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장애(ADHD)’에 대해 많이 알려지면서 아이가 집중을 못한다며 약물 치료를 해달라고 병원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
심지어 한동안 ‘공부 잘하는 약’으로 오인되면서, 단지 성적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약물치료를 해달라고 조르는 부모들도 많았다.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고, 우리나라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기이한 현상이기도 했다.
집중을 못하는 원인은 기질적인 요인, 정서적 요인, 환경적 요인에 이르기까지 헤아릴 수 없이 다양한 원인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집중을 못하는 원인을 찾아서 해결해야지 ‘집중을 못하다고’ 약물치료를 한다면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킬 수도 있으니 매우 유의해야 한다.
P는 7세 남자 아이다. 서너 살 부터 한글공부를 시켰지만 입학을 앞두고도 글을 읽지 못했다. 공부를 시키려고 하면 딴전을 피우고, 화장실을 간다거나 물을 마신다며 왔다갔다하기 일쑤이다. 유치원에서도 멍하니 먼 산만 바라본다고 했다. P의 엄마도 아이가 혹시 ADHD가 아닌가해서 병원을 찾았다.
놀이하는 모습을 보니 P는 한가지 놀이에 집중하지 못하고 이것저것 늘어놓기만 했다. 산만하다기보다는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몰입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P가 자라온 배경을 물어보았다. P의 아빠는 사업을 했는데, 몇 년 전부터 형편이 어려워져 엄마가 맞벌이를 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자주 부부싸움을 했고, 물건을 던지며 싸운 적이 있었다고 한다. 이후로 P는 작은 소리에도 민감하게 반응했다. 밖에서 작은 소리만 나도 꼭 나가봐야 했고, 부모가 장난으로 소리를 쳐도 “엄마 아빠 싸우는 거예요?”라며 불안해했다.
겉으로는 ADHD와 유사하지만 P가 겪고 있는 문제는 전혀 달랐다. 필요한 자극에 선택적으로 집중하고, 다른 정보는 걸러내 반응을 자제하는 것이 ‘집중’이며, 이같은 고차원적인 기능은 대뇌 피질의 전두엽과 두정엽이 활성화되면서 이루어진다.
하지만 P처럼 부부싸움, 폭력 등에 노출되거나 불안정한 아이들은 뇌의 피질 아래쪽에 있는 변연계가 각성돼 학습에 장애가 생기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P는 뇌의 변연계를 안정시키는 것이 필요했다. 즉 환경을 안정적으로 바꾸어 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P의 부모는 경제적인 어려움이 생기다 서로에 원망이 쌓이고 대화를 하려다 보면 싸움으로 번져갔다고 했다. 분노가 쌓이기 전에 미리 적절한 수준에서 표현하는 것을 배우고 ‘가족회의’ 시간도 만들어 가족 모두의 규칙도 만들어 나갔다. 가족의 규칙이 정해지니 혼란스러웠던 가족 상황이 다소 구조화 되면서, 부모 사이에서 움추려 있던 P도 자기 목소리를 내고 불만을 적절하게 표현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P의 가족 모두 화가 날 때 대처하는 방법도 배웠다. 제일 먼저 화가 올라오는 신체적 사인을 ‘인지’ 하는 것부터 익혀 나갔고, 각자 형편에 맡는 대처법을 찾아냈다. 화가 났을 때는 심호흡하기, 집밖에 나가 동네 한 바퀴 돌기, 커피 만들어 먹거나, 잠시 서로 피해 있기 등등.
각성된 P의 변연계를 안정화하기 위해 집에서 큰 소리를 자제하고, 소음도 줄여나가도록 권했다. 그리고 얼마 후 P는 비로소 30분 정도는 차분히 앉아서 공부할 수 있게 되었고, 한글 실력도 많이 늘어 입학 준비를 마칠 수 있었다
이호분(소아청소년 정신과 전문의, 연세누리 정신과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