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수 특별검사팀은 덴마크에서 체포돼 구금기간이 이달 30일까지로 연장된 정유라(21)씨가 자진 귀국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습니다. 바로 그의 19개월 된 아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왜 그럴까요.
특검팀은 오늘 오후 2시쯤 이례적으로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와 서울남부구치소를 압수수색했습니다.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 ‘문화계 황태자’ 차은택씨(이상 서울구치소),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서울남부구치소)이 수용돼 있는 방을 압수수색해 소지품 등을 확보한 것입니다. 일부 수용자들이 공모해 말맞추기를 하는 등 증거인멸 정황이 포착된 모양입니다. 정유년 들어 두 번째 이야기, 공식 수사 14일째(1월 3일 화요일)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 정유라 선택지는 3곳=이규철 대변인(특검보)은 오후 2시30분 정례브리핑에서 정씨 송환 문제와 관련한 예상 절차 3가지를 설명했습니다. ①자진귀국 ②범죄인 인도 청구에 따른 송환 방식 ③여권 무효화 조치에 따른 강제추방.
이 3가지 중 ②범죄인 인도 절차를 밟을 경우 인도심사를 위한 재판절차가 구금 상태에서 이뤄진다고 합니다. 게다가 정씨가 불복하면 그 절차가 길게는 1년 정도 진행돼 아기와 장기간 떨어져 있게 되는 셈이죠. 그건 정씨에게 견딜 수 없는 상황이죠. ③여권 무효화 조치가 되면 오는 10일쯤 여권이 효력을 잃습니다. 다른 나라로 이동하는 게 불가능해져 심리적 압박이 크다고 합니다. 덴마크가 강제추방을 고려하면 우리 정부와 협의해 신병을 인계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①30일까지의 구금 상황을 못 견디는 정씨의 자진귀국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자진귀국 의사를 밝히면 덴마크 법원도 그에 반대할 이유가 없어 신속한 송환이 가능하다는 겁니다. 물론 자진귀국이 최선이라는 건 특검팀의 희망사항입니다. 그 희망대로 될지 지켜보죠.
# ‘주사 아줌마’ 파악하고 있다=이 대변인은 ‘비선 진료’ 등 다른 수사 상황에 대해서도 브리핑했습니다. 청와대를 드나든 ‘주사·기치료 아줌마’의 신원을 파악해 수사 중에 있다고 밝혔습니다. 아직 소환은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들 아줌마는 이영선 청와대 행정관이 2015년 5월쯤 정호성(구속)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의 휴대전화에 보낸 문자메시지 “주사 아줌마 들어가십니다” “기 치료 아줌마 들어가십니다”의 주인공들입니다. 주사 아줌마는 ‘백 실장’으로 불렸다고 합니다.
특검팀은 전날인 2일에는 ‘비선 진료’ 의혹의 당사자인 김영재 성형외과 의사에 대한 수사와 관련해 국민건강보험공단과 건감보험심사평가원을 압수수색했습니다. 그가 진료한 환자들의 내역 등을 확보하기 위해서죠.
# “아들 걱정만 한다”는 정유라=덴마크 경찰에 체포된 정유라씨는 불구속 수사를 보장해주면 자진 귀국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습니다. 덴마크 주재 한국영사와 면담한 결과입니다. 하지만 특검팀은 ‘협상은 없다’고 일축했습니다. 수사 원칙을 훼손하는 ‘특혜’는 없다는 거죠. 시간이 걸리더라도 범죄인 인도 청구를 통해 강제 송환하겠다는 겁니다. 외교부도 정씨에게 여권반납명령을 내렸습니다. 덴마크 주재 최재철 한국대사와 담당영사가 직접 정씨를 면담하고 여권반납명령서를 전달했습니다. 이에 따라 정씨가 1주일 뒤인 9일까지 여권을 반납하지 않으면 그 여권은 효력을 잃습니다.
앞서 덴마크 올보르 지방법원은 현지시간으로 2일 오후 2시(한국시간 2일 오후 10시) 구금기간 연장 여부에 대한 심리를 벌여 정씨 구금기간을 이달 30일 오후 9시까지로 4주간 연장했습니다. 우리 정부의 긴급인도구속 청구를 받아들인 겁니다. 덴마크 담당검사는 한국 정부가 정씨의 인도를 요청하는 최종 공문과 관련 자료를 보내면 그때 송환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했다는군요. 이 같은 덴마크 법원의 결정이 나자 인터폴은 우리 당국이 요청한 ‘적색수배’ 발령을 보류했습니다. 신병 확보 목적이 달성됐다는 이유죠. 우리 경찰청은 3일 이 같은 내용을 인터폴로부터 통보받았습니다.
