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는 언론윤리를 위배했는가?

입력 2017-01-04 11:43 수정 2017-01-04 14:44
JTBC 기자가 덴마크 경찰에 정유라를 불법체류로 신고한게 논란이 되고 있다. 기자가 취재대상을 경찰에 신고해 체포현장을 취재한게 언론윤리상 맞느냐는 거다. 언론은 현장을 목격하고 기록하는데 그쳐야지, 현실을 바꾸기 위해서 개입해선 안된다는 게 비판하는 입장의 논리다.


TBC는 언론윤리를 위배했는가?

의 핵심은 이 대목이다.

보도를 하기로 했다면 신고하지 말았어야 하고, 신고하기로 했으면 보도하지 말았어야 한다. 시민으로서의 양심이 울어도 그게 프로페셔널리즘을 지키는 대가다.

언론의 중립성 문제는 이렇게 명쾌하게 단정하기엔 굉장히 미묘한 이슈다. 수많은 사례가 떠오른다. 박상현씨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사례들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례도 있다.

1989년 7월 12일 새벽 압수수색에 맞서던 한겨레 사원들 Photo 한겨레


1989년 7월12일 서울 양평동에 있던 한겨레신문 사옥에 경찰 병력 800여명이 투입됐다. 한겨레 편집국을 압수수색하기 위해서였다.(한국기자협회 50년사 138쪽)

당시 평화민주당 서경원 의원이 88년 비밀리에 북한을 방문했는데, 한겨레 윤재걸 기자가 이를 취재하고도 신고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국가보안법상 불고지 혐의였다. 국가안전기획부는 윤 기자에게 취재수첩과 사진을 내놔라고 했는데, 윤 기자는 취재원 보호를 위해 이를 거부했다. 기자가 법을 따르기 위해 신고해야 했을까? 나는 윤 기자와 한겨레신문의 취재원 보호 노력을 지지한다.

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4. 정당한 정보수집
우리는 취재과정에서 항상 정당한 방법으로 정보를 취득하며, 기록과 자료를 조작하지 않는다.

5. 올바른 정보사용
우리는 취재활동 중에 취득한 정보를 보도의 목적에만 사용한다.

이 윤리강령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지만, 원칙적으로 대부분의 기자가 명심하고 따를 가치가 있다.

논란을 제기한 박상현씨의 글 제목은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다'라고 돼 있다. 기자가 취재 중에 시민으로서 현실에 개입하기 시작하면 윤재걸 기자나 캐빈 카터 기자에겐 공권력이 시민의 이름으로 압력을 가하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다. 예를 들어 기자가 범죄를 보도했는데, 검찰이 압수수색 영장을 들고 와 자료를 내놔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일을 당하게 되면 그 이후부터는 대한민국 기자 전체의 취재보도가 심각하게 제약 당한다. 저널리즘이 위축되면 그 피해는 오히려 시민에게 돌아간다. 법과 공권력, 여론의 압박 때문에 더 중요한 진실이 가려질 수 있기 때문이다. 박상현씨는 그런 점을 우려한 듯 하다. 원칙적으로는 맞는 지적이다.

윤리강령에 비춰보면 JTBC 기자의 덴마크 경찰 신고는 5번 항목에 위배되는 것처럼 보이고, 4번 항목의 ‘조작' 부분에서도 자료를 왜곡한게 아니라 체포 상황을 유발시켰다는 점에서 해당될 부분이 있어 보인다.


세계는 버라이어티하고 강령은 앙상하다

물론 취재현장은 이런 윤리강령 같은 원칙에 들어맞지 않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기자가 취재해야 할 세계는 버라이어티하다. 몇줄로 축약된 윤리강령이란건 앙상하기 마련이다. 강령이 현실을 다 커버할 수 없다.


