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 중 이뤄지는 의사와 환자 사이에 불쾌한 접촉을 추행으로 봐야 할까 아니면 의사의 통상적인 진료 범위로 인정해야 할까.
대법원이 진찰 과정에서 환자의 속옷 안에 손을 넣은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의사에게 무죄를 확정한 판결해 논란이 되고 있다.
대법원 3부(주심 박보영 대법관)는 아동·청소년의 성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위계 등 추행) 혐의로 기소된 의사 김모(41)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8일 밝혔다.
수도권의 한 병원에서 근무하던 의사 김씨는 2013년 4월 병원을 찾은 여중생 A(당시 14세)양을 진료하면서 A양의 무릎에 자신의 주요 부위를 밀착하고 A양의 속옷 안으로 손을 넣어 진찰한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당시 김씨는 교복 치마를 입고 진료 의자에 앉은 A양의 귀에 체온계를 넣어 체온을 측정하고 목, 코 부위를 진찰하면서 다리를 벌리고 A양에게 다가가 A양의 무릎에 자신의 주요 부위를 밀착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이어 진료실 내 진료 침대에 눕게 한 뒤 손으로 A양의 배꼽 주변을 누르다가 A양의 팬티 안으로 손을 넣은 혐의도 포함됐다.
검찰은 이 같은 김씨의 행위가 통상의 진료 목적을 위한 범위를 넘어선 추행에 해당한다고 판단, 김씨를 기소했다.
김씨는 재판과정에서 "A양의 무릎에 자신의 주요 부위를 밀착한 사실이 없고 배꼽 주변을 눌렀지만, 이는 진료행위이고 팬티 안으로 손을 넣은 사실은 없다"고 주장했다.
1심은 "A양은 추행을 당했다는 점을 구체적이고 일관되게 진술하고 있고 그 내용에 허위나 작위적인 요소가 개입했다고 보이지 않는다"고 판단, 김씨의 혐의를 유죄로 보고 벌금 1000만원과 40시간의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이수를 명령했다.
A양이 진료 경위와 관련해 '귀, 코, 목 부위 진찰 및 가슴 청진을 마친 뒤 더 불편한 데가 있는지 물어 변비가 있다고 하자 침대에 누우라고 한 뒤 배 부위를 누르기 시작했다'고 진술한 점도 고려했다.
1심은 "A양이 변비라고 명확히 말하는 상황에서 복부 촉진 행위까지 했어야 할 필요성이 있는지 의문이 든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복부 촉진 과정에서 팬티 안쪽으로 손이 들어오자 당황한 A양이 몸을 일으켰음에도 불쾌한 기분이 들었냐고 묻거나 촉진 경위를 설명하지도 않은 채 다시 누우라고 했다"며 "A양에게 아무런 설명 없이 다시 팬티 안으로 손을 넣은 점과 이후 A양이 학교 선생님에게 불쾌감을 호소하고 대책을 상담한 점을 보면 김씨의 행위는 A양의 의사에 반한 행위이면서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게 하고 선량한 성적 도덕관념에 반한 행위"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2심은 이 같은 1심의 판단을 뒤집고 김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2심은 "진료실 문 앞에는 환자 대기석이 있고 바로 옆은 접수대가 있으며 진료실은 135cm 정도 높이에 외부 통로로 통하는 창문이 나 있어 창문이 열려 있는 경우 사람들이 쉽게 진료실 안의 상황을 들여다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환자들이 항의하거나 문제를 삼으면 즉시 발각될 수 있는 환경의 진료실에서 이뤄진 김씨의 행위에 A양이 피해 당시나 직후 불쾌감을 드러내지 않았다는 점은 추행행위에 해당하지 않을 가능성을 뒷받침한다"고 설명했다.
A양이 진료를 받은 당일은 569명의 환자가 다녀갈 정도로 많은 인원이 오간 것으로 확인됐다.