하지만 정씨는 송환을 피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정씨는 3시간 동안의 법원 심리 과정 및 휴식시간 이뤄진 국내 취재진과의 대화에서도 각종 의혹을 반박하며 자신을 방어했습니다. “엄마가 다 했다” “나는 모른다”는 취지로 발뺌한 것이죠.
정씨의 발언을 요약(연합뉴스)하면 이렇습니다. “덴마크에는 작년 9월에 와서 계속 머물렀다. 독일에는 2주 전에 비자 문제 때문에 프랑크푸르트를 다녀왔다” “(삼성과의 계약 내용은) 엄마가 계약서를 들고 와서 서명하라고 해서 나는 서명만 했다.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 엄마가 계약서의 주요한 내용은 포스트잇으로 가리고 나에게는 사인만 하라고 했다” “(아들은) 19개월이다. 11개월 됐을 때 아빠가 떠났다. 이곳엔 가족도 없다” “(자진 귀국 생각은) 나는 아이 걱정만 한다. 경찰이 내 아이와 머물게 해주면 언제든지 한국에 가겠다. 보육원이든, 사회기관이든, 병원이든 아이와 함께 있게 해준다면 내일이라도 귀국하겠다. 내가 한국에 가서 체포되면 19개월 된 아들을 돌봐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 엄마와 아빠가 이혼했고, 나도 이혼했다”
이화여대 특혜와 관련된 발언을 계속 들어보죠 “(대학 학점 특혜는) 2015년에 난 임신을 해서 학교를 못 갔다. 대학으로부터 F학점을 받았다. 2016년에도 계속 못 나갔다. 그래서 엄마한테 자퇴를 요구했다. 하지만 엄마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2016년에 대학에 딱 한번 가서 최경희 당시 총장과 유철균 교수를 만났다.… 아웃될 거로 생각했는데 나중에 학점이 나와서 의아해했다” “(입학과정은) 나는 모른다. 고등학교에서 승마한 것도 엄마가 시켜서 했다. 나 스스로 한 게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박 대통령을 뵌 것은 아버지가 (비서실장으로) 일할 때였다. 아주 오래전 초등학교 때다”
# ‘구속 2호’ 류철균… 심경 변화 일으킨 장시호=정유라씨에게 학점 특혜를 준 류철균 이화여대 디지털미디어학부 교수는 오늘 새벽 0시30분쯤 업무방해 등 혐의로 구속수감됐습니다.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에 이은 ‘구속 2호’입니다. 특검팀은 오늘 오후 2시 류 교수를 다시 소환해 조사했습니다. 윗선을 캐기 위한 것이죠. 우선 자신에게 정씨 특혜를 부탁했다는 김경숙 전 신산업융합대학장이 다음 타깃이 될 겁니다.
김종(구속)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도 재소환해 조사하고 있습니다. 6번째 특검 출석입니다. 최순실씨 조카 장시호(구속)씨에 대한 삼성 지원 특혜 관련 조사를 계속하는 것이죠. 특검팀은 “삼성 임원진에 대해서는 아직 계획이 정해지지 않았으나 원론적으로 소환조사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조카 장씨는 진술에 약간의 변화가 있다고 합니다. 심경의 변화를 일으킨 모양입니다. 장씨는 또 이화여대 정식 합격자 발표가 나기 전인 2014년 10월 어느 날 정유라씨로부터 ‘이대에 붙었다’는 전화를 받았다는 진술도 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대 누군가가 미리 합격자 정보를 흘린 겁니다. 이것도 수사대상이죠.
한편 국회 국정조사특별위원회는 오늘 전체회의에서 문화체육관광부 조윤선 장관과 김종덕 전 장관, 정관주 전 1차관 등 3명을 위증 혐의로 특검팀에 고발했습니다. 조 장관은 국회 청문회에서 “블랙리스트를 본 적이 없다”고 허위 진술한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박정태 선임기자 jt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