대표적인 사례가 저 유명한 ‘굶주린 아이를 바라보는 독수리’ 사진이다. 언론윤리 수업시간에 꼭 등장하는 사례다. 마침 했다. 이 사진을 찍은 캐빈 카터 기자는 아이를 먼저 구하지 않았다는 비난을 받았다. 기자는 사진 찍은 뒤 아이를 구했다고 했다. 나는 캐빈 카터의 행동이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아이를 구하기 전에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시간은 있었다고 기자는 판단했고, 그 판단은 틀리지 않았으니 존중받을만 했다.


또 하나의 유명한 사례는 CNN의학전문기자가 2010년 아이티 대지진 당시 12살 소녀의 머리에 박힌 콘크리트 파편을 제거하는 수술에 참여한 일이다. 산제이 굽타 기자는 의사면허증을 가지고 있었고, 지진 현장에선 의료진이 부족한 상황이었다. CNN은 수술상황을 라이브로 중계했다. 그는 트위터에 이렇게 썼다.

“Yes, I am a reporter, but a doctor first.”


2013년 7월26일 마포대교에서 벌어진 성재기씨 투신 사건 장면이다. 카메라와 기자들 앞에서 한강에 뛰어든 성씨는 결국 숨졌다. 기자들에게 비난이 쏟아졌다. 했다. 

KBS 취재진은 취재보다도 인명구조가 우선이라는 생각에 오후 3시 7분 경찰과 수난구조대에 1차 구조신고를 했고, 성 대표가 마포대교 난간에서 뛰어내린 직후 수난구조대에 2차 구조신고를 했다.

KBS기자가 구조신고를 한 행동은 윤리강령에는 어긋나지만, 했어야할 행동이었다고 본다. 더 적극적으로 투신을 만류하고 붙잡아야했을까? 그건 모르겠다. 다만 현장의 기자는 구조신고를 하고 구조를 기다리며 취재를 했다. 거기까지만 개입했다.

중요한 것은 거기까지만 개입했다는 대목이다. 선을 긋는 것. 사실 언론의 취재보도 자체가 현실에 개입하는 행동이다. 경찰에 전화를 하거나 수술실에 메스를 들고 가지 않더라도, 뉴스나 신문으로 특정 정치인의 이미지를 왜곡하고 부정에 눈감는다면 그게 훨씬 더 중요한 현실개입이고 지탄 받을 일일 수 있다. 어디까지가 언론이 할 일이고, 어디서부터는 아닌지 적절한 지점에서 선을 그을 줄 아는 감각이 중요하다. JTBC의 이번 사안도, 개입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적절한 지점에서 선을 그었는지 아닌지 살피고 논의해야 한다.


취재보도 자체가 현실개입

그 선은, 과거에도 늘 변했고 최근에는 굉장히 큰 폭으로 움직이고 있다. 자살예방협회와 기자협회가 만든 ‘자살보도 권고기준’이라는게 있다. 이렇게 시작된다.

언론은 자살에 대한 보도에서 매우 신중해야 합니다. 언론의 자살 보도 방식은 자살에 영향을 미칩니다. 자살 의도를 가진 사람이 모두 이를 실행에 옮기는 것이 아니며, 자살 보도가 그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자살 보도는 사람들이 삶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자살을 고려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자살이 언론의 정당한 보도 대상이지만, 언론은 자살 보도가 청소년을 비롯한 공중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충분한 예민성과 책임감을 가져야 합니다.

자살 보도를 자제하는 것 자체가 자살을 막기 위해 현실에 개입하는 행위이고, 이를 장려한다는 내용이다.

앞서 한겨레신문 편집국이 압수수색을 당할 때보다 딱 3개월 앞선 1989년 4월12일애눈 공안합동수사본부가 리영희 한겨레 논설위원을 연행했다. 북한 취재를 계획했다는 이유였다. 역시 국가보안법 위반이었다. 북한을 취재하려는 노력 자체가 분단이라는 현실에 개입하는 행동이었다.