2심은 김씨가 어느 정도 두께감이 있는 청바지를 입고 있어 A양의 느낌이 객관적이고 정확한 것이라고 단정하기 어려운 부분도 고려했다.
또 "체온을 측정하거나 귀 부위를 진찰할 때 김씨의 진료 자세에 대해 환자들의 일치하는 진술을 볼 때 김씨의 신체적 특성에 따른 평소 진료 자세로 볼 여지가 크다"고 판단했다.
키가 163cm인 김씨가 보통 성인 남성보다 팔, 다리가 짧은 신체구조 때문에 특별히 주의하지 않으면 허벅지나 주요부위가 환자의 무릎에 자연스럽게 닿을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 것이다.
2심은 1심과 달리 A양의 진술에 대한 판단도 달리했다.
2심은 "(속옷 안으로 김씨가 손을 넣었다는) 진술이 수사과정에서 항소심에 이르는 동안 (진술의) 묘사가 풍부해지고 미묘하게 (진술이) 변화하는 점에 비춰보면 피해자 진술의 정확성 내지 신빙성 측면에서 합리적 의심의 여지를 떨쳐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또 김씨의 촉진 행위에 대한 전문심리위원의 소견도 무죄 판단의 근거로 들었다.
전문심리위원은 김씨가 한 복부 촉진에 대해 ▲가능한 많은 부위를 진찰할수록 더 많은 정보를 얻어 올바른 진단과 처방을 할 수 있으므로 복부 촉진은 절대 필요한 점 ▲복부 촉진은 손으로 만지며 간, 신장 등이 커져 있는지 보고 비정상적인 덩어리가 만져지는지, 만졌을 때 통증이 있는지 확인하는 점 ▲방광, 대장, 난소 등을 진찰하기 위해서는 하복부가 촉진 대상이 된다는 점 등의 소견을 밝혔다.
2심은 "이 같은 사정들을 고려하면 김씨는 의대를 졸업하고 수련의 과정을 마친 후 바로 이 병원에서 근무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진료 경험이 많지 않았다"며 "김씨가 감수성이 예민한 시기의 A양과의 신체접촉을 조심하고 주의하기보다는 진료행위에 충실해 오해를 샀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김씨의 행위가 진료에 필요한 행위였다면 환자가 다소 불쾌감과 수치심을 느꼈다고 하더라도 추행행위로 평가할 수 없고 추행의 범죄 의사가 있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이에 대법원은 "진료 및 치료과정에서 이뤄지는 의사의 행위는 환자의 인식에 따라 추행으로 오해되거나 비판받을 소지가 있을 수 있다"고 전제했다.
그러면서 "그 행위가 치료와 무관하거나 치료 범위를 넘어 성적 자유를 침해하려는 의도 아래 이뤄진 추행으로 평가하기 위해서는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는 증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검사의 증명이 유죄 확신을 갖기에 충분한 정도에 이르지 못하면 비록 그 전체적인 치료과정에 다소 석연치 않은 면이 있더라도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해야 한다"며 무죄를 선고한 2심 판단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의료문제를 생각하는 변호사모임 대표인 이인재 변호사는 "변비 증상을 호소해 하복부를 촉진하더라도 속옷 위를 눌러보거나 수건을 덮고 촉진하는 방법도 있고, 14세 청소년이라면 보호자 입회 아래 진료하는 방법도 고려할 수 있다"며 "피해자의 진술대로라면 팬티 안으로 손을 넣어 촉진한 행위는 통상의 진료행위를 넘어선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법원의 이 같은 판결은) 환자가 입은 피해와 재판에 넘겨져 유죄 판결을 받을 경우 면허를 박탈당하는 의사의 피해를 비교해 전략적으로 판단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비판했다.
<뉴시스>
불쾌한 접촉도 진료행위?… 대법, 성추행 혐의 의사 무죄 선고 논란
입력 2017-01-08 1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