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헬기 기총소사 진상규명은 발포명령자가 규명돼야 완성...국과수, 감정보고서 최종 통보

입력 2017-01-13 16:34 수정 2017-01-13 18:21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민간빌딩과 시민군을 향한 계엄군 무장헬기의 무차별 발포가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공식감정서를 통해 사실로 확인됐다.



군 당국은 그동안 무장헬기 투입을 전면 부인해왔지만 국내 최고 권위의 과학수사기관 검증에서 기총소사가 사실로 굳어짐에 따라 40년 가까이 베일에 싸여온 발포명령자가 과연 누군지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5·18기념재단 김양래 상임이사는 13일 “헬기 기총소사 여부에 관한 진상규명은 발포명령자를 찾는 것으로 완성된다”고 밝혔다.



김 이사는 “헬기 기총소사가 만약 이뤄졌다면 총탄 자국(탄흔)이 있어야 한다는 궁극적 의문에 전일빌딩의 탄흔이 물증으로 제시됐고 지난 12일 광주시에 전달된 국과수 공식감정서가 정답을 제시했다”며 “37년 만에 정부 기관의 전문 감정에 의해 당시 계엄군 헬기의 기총소사와 집단살상 시도가 확인됐다는 역사적 의미가 매우 크다”고 말했다.



김 이사는 이와 관련, “당시 광주에 투입된 헬기조종사가 ‘모 장군으로부터 사격명령을 받았다’는 증언을 확보했다”며 “증언자가 장군의 실명은 밝히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여기에 구체적 헬기 발포명령자를 지목한 5월 단체 간부도 있다. 정수만 전 5·18민주유공자 유족회장은 이날 “당시 황모 육군참모차장이 무장헬기와 전차 동원을 지시했고 일부 군인들이 반대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며 발포명령자를 황 전 육참차장이라고 지목했다.



실제 재판기록 등에 따르면 황 모 육참차장은 1996년 5월 6일 열린 ‘12·12군사쿠데타 및 5·18사건’ 7차 공판에서 이와 관련된 재판부의 심문을 받기도 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1980년 5월20일에서 26일 사이 당시 전교사 부사령관 김기석 장군에게 전화를 걸어 ‘전차와 무장헬기를 동원해 강경한 충정작전을 하라’는 지시를 했다가 김 장군이 거절했다는 데 사실인가요”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러나 황 전 육참차장은 “원칙상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전차 헬기는 투입되지 않았다”고 답변한 것으로 전해졌다.



황 전 육참차장이 법정진술에서 무장헬기와 전차동원을 부인한 것이다.



이에 대해 정씨는 “군 기록에는 소준열 당시 전투병과교육사령부(전교사) 사령관도 ‘헬기에서 총을 쏜 것은 사실이지만 민간인에게 쏜 적은 없다’고 진술한 것으로 돼 있다”고 강조했다.



5·18 진상규명의 핵심사항 중 하나인 발포명령자는 무장헬기뿐 아니라 처음 시위군중을 향해 ‘사격하라’고 지시한 최초의 발포명령자도 그 날 이후 37년이 흐른 아직까지 규명되지 않고 있다.



5·18 당시 3살 터울의 동생이 숨진 정수만씨는 신군부 정권이 출범한 1981년 5·18 1주기 추모식을 강행했다가 수감됐던 5·18 유공자다.



이듬해 2월 석방된 정씨는 국내는 물론 당시 특파원을 파견해 5·18의 참상을 전 세계에 알린 독일 방송사 등에 찾아가 방대한 5·18자료를 수집한 산증인이기도 하다.



그동안 모은 5·18자료는 A4용지 30만~40만 쪽 분량으로 정씨는 당시 전교사의 비밀문서 ‘광주 소요사태분석 교훈집’ 등 중요자료를 발췌해 5·18기념재단에 기증했다.



5·18 이후 4개월여 만인 1980년 9월 전교사가 육군본부에 제출한 ‘광주 소요사태분석 교훈집’에는 ‘헬기능력 및 제한사항을 고려한 항공기 운영’ 방식으로 ‘유류 및 탄약의 높은 소모율로 고가 운항’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연료와 탄약의 비용이 많이 든 헬기투입이 비효율적이라는 의미로 해석되고 있다.



한편 국과수는 12일 광주시에 최종 통보한 감정보고서에서 “금남로 전일빌딩 외벽과 내부에서 발견된 180여개의 탄흔은 헬기가 호버링(공중정지) 상태에서 고도만 상하로 변화하면서 사격한 상황이 유력하게 추정된다”고 밝혔다.



국과수는 전일빌딩 10층에 있던 옛 전일방송 내부 기둥과 천장, 바닥, 창틀 등에서 식별된 탄흔은 142개이고 건물 외벽에서 발견된 탄흔은 35개라고 설명했다.



국과수는 지난해 8월부터 광주시의 의뢰에 따라 3차례 현장감식을 거쳐 분석작업을 진행해왔다.



육군본부는 국과수가 전일빌딩에서 발견된 탄흔이 헬기에서 발생한 것이라고 발표하자 “군 자료에는 헬기가 두차례 기동한 것으로 기록돼 있지만 헬기사격 여부는 확인할 길이 없다”고 입장을 바꿨다.



육군본부는 5·18 당시 항공작전 관련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고 일관되게 주장해왔다.

광주=장선욱 기자 sw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