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체부, 블랙리스트 관련 대국민 사과문 발표(전문 첨부)

입력 2017-01-23 14:00 수정 2017-01-23 14:00
송수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직무대행(앞)과 유동훈 2차관, 실국장들이 23일 오후 정부세종청사에서 문화계 블랙리스트 관련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며 고개를 숙이고 있다. 문체부 제공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가 박근혜 정권의 잘못된 문화행정과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대해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송수근 문체부장관직무대행 등 관료들은 23일 오후 세종청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민에게 사죄하는 한편 재발방지를 약속했다.

 문체부는 송 직무대행과 실국장 일동 명의로 낸 사과문에서 “예술 표현의 자유와 창의성을 지키는 보루가 되어야 할 문체부가 문화예술 지원의 공정성 문제를 야기한 것에 대해서 너무나 참담하고 부끄럽다”며 “앞으로 특검수사에 적극 협조할 것이며 수사결과 문체부가 져야 할 책임에 대해서는 마땅히 감내하겠다”고 사죄했다.

 문체부는 블랙리스트 사태의 재발 방지를 위한 제도적 개선책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문체부는 “외부의 부당한 간섭을 배제하고 문화예술계의 자율성을 확립하기 위해 현장 문화예술인을 중심으로 문화 옴부즈만 기능을 하는 논의기구를 구성하고, 문화예술진흥법을 개정해 부당한 차별이나 개입을 원천적으로 방지하는 규정 마련을 검토하겠다”고 했다.

 국정농단의 주무대였던 문체부는 청와대 지시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를 작성하고 실행한 사실이 드러나 전직 장관 2명(김종덕·조윤선)과 차관 2명(김종·정관주)이 구속되는 초유의 상황을 맞았다. 특히 조윤선 전 장관은 현직 장관 최초로 구속되는 선례를 남기기도 했다.

 게다가  송수근 장관직무대행에 대해 문화예술계는 “검열을 주도한 이가 문체부를 수습한다는 것은 국민들과 예술가들을 우롱하는 행위”라며 사퇴를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블랙리스트가 작성되고 검열이 일어났던 기간 동안 문체부 기획조정실장으로 근무한 송수근 장관직무대행은 블랙리스트 총괄팀장을 했다는 의혹을 받아 특검의 수사를 받았다. 이에 대해 송수근 장관직무대행은 “블랙리스트를 기획조정실에서 총괄 관리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고 해명했다.

송수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직무대행(앞)이 유동훈 2차관, 실국장들이 23일 오후 정부세종청사에서 문화계 블랙리스트 관련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고 있다. 문체부 제공

 이날 기자회견에서 사과문에 ‘블랙리스트’라는 단어가 사용되지 않은 것과 문체부 공무원 및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영화진흥위원회의 임직원 등 부역자 청산에 대한 계획이 불분명한 점이 도마에 올랐다. 김영산 문화예술정책실장은 “흔히 시중에서 쓰는 ‘블랙리스트’는 공식적인 용어가 아니다. 저희는 공식적으로 ‘문화예술인 지원 배제명단’이란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면서 “이른바 부역자에 대한 부분은 사실관계라가 완전히 규명된 이후 인사조치를 할 예정”이라고 답했다.

 한편 이날 박영수 특별검사팀에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된 유진룡 전 문체부 장관은 블랙리스트 의혹에 대해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청와대에 들어온 뒤 주도했다”며 “김 전 실장이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 등에서 지시를 내렸으며 블랙리스트 적용을 강요했다”고 밝혔다. 그는 “현 정권은 자기네들 입맛에 맞지 않는 사람들을 철저히 차별하고 배제하기 위해 모든 공권력을 동원했다”며 “경찰과 검찰, 국세청, 관세청, 심지어 감사원까지 정권과 생각이 다른 인사들을 핍박하기 위한 수단으로 쓰였다”고 강조했다.

유 전 장관은 20분이 넘는 시간 동안 작심한 듯 블랙리스트 의혹과 관련된 얘기를 쏟아냈다. 그는 “블랙리스트는 분명히 있었다”고 강조하며 “민주화 되면서 없어졌던 것이 다시 부활했다. 대한민국 역사를 30년 돌려놨다”고 강하게 비난했다.

