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원은 철학이다
대통령이 그렇게 무서운 존재였다면, 전국경제인연합으로부터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 부탁을 받고도 거절을 한 일부 기업이 있을 수 없다는 주장이었다. 박 대통령 측은 “1987년 평화적 정권교체 이후 어느 대통령이 자신의 요구를 거절한다는 이유로 자의적 세무조사를 실시하고, 기업의 인허가를 고의적으로 방해했느냐”고도 물었다. 대통령이 세무조사와 인허가를 내세워 부당한 지시를 할 수 있다는 주장은, 역대 대통령에 대한 심각한 모욕이라고도 했다.
박 대통령의 평소 습관을 제시하며 탄핵소추사유를 반박하려 시도하기도 했다. 박 대통령 측 이중환 변호사는 “박 대통령은 어릴 때 영부인이셨던 어머니 육영수 여사를 따라다니면서 ‘대통령에게까지 온 민원은 마지막 부탁이므로 절대로 소홀하게 여겨서는 안 된다’는 철학을 직접 경험했다”고 말했다. 결국 검찰이 박 대통령의 최순실(61·구속기소)씨 주변에 대한 특혜 지시로 조사한 내용들은 중소기업 애로점 해결 취지였다는 주장이었다.
박 대통령 측은 노 전 대통령과의 연관성을 언급하며 박 대통령을 피의자 신분으로 입건한 검찰을 맹비난했다. 검찰 특별수사본부를 이끌던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에 대해서는 “노무현 정권 당시 청와대 사정비서관이었다”며 “정치적 중립성에 의심을 받을 소지가 있다”고 공격했다. 현재 박영수 특별검사팀에 소속된 윤석열 검사에 대해서는 “노무현 정권 때 특채로 임명된 유일한 검사”라며 “왜 하필 수많은 검사 가운데 그런 사람을 특검 수사팀장으로 임명하느냐”고 했다.
“난 혼자 다 읽었는데” 헌재의 시선
박 대통령 측은 “탄핵결정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먼저 피청구인이 형사법조항을 위반했다는 점이 전제돼야 한다”며 형사소송법상 증거법칙의 적용을 강조했다. 아직 국정농단 사태 수사결과만 있을뿐 판결이 이뤄지기 전이라서 모든 소추사유에 대해 무죄추정이 있어야 한다는 취지의 변론이었다. 하지만 이에 대해 헌재 주심 강일원 재판관은 “이 사건은 탄핵심판이지 형사소송이 아니다”고 재차 바로잡았다.
강 재판관은 “각종 고발사건 또는 법원에서 재판중인 형사사건과 이 사건을 혼동해 쟁점이 흐려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비서실 조직이 완비되기 전에 일부 연설문이나 홍보 분야에 대해 도움을 받은 적이 있다”는 대통령 담화문에 대해서도 “어떤 도움을 언제까지인지 밝혀 달라고 말씀드렸는데 답이 없다”고 신속한 제출을 당부했다. 세월호 7시간 의혹과 관련해서도 “2014년 4월 16일의 대통령 일정에 대해서도 아직 말씀이 없다”며 조속하게 밝혀 달라고 촉구했다.
강 재판관은 “검토해야 할 기록이 방대하다”는 박 대통령 측의 항변에 “저는 혼자서 대략적인 일별을 했다. 조금 서둘러 주셨으면 한다”고도 말했다. 오후 소추위원 측이 윤전추 행정관을 신문할 때 박 대통령 측이 “소추사유와 연관성이 뚜렷하지 않다”며 반발하자, 박 소장이 “자꾸 중간에 끼어드는 게 오히려 방해가 된다”고 제지하기도 했다.
이경원 정현수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