정당이 특검을 추천하나.
A. 나도 이번에 그걸 알게 됐다.
Q. 만일 대통령이 퇴임한다면 국민의당이 정권을 이어받나.
A. 지지율은 높아질 것….
Q. 정권을 물려받는 것에 대해 지지를 받는다는 것인가.
A. 그렇다.
게다가 정씨는 한국에 있는 전 남편이 한국 특검을 통해 아이를 데려가겠다고 했다는 말을 주덴마크대사관으로부터 들었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특검팀이 아이를 볼모로 한다는 주장입니다. 인권문제로 변질시켜 송환을 피하려는 작전인 듯합니다. 이에 대해 주덴마크대사관이나 특검은 사실무근이라고 밝혔습니다.
# 설 연휴 기간 수사 상황=27일부터 30일까지 나머지 수사 상황은 팩트만 전하겠습니다.
◇ 27일=최순실씨 조카 장시호씨,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 차은택 전 창조경제추진단장, 남궁곤 전 이화여대 입학처장, 김경숙 전 이대 신산업융합대학장, 이인성 이대 의류산업학과 교수 등 구속수감자들 소환조사.
◇ 28일=특검 공식 휴일임에도 박영수 특검 오후 출근, 특검팀 장시호씨 소환조사.
◇ 29일=남궁곤 전 이대 입학처장을 업무방해 및 위증 혐의로 구속기소(특검팀 ‘기소 3호’). 정관주 전 문체부 1차관, 김종 전 문체부 2차관 등 소환조사.
◇ 30일=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 정관주 전 문체부 1차관, 신동철 전 청와대 정무비서관 등 문화계 블랙리스트 의혹 관련자 3명을 직권남용 등 혐의로 구속기소.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조윤선 전 문체부 장관, 김경숙 전 이대 학장, 김 전 학장 남편인 김천제 건국대 교수, 장시호씨 등 소환조사.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지난해 문체부 부당 인사 개입 의혹 관련해 문체부 관계자 4∼5명 참고인 조사.
박정태 선임기자 jt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