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재판, 난데없는 플라톤 ‘동굴의 비유’ 등장

입력 2017-01-13 21:51 수정 2017-01-13 22:09
최순실(오른쪽)씨와 이경재 변호사가 지난달 19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형사대법정에서 열린 국정농단 사건 첫 재판에 입장해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뉴시스

최순실씨 재판에서 난데없이 ‘동굴의 비유’ 논리가 등장했다. 최씨 측 변호인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의 저서 ‘국가론’에 등장하는 이 비유를 앞세워 “검찰은 우리 정부가 아직 독재 권위주의 체제라는 인식의 동굴에 갇혔다”고 주장했다.

 최씨 측 변호를 맡은 이경재 변호사는 13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판사 김세윤) 심리로 열린 최씨와 안 전 수석에 대한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및 강요 등의 혐의에 대한 3차 공판에서 “정부가 아직 독재 권위주의 체제에 있다는 검찰의 인식은 증거 설명에서 잘 묻어난다”며 “대기업이 정경유착으로 성장해 세무조사 약점이나 사업상 불이익을 예상하고 입을 막아 권력자의 요청을 다 받아들인다는 인식의 동굴에 (검찰이) 갇혔다”고 말했다.

 그는 “21세기 우리나라는 10대 경제대국에 5000만 인구를 포용하는 선진국에 가깝다.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자유민주체제를 실험해 운용한 나라”라며 “검찰은 이를 운영하는 통치체제와 국가 최고지휘자의 위상과 역할, 한국경제에서 민간 대기업이 차지하는 압도적 비중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몇 가지 부정적인 그림자만 보고 전부인 양 판단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한국의 자유시장경제 주체들은 권력자 요구에 무조건 응하거나 세무조사 위협 등 불이익에 흔들리지 않는다”며 “최고 권력자 역시 민간을 억압하는 요청이나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변호사는 “미르·K스포츠재단에 대한 기업들의 자금 출연이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과 이승철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부회장이 협의한 것이며 최씨는 관여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과정에서도 동굴의 비유를 응용했다.

 그는 “박근혜 대통령이나 안 전 수석이 이 부회장 등 전경련과 대기업 관계자에게 명시적, 묵시적으로 해악을 고지한 증거가 없다”며 “검사는 청와대가 정책을 선도하면 기업에서 거절하지 못해 강요라는 논리지만, 군부독재 시대의 ‘동굴’에 갇혀 한국 기업의 성숙도를 이해하지 못한 치졸한 비약적 논리”라고 주장했다.

 동굴의 비유는 동굴에 갇혀 한 방향만 볼 수 있도록 시야를 고정한 죄수가 벽에 비친 그림자를 실재라고 생각하게 되면 석방 이후에도 본체보다 그림자를 실재라고 여기게 된다는 국가론 속 비유다. 정경유착을 군부독재 시절 이후 사라져 인식으로만 남은 과거의 사건으로 규정한 이 변호사의 비유가 변호 과정에서 얼마나 설득력을 높였을지는 미지수다.

 최씨는 이 변호사의 의견이 끝나고 ‘할 말이 있느냐’는 재판부의 질문에 “진실이 밝혀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검찰은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강요, 강요미수, 사기 미수 등의 혐의로 최씨를 재판에 넘겼다. 최씨와 안 전 수석은 박 대통령과 공모해 전경련 회원사인 대기업을 상대로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 과정에서 총 774억원의 출연금을 강제로 출연하게 했다는 혐의 등을 받고 있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