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조성진(23)의 음악 여정은 어디로 이어질까. 3일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조성진의 독주회는 그의 무한한 성장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는 무대였다.
이날 연주회는 지난 2015년 10월 쇼팽 콩쿠르 우승 이후 그가 한국에서 처음 여는 독주회였다. 지난해 쇼팽 콩쿠르 수상자 갈라 콘서트, 서울시향과의 협연 무대와 달리 그의 연주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는 만큼 음악 팬들의 큰 관심을 받았다. 실제로 지난 11월 롯데콘서트홀이 티켓을 판매하자마자 순식간에 매진됐다.
롯데콘서트홀을 가득 채운 팬들은 조성진이 등장하자마자 열광적인 환호를 보냈다. 아이돌가수 콘서트장을 방불케 하는 열기에도 불구하고 조성진은 특유의 침착함을 잃지 않았다. 건반 위를 질주하며 테크닉의 절정을 보여주는 조성진에게 관객은 시종 압도됐다.
이날 독주회에서 조성진은 베르크의 피아노 소나타 1번과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 제19번, 쇼팽의 발라드 1~4번을 선보였다. 조성진이 2016-2017시즌 독주회에서 연주하고 있는 레퍼토리들이다. 첫 국내 독주회라는 부담 때문인지 조성진의 연주에는 다소 힘이 들어가 있었지만 예전보다 훨씬 강렬하고 대범해졌다.
1부부터 음악 팬들은 예상을 깨는 조성진의 타건에 의아했을 것 같다. 조성진이 들려주는 베르크와 슈베르트는 선율이 강조됐고 드라마틱해졌기 때문이다. 흔히 베르크에게서 기대하는 불안정한 몽환성, 슈베르트에서 기대하는 유려한 서정성과는 다소 거리가 멀었다. 특히 슈베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19번은 여백을 기다리지 않고 휘몰아치는 연주로 관객에게 훅 다가왔다. 조성진이 자신만의 음악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순간이었다.
2부 역시 마찬가지였다. 쇼팽의 발라드 1~4번은 최근 같은 곡이 실린 음반 ‘쇼팽 : 피아노 협주곡 1번과 발라드’(도이치 그라모폰)과도 분위기가 매우 달랐다. 음반 속에서 조성진은 정평이 난 ‘정확한 타건과 명확한 연주’를 보여줬었다. 하지만 이날 조성진은 미스터치 같은 작은 실수는 무시한 채 자신만의 실험에 몰두했다. 그가 만들어낸 쇼팽의 발라드 1~4번은 예전보다 훨씬 구조적이 됐고 선율은 생동감을 띄었다.
조성진이 앙코르 곡으로 들려준 드뷔시의 ‘달빛’과 브람스 헝가리 무곡 1번 연주 역시 선율이 강조되는 드라마틱한 연주로 리사이틀의 전체적인 흐름을 이어갔다. 이날 연주는 앞으로 대형 피아니스트로 성장해갈 조성진을 미리 확인할 수 있는 무대였다. 조성진은 아티스트로서 과거의 자신을 끊임없이 부정하며 새로움을 추구하고 있었다. 다가올 조성진의 전성기가 기다려진다.
한편 이날 연주회는 ‘신드롬’에 가까운 조성진의 인기를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 피 튀기는 예매 전쟁에서 승리한 관객들은 연주회 시작 1~2시간 전부터 롯데콘서트홀을 찾아 사진을 찍는 등 설레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지난해 발매된 조성진의 음반, 메모지, 달력 등 기념상품은 순식간에 팔려나갔다. 준비된 프로그램 1000부가 이날 모두 소진되면서 롯데콘서트홀은 추가로 700부를 긴급 제작하기도 했다.
공연이 끝난 뒤 사인회 줄 역시 길게 늘어섰다. 원래는 시간 제한을 둘 예정이었지만 관객 600여명이 길게 늘어서있자 조성진은 11시를 조금 넘긴 시간까지 모두 사인해 줬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