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놀이터에서 놀다가도 신발에 모래가 들어가면 터느라 놀지를 못하고 짜증을 내요. 옷에 조금만 물이 묻어도 난리가 나고 옷을 갈아 입어야 해요. ‘결벽증’이 있는 거 같아요. 곧 초등학교에 입학을 하게 되는데 단체 생활에 적응을 못할 까봐 걱정입니다.”
엄마는 머리카락 한올도 이마에 흘러내리지 않게 이마 뒤로 넘긴 아주 정갈한 정장차림이었다. 수첩에 빼곡하니 아이의 문제를 자세히 메모해 가지고 왔다. 아이와 잠시 함께 놀아보라고 하니 연신 아이가 꺼내 놓은 장남감을 치우고 정리하기에 바빴고, 열심히 놀아 주려고 노력했지만 동시에 아이에게 뭔가를 가르치고 지시하려고 했다.
이 아이는 강박적인 기질이 있었다. 엄마도 강박적인 성격이었고 외할머니도 비슷했다고 한다. 성격은 타고난 생물학적 유전적 기질과 환경의 결합물이다. 그러므로 강박적인 기질을 타고 났다고 해서 ‘강박증’이라는 질병으로 모두 발전하는 것은 아니다.
강박적 기질의 아이들은 깔끔을 떨고 자신의 정해진 틀을 벗어나는 것을 힘들어 한다. 손에 흙만 묻어도 짜증을 내고, 옷의 상표가 살갗에 닿는 것도 견디지 못한다. 완벽주의적이어서 장난감이 자신이 정리한 자리에 있지 않으면 징징거리고 짜증을 낸다. 사실 이 정도 수준은 ‘강박 장애’라고 진단하기 보다는 ‘강박적 기질’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정도가 지나쳐 사회적 기능을 하기에 어려움을 초래할 정도가 되면 강박 장애로 진단한다. 예를 들면 옷을 계속 갈아 입느라고 유치원에 늦는다든지 머리를 묶는데 자신의 방식을 고집·집착하며 계속 반복하는 증상 등이 나타나는 것이다. 증상으로 인해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고 없느냐가 진단의 기준이다.
연구에 따르면 강박 장애 환자의 친척들 중 10% 정도에선 강박증이 나타난다. 또 친척들 중 5~10%는 진단을 내릴 수 없을 정도로 경미하지만 강박증상을 가지고 있다. 강박증은 틱장애, 투렛 장애를 동반하는 경우가 많은데 부모의 강박증상이 어린 시절에 시작된 경우나 틱이나 뚜렛 증후군을 함께 가지고 있는 경우에는 자녀에게 유전될 확률이 매우 높아진다.
앞서 언급한 아이의 엄마가 말했던 결벽증은 질병의 진단명 아니고 하나의 증상일 뿐이다. 강박장애의 여러 증상 중 청결에 대한 집착을 보이는 결벽증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강박증은 청결 이외에도 무엇인가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다양한 증상들이 있다.
예컨대 안전에 집착해 가스 불이나 문단속을 반복해 확인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손을 너무 자주 씻거나 질병에 대한 걱정으로 자신이 앉은 자리를 거듭 확인하는 강박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원치 않는 생각을 반복해서 떠올리는 강박 사고도 있다.
강박 사고가 있는 아이들은 ‘야한 생각이 떠오른다’거나 ‘엄마에 대한 욕이 떠오른다’, ‘무서운 장면이 떠오른다’는 등의 증상을 보인다. 하지만 증상과 관련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은 없을 수도 있기 때문에 아이는 몹시 괴로워하지만 부모는 오랫동안 아이의 고통을 눈치채지 못할 수도 있다.
강박적 기질은 불안 수준이 매우 높고 작은 일에도 쉽게 긴장한다. 변화에 대한 거부감도 많아 새로운 것에 적응도 늦은 편이다. 그러므로 학교 입학과 같은 환경의 변화가 있을 때는 학교를 자주 방문해 물리적 환경에 익숙하게 만들어 주는 게 필요하다. 아이에게 상황을 예측 가능하도록 해줘야 한다는 얘기다.
예기치 못한 상황에선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실수는 누구나 하는 것이라고 안심시켜 줄 필요가 있다. 부모가 너무 깔끔을 떨고 규칙에 엄격해 강압적으로 통제하게 되면 아이의 기질은 더욱 강박적으로 변한다.
특히 위 사례의 아동처럼 청결에 대한 집착을 보이는 아이들은 부모가 지저분한 것도 스스럼 없이 만지고 더러운 것에 민감하지 않게 행동하면서 ‘모델링’을 하게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평소의 생활 태도도 좀 여유 있게 하고 규칙에 얽매이지 않게 자유로운 분위기를 조성해 주는 것이 좋다. 그래야 질병으로 발전하지 않을 수 있다.
강박적 기질에 단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장점도 있다. 매사에 철저하고 준비성이 강하며 노력하는 타입이라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 중에 강박성 기질을 가진 사람들이 꽤 많다.
이호분 (소아청소년정신과 전문의, 연세누리 정신과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