퍼블릭 저널리즘이란게 있다. 공공저널리즘이라고 번역하기도 하는데, 언론이 시민사회의 한 일원으로서 현실에 적극 참여하고 이를 취재보도하는 행동이다.

미국의 지역언론 중에는 퍼블릭 저널리즘의 일환으로 직접 폐수오염 현장을 고발해 정부가 어떤 조치를 내리는지 취재보도하기도 하고, 아예 시민이 바라는 사안을 조사해 관련 법안을 만들고 의회에 제출해 법이 만들어지는지 모든 과정을 줄기차게 보도하기도 한다. 명백한 현실개입이지만 오히려 새로운 저널리즘으로 주목 받고 있다.(물론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애초에 기자가 현실에 개입해선 안된다는 윤리강령이 만들어진 이유는 기자를 보호하고 저널리즘을 보호해 진실을 보도하기 위한 목적이다. 여기에 깔려 있는 세계관은 어딘가에 객관적인 진실이 있고, 기자는 그걸 관찰하고 취재보도하는 제3자의 역할을 하는 과학자의 모습이다. 탐정이 되거나 여론의 대변자가 되는 일은 기자라는 직업에 어울리지 않는 역할이라는 거다. 현실은 변하고 있다. 정보유통 속도는 순식간에 지구를 몇바퀴 돌 정도로 빨라졌다. 쌍방향성과 참여, 새로운 차원의 역할을 언론이 요구 받고 있다.

취재를 하는 것과 안 하는 것, 모두 언론의 현실 개입 행위다. 언론이 현실에 개입하지 않는게 아니라, 어디까지만 개입할 것인지 선을 긋는 게 중요하다. 그 선을 어디에 그어야 하는지 판단은 상황마다, 기자마다, 매체마다 그리고 시대마다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무책임한 소리 같지만 가급적 원칙을 지키려 노력하되 상황에 따라 판단이 다를 수 밖에 없다.


기자의 양심, 그리고 양식

내가 JTBC를 무조건 지지하는건 아니다. 당연히 동료 언론인으로서 경쟁심도 있고, JTBC의 보도가 헛짚는다 싶을 때도 있다. 경향신문의 성완종 녹음파일을 일방적으로 보도한 일,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비망록을 TV조선에 유가족을 앞세워 찾아가 받아낸 일 등은 윤리적으로 더 혹독하게 비판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번 사안에서는 현장기자의 판단을 존중하고 싶고, 정유라씨를 현지 경찰에 신고한 일이 지나친 개입이라고 비판 받을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글을 쓰는 중에도 기자는 편집국에 앉아 몇건의 전화를 받았다. 그 중에 한 통을 소개하면서 이 글을 마치고 싶다. 어눌한 목소리의 한 사내가 전화기 너머에서 이렇게 말했다.

“지금 부산 **경찰서에 노숙자 한명이 구속돼 있어요. 5200원을 훔쳤다가 잡혔나 봐요. 나도 세상 막다른 처지에 있는 사람인데, 어쩌다 보니 알게 된 사람이 그리 되어서 안타까운 마음에 신문사에 전화했어요. 그 사람도 배고프고 추워 그리 된 것 같은데 부디 좀 잘 알아보시고 신문에 실어주세요.”

취재를 해야할까, 보도를 해야할까. 매일매일 순간순간 기자들은 판단을 요구 받고 있다. 대한민국에만 이런 기자가 수천 수만명이다. 기자협회의 윤리강령은 여전히 유효하지만, 모든 현장과 모든 기자의 판단에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다. 기자가 어디까지 개입해야 하느냐, 어디에서 선을 그어야 하느냐는 문제는 지금으로선 기자 개개인의 양심과 자유, 그리고 급변하고 있는 뉴스 시장에서 시시각각 이뤄지는 시민의 판단에 맡겨두는게 더 효율적이고 현명해 보인다.













김지방 기자 fatty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