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성덕의 사방팔방] 18. 朴 대통령 대리인단, 헌재 변론 자격 있나

입력 2017-01-05 17:45 수정 2017-01-05 18:00
5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2차 변론에서 박한철 헌재 소장이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심판을 둘러싸고 5일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2차 변론에서 국회 탄핵소추 대리인단과 박 대통령 대리인단은 팽팽하게 맞섰다. 박 대통령을 ‘권좌’에서 끌어내리려는 탄핵소추 대리인단과 박 대통령의 임기를 보장하려는 박 대통령 대리인단은 한 치의 양보 없이 신경전을 벌였다. 충분히 예상되는 광경이었다.

그러나 박 대통령 대리인단은 색깔론 제기, 박영수 특별검사팀 중립성 시비, 준비 부족, 시간 끌기 등 여러 면에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장면을 연출했다. 탄핵심판 취지와 다른 주장을 펴거나 장광설을 늘어놓다가 헌재 재판관들로부터 이런저런 지적을 받았고 면박까지 당했다.

#“촛불 민심은 국민 민의 아니다”며 색깔론 제기
박 대통령 대리인단은 “광화문에서 촛불집회를 주동하는 세력은 민주노총으로, 김일성 주체사상을 따르는 이석기를 석방하라는 조형물을 만들어서 거리행진을 했다”며 “국회가 탄핵소추 사유로 주장하는 촛불 민심은 국민 민의가 아니다”고 주장했다. 대리인단은 “촛불집회에서 경찰 3명이 다치고 경찰차 50대가 부서졌다”며 “사실상 대한민국에 대한 선전포고인 민중총궐기가 민심이라고 할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들으면 들을수록 해괴한 논리가 아닐 수 없다. 지난해 10월 29일부터 시작된 주말 촛불집회에는 전국적으로 연인원 1000만명 이상이 참가했다. 이석기씨를 추종하는 인사들이 집회 현장에 모습을 보인 적은 있다. 그러나 이들은 그야말로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 연인원과 비교하면 한 줌도 되지 않는다.

5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2차 변론에 박한철 헌재소장 등 재판관들이 입장하고 있다. 뉴시스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열린 촛불집회에 참가한 이들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규탄하며 무너진 이 땅의 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 자발적으로 운집한 시민들이다. 박 대통령 대리인단도 촛불집회의 큰 물줄기를 부인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촛불 민심은 국민 민의가 아니다’고 억지를 부리는 모습은 ‘촛불은 바람이 불면 꺼진다’고 말한 어느 정치인을 연상시키게 한다.

#느닷없이 특검팀 중립성 시비
박 대통령 대리인단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수사했던 검찰과 현재 수사하고 있는 특검팀의 중립성 문제를 들고 나왔다. 박 대통령 대리인단은 “적법절차를 거치지 않고 ‘최순실 게이트’ 수사결과를 발표한 이영렬 검사장은 노무현 시대에 임명돼 의문이 증폭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대리인단은 “특검은 헌정 사상 초유로 정당이 후보 추천권을 가졌고, 그것도 야당만 가졌다”며 “이런 특검 구성을 누가 신뢰할 수 있겠느냐”고 따졌다. 또 “특검에서 임명된 수사팀장(윤석열 검사)은 노무현 정권에서 특채로 유일하게 임명된 검사”라며 “왜 하필 그런 사람을 특검 수사팀장으로 임명한단 말인가. 특검법과 검찰청법을 위반한 것으로 도저히 증거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했다.

국회에서 특검법을 제정했고, 적법한 절차에 따라 특검팀을 구성한 점을 감안하면 설득력이 없는 발언이다. 박 대통령 대리인단이 특검 중립성에 시비를 거는 것은 앞으로 특검 조사에 박 대통령이 응하지 않을 수 있음을 시사한 것으로 분석된다. 박 대통령은 검찰 수사에 응한다고 했다가 말을 바꾼 적이 있다. 따라서 비슷한 논리를 주장하며 특검의 대면조사와 청와대 압수수색을 거부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특검팀이 주도면밀한 계획을 세워 대응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제2차 변론기일인 5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방청을 위해 대심판정을 찾은 한 어린이가 휴대전화로 촬영하고 있다. 뉴시스

#준비 부족
박 대통령 대리인단은 검찰 수사기록도 제대로 검토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강일원 재판관이 “핵심 증인들의 진술조서 등 검찰 수사기록 검토를 마쳤느냐”고 질문하자 박 대통령 대리인단은 “기록이 너무 많아서 아직 못했다”고 설명했다. 그러자 강 재판관은 “저는 혼자서 하지만 이미 대략적으로 다했다. 조금만 더 서둘러 달라”고 채근했다.

#시간 끌기
박 대통령 대리인단은 헌재 심리를 질질 끌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내비쳤다. 박 대통령 대리인단은 “형사법 위반 사실은 형사소송법의 증거법칙 원칙이 적용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원칙을 적용하면 탄핵심판 사건과 관련한 증인들을 모두 법정에 불러 진술을 들어야 하기 때문에 심리기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다.

강일원 재판관은 “이 재판은 탄핵심판이지 형사재판이 아니다”면서 “형사소송 절차를 준용하지만 각종 고발사건이나 법원에서 재판 중인 사건과 혼동해서 쟁점이 흐려지지 않도록 협조해 달라”고 일침을 놓았다.

5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2차 변론에서 박 대통령 대리인단이 박한철 헌재 소장의 발언을 듣고 있다. 뉴시스

#증거 제시하지 못한 주장도 펴
박 대통령 대리인단은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과 최순실씨 사이의 통화 녹취록 유출 경위와 관련해 “일부 언론사에서 관련된 녹음파일이 방송되거나 관련 자료가 유출되고 있다”며 “어느 쪽에서 유출했는지 대충 의심이 간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재판이 공정하고 여론으로부터 독립된 절차를 밟기 위해 재판부에서 지적해 달라”고 헌재에 주문까지 했다. 사실상 국회 탄핵소추 대리인단을 녹취록 유출의 배후로 지목한 것이다.

그러자 탄핵소추 대리인단은 “우리가 자료를 유출했다는 증거가 있느냐”고 맞받아쳤다. 박한철 헌재 소장도 “소추위원 측이 했다는 자료가 있느냐”고 질문했다. 박 대통령 대리인단은 “찾아보겠다”며 꼬리를 내렸다.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주장부터 하다가 ‘아니면 말고’ 식의 무책임한 행태를 보인 것이다.

염성덕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sdyu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