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년(丁酉年) 첫 주말 촛불집회이자 ‘세월호 1000일 추모’ 집회가 열린 7일 서울 광화문 광장은 눈물바다였다. 세월호 유가족들과 생존학생들의 자유발언이 이어질수록 집회 참가자들의 눈가는 촉촉이 젖었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인 단원고 2학년8반 고(故) 장준영군의 부친인 장훈 4·16 가족협의회 진상규명 분과장은 이날 세월호국민조사위 발족식에서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1000일이 지났다. 1000번의 4월16일이 지났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내 아들을 떠나보내고 우리의 시간과 달력은 넘어가지 않았다. 달력을 넘기려면 진상규명이 돼야 한다. 왜 그 커다란 배가 침몰을 했는지 우리 아이들이 왜 죽어야만 했는지 반드시 알아야 한다”며 진상규명을 촉구했다.
‘실종자’인 단원고 2학년2반 고 허다윤양의 아버지 허흥환씨는 “마지막 1명까지 가족의 품으로 돌려주겠다는 약속을 꼭 지켜달라. 기억하고 잊지 말아 달라”고 호소했다.
세월호 참사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 돌아온 단원고 출신 생존 학생들도 무대에 올랐다. 세월호 생존 학생이 집회에서 자유발언을 하는 것은 처음이다.
생존 학생 대표로 입장을 밝힌 장예진양은 “저희가 온전히 입장을 말씀드리기까지 3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며 “챙겨 주시고 생각해 주셨던 시민 여러분께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다”고 말문을 열었다.
장양은 “저희는 모두 구조된 것이 아니다. 저희는 저희 스스로 탈출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가만히 있으라고 해서 가만히 있었다. 구하러 온다고해서 그런줄 알았다”며 “그런데 저희는 사랑하는 친구들과 함께할 수 없게 됐고 평생 볼 수 없게 됐다. 저희가 무엇을 잘못했나. 저희가 잘못한 거라면 세월호에서 살아남은 것이다. 저희가 나온 것이 죄송하고 죄지은 것 같아 유가족 뵙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3년이 지난 지금도 생존학생들의 상처는 여전했다. 장양은 “아직도 (희생자) 친구 페이스북에 글이 잔뜩 올라온다. 답장이 안와도 (죽은 친구에게) 카톡을 보내고 계속 전화도 해본다. 친구들이 보고 싶어 사진과 동영상을 보며 밤을 새고 꿈에 나와 달라고 간절히 빌면서 잠이 들기도 한다”며 눈물을 흘렸다.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던 장양은 “대통령의 사생활까지 다 알아야 하느냐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지만, 우리는 대통령의 사생활을 알고 싶은 것이 아니다”라며 “그 7시간 동안 제대로 보고를 받고 지시했다면 지금처럼 많은 희생자가 나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장양은 이어 “나중에 친구들 다시 만났을 때 너희 보기 부끄럽게 살지 않았다고, 책임자한테 제대로 죄값 물었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 저희 뜻 함께 해주시는 많은 시민분들 우리 가족들, 유가족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조속히 규명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생존 학생들의 발언은 희생된 친구들을 향한 말로 마무리 됐다.
“먼저 간 친구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절대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을게. 우리가 나중에 너희들을 만나는 날이 올 때 우리들을 잊지 말고 열여덟 그 시절 모습을 기억해줬으면 좋겠어.”
발언이 끝나자 세월호 유족들이 무대로 올라와 학생들을 한명씩 품에 안았다. 지켜보던 시민들의 눈시울도 붉어졌다.
세월호 참사 1000일을 이틀 앞두고 열린 이날 촛불집회에선 세월호 참사 희생자 가족 등으로 구성된 ‘416 국민조사위원회’가 발족했다. 주최측 추산으로 오후 6시 기준 50만명이 집회에 참여했다.
오후 7시에는 세월호 참사 당일 대통령의 7시간 의혹을 밝히라는 의미로 소등행사가 진행됐다.
박상은 기자 pse021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