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환에 거듭 불응해 23일 오후 법원으로부터 체포영장이 발부된 ‘비선 실세’ 최순실씨는 특별검사팀 취조에 묵비권 행사로 대응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체포영장으로 붙잡아둘 수 있는 시한은 48시간에 불과합니다. 피의자 권리이기 때문에 입을 안 열고 버티면 수사팀으로서도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특검팀은 ‘조깨기 영장’으로 맞대응할 생각인가 봅니다. 이게 대체 어떤 비책(秘策)일까요. 공식 수사 34일째(1월 23일 월요일)의 이야기입니다.
# 최순실 ‘쪼개기 영장’이란=특검팀은 어제 밤늦게 최씨 체포영장을 청구하면서 업무방해 혐의를 적용했습니다. 딸 정유라씨에 대한 이화여대 특혜 과정에서 영향력을 행사한 혐의죠. 하지만 체포영장의 문제는 강제조사를 48시간 내에 끝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고민 끝에 특검팀은 이번 체포영장으로 이틀간 조사한 뒤 최씨의 각종 혐의를 쪼개 추후에 다시 의료법 위반이나 뇌물수수 혐의로 체포영장이나 구속영장을 새로 청구하는 방식을 택한다는 겁니다. 체포영장과 달리 구속영장은 20일간 강제조사를 할 수 있습니다.
이규철 특검팀 대변인은 오늘 오후 정례브리핑에서 이 부분에 대해 이렇게 언급했습니다.
Q. 최순실 체포영장을 뇌물수수 공범으로 청구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가.
A. 원래 최순실에 대해서는 뇌물수수 공범으로 체포영장 청구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씀드렸었다. 그러나 체포영장은 각 혐의별로 청구할 수 있다. 수사팀의 수사진행 상황을 보니 이화여대 입시비리 조사가 제일 빠르고 빨리 종결될 가능성이 있어서 우선 업무방해 혐의로 체포영장을 청구했다. 집행한 이후에 다시 다른 혐의로 체포영장을 청구할지 구속영장을 청구할지 결정할 예정이다. 특별히 다른 사정은 없다.
Q. 업무방해 혐의로 체포영장이 발부돼서 조사받게 될 경우에 최순실에 대해 뇌물수사 공범 조사도 이뤄질 수 있나.
A. 혐의별로 발부받기 때문에 체포영장에 적시된 혐의에 대해서만 조사가 가능하다.
Q. 최순실 구속영장을 다시 청구할 수도 있다고 했는데 청구 때 혐의는 어떻게 되는지.
A. 나중에 혹시 구속영장 청구를 하게 되면 현재로서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은 어제 (체포영장) 청구했던 업무방해가 될 수 있고, 의료법 위반이라든지 이런 부분도 사유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Q. 최순실 체포영장 청구서에 혹시 업무방해 외에 뇌물관련 혐의가 포함돼 있는가.
A. 일단 업무방해 이외에는 기재가 돼 있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 “블랙리스트는 김기춘이 주도한 범죄”=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와 관련해 특검팀은 유진룡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오후 2시쯤 참고인으로 소환했습니다. 2014년 7월 물러난 유 전 장관은 그간 언론인터뷰에서 퇴임 한 달 전 블랙리스트를 직접 봤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2014년 1월과 7월 박근혜 대통령과 면담할 때도 블랙리스트 문제를 거론했으나 박 대통령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고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특검팀 사무실에 나와 20여분간 취재진과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는 작심한 듯 이렇게 말했습니다.
블랙리스트는 분명히 있었다,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 청와대에 들어온 뒤 주도했다, 김 전 실장이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라든가 저한테도 그렇고 블랙리스트 관련 지시를 했다, 민주적 기본질서와 헌법 가치를 훼손한 일이다, 심각한 범죄행위다, 제 경험으로 유신 이후 전두환 시대까지 블랙리스트 명단 관리가 있었다가 민주화되며 없어졌는데 부활했다, 대한민국 역사를 30년 전으로 돌려놨다, 관련자를 처벌하고 바로 잡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얘기들을 길게 쏟아낸 것입니다. 특검팀이 박 대통령의 블랙리스트 지시 및 관여 의혹을 정조준하게 된 이유입니다.
하지만 박 대통령 측 황성욱 변호사는 지난 21일 밤 법조기자단에 문자메시지를 보내 “박 대통령이 블랙리스트 작성을 지시한 사실이 없다”고 반박하며 역공을 가했습니다. “‘세월호 한 달 뒤 블랙리스트 작성 박 대통령이 지시’라는 제목의 허위보도를 한 중앙일보 기자 및 보도과정에 참여한 중앙일보 관계자와 해당 허위내용의 영장청구서 범죄사실을 중앙일보 기자에게 넘겨주었다는 특검 관계자를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및 피의사실 공표죄로 형사고소하고 민사상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하기로 했습니다. 앞으로 익명의 그늘에 숨어 허위보도를 일삼는 특정 세력은 더 이상 여론조작을 그만두고 언론도 확인된 객관적 사실만을 보도해 주시길 바랍니다.”
누구 말이 진실일까요. 특검팀 수사결과와 법원 재판결과가 말해줄 겁니다.
# 이재용 영장재청구는 어떻게=법원에 의해 영장이 기각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뇌물공여 의혹 부분을 보강 조사하기 위해 특검팀은 오늘도 바삐 움직였습니다. 오후에 홍완선 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을 다시 불러 조사하고, 주진형 전 한화증권 대표도 소환해 조사했습니다. 홍 전 본부장은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당시 국민연금의 합병 찬성을 주도한 반면, 주 전 대표는 국내 증권사 중 유일하게 합병 반대 의견을 냈다가 사퇴 압력을 받았다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앞서 특검팀이 최순실씨 지원 업무의 실무를 맡았던 황성수 삼성전자 전무(대한승마협회 부회장)를 연이어 소환해 조사한 것도 이재용 부회장의 영장재청구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번 주에도 삼성 관련자들의 소환 가능성이 높다고 이규철 대변인은 설명했습니다. 삼성 수사가 마무리된 다음에 필요한 다른 대기업 수사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 정유라 송환작업은=이규철 대변인은 덴마크 당국이 정유라씨 구금기한인 오는 30일 이전에 송환 여부를 통보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1월 23일까지 덴마크 경찰에서 덴마크 검찰로 수사결과를 통보하게 돼 있고, 그걸 종합해 덴마크 법무부 장관이 통보할 것으로 안다고 언급한 것입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될지 벌써부터 궁금해집니다.
박정태 선임기자 jt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