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규어가 저희 집에 아이와 행복을 선물해 주었습니다."
피규어 마니아 김남근씨의 말이다. 아내에게 첫눈에 반하고 그날부터 구애를 시작해 결혼 전까지 거의 300여일 중에 2일을 제외하곤 매일 데이트를 했다. 너무도 행복했다. 그러나 결혼 후 1년이 지난 후 아버지가 암 말기 판정을 받으시고 아내와 나는 마지막 선물로 손주를 안겨 드리고 싶었지만 시간만 지나갈 뿐 아이는 생기지 않았고 우리 부부는 서서히 다툼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 이후로 4년 여간 13번의 시험관 아기를 시도했다. 그렇게 간절했었다. 처음에는 언젠가 생기겠지라고 생각했지만 아이가 생기지 않자 마음이 조금씩 불안해졌다.
"우리 부부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시도해 봤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니 더 이상 무엇을 해야 할지조차 몰랐습니다."
아내는 나를 밖에도 못나게 했고 친구들도 만날 수 없었다. 특별히 하는 것도 없었지만 불안한 마음에 그저 집에만 있기를 원했다. 그렇게 서로를 구속하며 불평과 불안의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무기력해 보이는 나에게 아내는 피규어를 선물해 주었다. 무언가라도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며 피규어 조립을 권했다. 아내가 선물해준 피규어를 조립하며 아이를 생각했다. 피규어 한 개 한 개를 조립하며 아이를 향한 마음을 담았다. 시간이 지나 그렇게 시작한 피규어 조립은 어느덧 수백 개에 이르게 됐고 아버지는 결국 소천하셨다. 우리 부부는 허무함이 밀려오며 새로운 변화를 갖기로 했다. 모든 것을 멈추고 아이를 위한 일에 집중해 보기로 했다.
우선 아내가 먼저 다니던 직장을 그만뒀다. 그리고 얼마 후 나 또한 직장을 그만뒀고 이사를 하기로 결정했다. 부산을 떠나 여수로 거처를 마련해 옮기기로 하고 살 집을 알아보기로 했다. 기존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모든 것을 멈추기로 했다. 그저 새로운 삶을 살아보기로 했다. 그렇게 벗어나고 싶었다. 그리고 아이만을 생각하기로 했다.
그렇게 결심해 사표를 내고 3개월 만에 갑자기 아이가 생겼다. 정말 기적같은 일이었다. 너무도 기뻤다. 무엇 때문에 갑자기 아기가 생겼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난 아이를 염원하며 피규어를 조립했던 간절한 기도들이 이루어진 것이라 믿었다. 그 이후 아기가 더 생겨 이제는 두 아이의 아빠가 됐다. 또한 수천 개의 피규어의 아빠가 됐으며 이 일을 계기로 피규어 카페의 사장이라는 직업도 생겼다.
아이가 생기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던 중 우리에게 아이를 가져다 준 피규어 관련 일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후배가 하는 카페에 숍인숍 형태로 운영하다가 우연한 기회로 카페를 인수하며 본격적으로 피규어 카페를 운영하게 됐다. 본격적으로 모으게 된 피규어는 숫자와 규모가 더 해져 이제는 부산 서면의 명소이자 부산 최대의 피규어 카페가 돼버렸다. 건담, 에반게리온, 드래곤볼, 원피스, 초합금, 아톰, 디즈니, 몬스터주식회사, 아이언맨, 배트맨, 요괴워치, 바람의 검심 등 수 천개이다. 그리고 아직도 조립하지 못한 피규어도 수천 개에 다다른다. 조립완성과 서비스 차원으로 손님들에게 무료 조립체험 기회를 제공했다. 그렇게 손님들의 손에 만들어진 피규어도 이미 수백 개가 됐다. 인수할 당시 적자였던 카페가 피규어 카페로 전환 후 6개월 만에 매출도 두 배 이상이 올랐다. 피규어 전문 카페라는 차별성이 장점이 돼 불황도 이겨나게 해주고 있다.
언젠가는 제주도에 피규어 박물관을 세우는 것이 우리 부부의 꿈이다. 나와 손님들의 염원을 담은 수많은 피규어를 전시하며 행복을 기원하고 싶다. 그렇게 희망이 필요한 많은 분들과 피규어 마니아들에게 희망과 행복을 주는 피규어가 됐으면 좋겠다. 피규어를 통해 꿈이 이루어지고 행복이 조립되어지길 소망한다.
최영경 기자 yk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