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아침녘, 잠결에 인영이의 나직한 목소리가 들렸다. 엄마와 아빠, 언니가 모두 늦잠을 잘 시간이었다.
“봉구야, 이제 말해봐. 왜 말을 안하니?”
“…”
“봉구야, 바바가 없어서 말을 안하는 거야? 아빠가 바바 데리고 온대.”
말이 없는 봉구를 안고 인영이는 몰래 마루로 나갔다.
봉구가 왔다. 봉구는 ebs 유아 프로그램 ‘봉구야 말해줘’의 주인공 인형이다. 5살 민준이의 비밀친구로 민준이와 둘만 있을 때는 말을 할 줄 아는 인형이다. 인영이는 이 프로그램의 마니아다. 가끔 민준이로 환생해 엄마를 “민준이 엄마”라고 부른다.
지난 연말 봉구인형 받기 이벤트에 응모해 뽑혔다. 봉구인형은 시중에서 판매하지 않기 때문에 로또를 맞은 기분이었다. 일주일 전, 드디어 봉구가 우리 집에 왔다. 인영이는 이후 봉구와 24시간을 함께 한다. 밥을 먹을 때도, 화장실에 갈 때도, 잠을 잘 때도 항상 옆에 둔다. 아빠보다 봉구다.
인영이는 봉구가 말을 못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분명 민준이랑 있을 때는 말을 하는데 왜 자기랑 있을 때는 침묵모드인지 불만이다.
“아빠, 왜 봉구가 말을 안해?”
“바바가 없어서 그런가봐.(바바는 봉구를 넣는 가방인형으로 얘도 민준이랑 있을 때는 말을 한다)”
“바바는 언제와?”
“음... 조금 있으면 올거야.(바바 역시 시중에서 안팔고, 바바 인형 받기 이벤트도 없다;;;)”
어제 병원에 갔을 때 봉구는 일하느라 함께 가지 못한 아빠의 빈자리를 채우고도 남았다. 봉구와 함께 씩씩하게 채혈을 했고, 봉구가 배고플까봐 밥도 잘 먹었단다. 병원에서 돌아와 피곤해 지쳐 잠든 인영이 옆에 봉구인형을 보고 왠지 눈물이 났다.
우리 봉구... 또 하나의 가족이다. 내일은 인영이가 하도 끌고 다녀서 일주일 만에 때가 탄 봉구를 목욕시켜줘야겠다.
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