 

<다음은 사과문 전문>

국민 여러분!
오늘 저희들은 그동안 논란이 되어 온 여러 잘못된 문화행정에 대한 반성과 함께 앞으로의 다짐과 대책을 말씀 드리고자 이 자리에 섰습니다.

저를 포함한 문화체육관광부 실국장 이상 간부들은 머리 숙여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문화예술인과 국민 여러분께 크나 큰 고통과 실망, 좌절을 안겨드렸습니다. 예술 표현의 자유와 창의성을 지키는 보루가 되어야 할 우리 문화체육관광부가, 공공지원에서 배제되는 예술인 명단으로 인해 문화예술 지원의 공정성 문제를 야기한 것에 대하여 너무나 참담하고 부끄럽습니다.

이런 행태를 미리 철저하게 파악하여 진실을 국민 여러분께 밝히고, 신속한 재발방지대책을 강구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러지도 못했습니다. 누구보다 책임감과 사명감으로 앞장서야 할 실·국장들부터 통절하게 반성하고 있습니다. 어떤 변명의 여지도 없습니다.

이번 사태에 대해서는 현재 특검의 수사가 진행 중이고, 아직 사태의 전말이 완전히 파악되지 않았습니다. 우리 문체부 직원들은 특검 수사 등을 통하여 그 구체적 경위와 과정이 소상하게 밝혀질 수 있도록 적극 협조하겠습니다. 앞으로 특검 수사 등을 통하여 우리 문체부가 져야 할 책임에 대해서는 마땅히 감내하겠습니다. 아울러 이번 일을 뼈아픈 자성의 계기로 삼겠습니다.

문화와 예술의 본래 가치와 정신을 지키는 것을 문화행정의 가장 중요한 원칙으로 항상 명심하고, 낮은 자세로 국민들과 더욱 소통하며, 각계각층의 다양한 의견을 더욱 소중히 받아들여 문화와 예술의 다양성을 확대하겠습니다.

문화예술의 정책과 지원의 공정성이 훼손되지 않도록 문화행정의 제반제도와 운영절차를 과감히 개선하겠습니다. 이를 위해 현장 문화예술인들이 중심이 되어, 외부의 부당한 간섭을 배제하고, 문화예술계의 자율성을 확립하기 위한 여러 방안들을 논의하고, 실행하기 위한 논의기구를 구성하겠습니다.

이 기구에는‘문화 옴부즈만’기능을 부여해 문화예술 각 분야의 애로사항을 수렴하고, 부당한 개입이나 불공정 사례들을 제보 받아 직접 점검․시정토록 하겠습니다. 문화예술진흥법을 개정하여 문화예술의 표현이나 활동에 대한 부당한 차별이나 개입 등을 원천적으로 방지하는 규정의 마련도 검토하겠습니다. 부당한 축소 또는 폐지 논란이 있는 지원 사업 등은 다시 검토하여 문제가 있는 부분은 바로잡겠습니다.

조속한 시일 내에 문화예술계의 의견을 수렴하여 이러한 내용을 포함한 문화행정의 공정성, 투명성을 확립하기 위한 추가적인 대책들을 관계 부처와 협의, 마련하여 발표하겠습니다. 우리 간부들은 지금의 사태에 대한 깊은 반성과 함께 우리 실무직원들이 소신 있게 일하고 부당한 간섭에서 보호받을 수 있는 장치도 만들도록 하겠습니다.

`국민 여러분, 그리고 문화예술인 여러분의 비판과 꾸짖음은 달게 받겠습니다. 진행 중인 특검의 수사 및 재판, 감사원 감사 등의 절차가 종료되면 그동안 논란 경위와 과정, 구체적인 사례들을 역사적 기록으로 남겨 ‘반성의 거울’로 삼겠습니다. 오로지 문화예술의 정신과 표현의 자유를 존중하는 문체부로 거듭나고자 하는 각오와 노력을 지켜보고 격려해 주시길 당부 드립니다. 또한, 많은 국민들이 염려하고 계신 평창 올림픽 및 패럴림픽의 성공적인 개최, 외래 관광객 유치 및 수용태세 점검, 강화되는 중국의 한한령(限韓令) 문제에 따른 국내 문화예술 활성화 대책 등도 한 치의 소홀함이 없도록 추진해 나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17년 1월 23일

송수근 문화체육관광부장관 직무대행 및 실국장 일동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