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희와 박근혜.
국정농단 게이트의 결정적 증거를 제시한 JTBC 사장과 그로인해 탄핵 위기를 맞은 대통령이다. 두 사람은 과거 설전을 벌인 일이 있다. 악연이라면 악연일까? 공교롭게도 14년 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한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손 사장은 2004년 당시 MBC 라디오 ‘시선집중’ 진행을 맡아 송곳 질문으로 악명(?)을 떨치던 때였고, 박 대통령은 한나라당 대표였다. 두 사람은 4월9일 방송에서 부딪혔다.
당시는 노 대통령 탄핵 후폭풍으로 광화문에 촛불이 활활 타오를 때였다. 총선을 앞두고 탄핵안을 강행한 한나라당에 대한 비난이 쏟아지고 있었다.
손 앵커는 “탄핵안 가결 당시 박 대표가 환하게 웃는 장면이 포착돼 열린우리당 광고에 등장했다”고 하자 박 대표는 “이상하게 편집 된 것”이라고 받았다. 박 대표는 “야당 의원의 항의에 쓴웃음을 지은 것”이라고 했지만 손 앵커는 “편집된 것이 아니다”라고 맞섰다. 이렇게 1라운드를 마쳤다.
이어진 2라운드에서는 한나라당의 경제살리기 정책을 놓고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손 앵커는 “한나라당이 다수 의석을 얻어야 경제를 살릴 수 있다는 경제회생론의 근거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박 대표는 “여당이 못한다면 야당이라도 나서서 해야되지 않느냐”고 답했다. 손 앵커는 “단지 그 이유뿐이냐”며 “한나라당의 전신인 신한국당이 거대여당일 때 IMF 환란이 빚어진 것은 어떻게 설명하겠느냐”고 몰아붙였다. 박 대표는 “한쪽만의 책임은 아니다. 한나라당은 새롭게 거듭나는 정당”이라고 강조했다.
이어진 질문과 대답에서는 14년 뒤 싸움을 예고하는 듯한 발언이 나왔다.
손 앵커가 “과거보다는 미래에 대한 약속을 하는 것 같은데, 유권자들은 과거를 보고 판단하지 않느냐”고 송곳 질문을 던졌다. 이에 박 대표는 “저하고 싸움하시는 거예요”라고 격한 반응을 보였다.
박 대표의 “저하고 싸움하시는 거예요”라는 발언은 JTBC보도로 국정농단 게이트가 열리자마자 재조명됐다. 인터뷰 전문이 빠르게 공유됐다. 두 사람의 싸움은 이미 14년 전에 시작됐다는 반응이 줄을 이었다.
이날 손 앵커는 박 대표의 돌출 발언에 멈칫했다. “그렇진 않다. 질문을 바꿔보겠다”며 상황을 부드럽게 마무리했다. 하지만 현재 박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손 사장과 JTBC가 당시처럼 ‘급변침’할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최순실 테블릿PC 공개에 이어 덴마크에 있던 정유라를 붙잡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며 박 대통령을 궁지로 몰고 있다.
14년 전 당시 전여옥 한나라당 대변인은 “손석희 씨가 사전 질문서에 없는 질문을 하는 등 인격모독이고 악의적인 방송이었다”라고 공격했다. 현재 박 대통령을 둘러싼 변호인과 탄핵을 반대하는 보수단체의 반응과 다르지 않다.
두 사람이 14년 전 주고받은 대화가 현재 화제가 되는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미 싸움은 시작됐고 결말로 치닫고 있다.
정지용 기자 jyje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