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전 비서관은 앞서 지난 19일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제7차 변론기일에 출석해 박 대통령과 차명폰으로 통화한 사실을 밝혔다. 정 전 비서관은 청와대 내 업무용 전화기 또는 차명폰으로 박 대통령과 연락을 주고받았는데, 차명폰을 쓴 빈도가 더욱 컸다고도 말했다. 국정농단 사태 수사 결과 함께 기소된 최순실(61·수감 중)씨와도 차명폰으로 통화했다는 것이 정 전 비서관의 증언이었다.
정 전 비서관의 이러한 증언에 헌법재판관들도 관심을 보였다. 사건 주심 강일원 재판관은 “야당 생활, 정치활동을 하실 때에는 이해가 된다. 그런데 대통령에 당선되어 청와대에서 생활하는데 대통령을 사찰하거나 도·감청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느냐”고 물었다. 이에 정 전 비서관은 “북한도 있을 수 있고, 여러 우려가 있을 수 있다”고 답했다. 정 전 비서관은 “예전부터 차명폰을 썼다”며 “어떻게 보면 관성”이라고 말했다.
강 재판관은 정 전 비서관을 향해 “증인뿐 아니라 대통령을 모시는 청와대의 많은 분들이 차명폰을 쓴다. 그게 이상해서 묻는 것”이라고도 말했다. 이에 정 전 비서관은 “사찰 우려라기보다, 보안 부분에 있어 좀더 안전하게 하기 위해 관성적으로 그렇게 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진성 재판관도 정 전 비서관을 직접 신문하면서 대통령의 차명폰 사용과 관련해 많은 질문을 건넸다. 이 재판관은 “대통령의 차명폰을 알고 있는 사람은 증인 이외에 또 누가 있느냐”고 물었고, 정 전 비서관은 “소수…”라며 말을 흐렸다. 이 재판관이 “청와대의 공식 보좌진 이외 외부인사 중에도 (차명폰 사용 사실을)아는 사람이 있느냐”고 재차 묻자 정 전 비서관은 “누가 알겠습니까”라고 엉뚱히 답변했다. 이에 이 재판관이 “나는 모르니까 물어봤다”고 말했고, 정 전 비서관은 “특별히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 재판관은 “차명폰의 요금은 법인 전화가 아니니 청와대의 예산으로 낼 수 없지 않느냐, 누가 내느냐”고 물었다. 정 전 비서관은 “저희가 냅니다”라고 답했다. 이 재판관이 “개인적으로 내느냐” “피청구인(박 대통령)의 차명폰도?”라고 묻자, 정 전 비서관은 “예”라고 말했다.
지하경제 양성화, 비정상의 정상화를 부르짖던 박근혜정부는 대포폰과의 전쟁을 선포한 적이 있다. 정작 박 대통령이 차명폰을 사용할 때였다. 대포폰 사용은 전기통신사업법에 의해 ‘3년 이하 징역’이나 ‘1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는 범죄로 규정돼 있다. 지난해 11월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에서는 김경진 국민의당 의원이 최양희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을 상대로 “대포폰 단속의 구체적 집행이 미약해 보인다”고 지적했고, 최 장관은 “그 행위 자체가 사업당국에서 판단해서 처벌을 할 수 있으리라고 본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의 차명폰은 국정농단 사태의 새로운 핵심 증거로 주목받고 있다. 최씨 역시 검찰 조사 과정에서 남의 명의 휴대폰으로 전화통화를 했다고 밝혔다. 최씨의 수행비서 역할을 한 얀슨기업 안모씨는 10대 이상의 휴대폰을 직원 명의로 개설해 최씨에게 건넸다고 진술했다. 박 대통령의 파면을 요구하는 국회 소추위원 측은 검찰의 압수수색 직전 차명폰에서 전화번호 하나를 지운 이영선 행정관을 상대로 “해당 번호가 박 대통령의 번호 아니냐”고 묻기도 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