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 강진 그 후... "바뀐 게 없네예"

입력 2017-01-02 17:28 수정 2017-01-02 17:31
약 7000만년 전인 중생대 백악기부터 형성된 퇴적층으로 이루어진 전북 부안군 채석강의 역단층이 과거 이 곳에서 지진 활동이 일어났음을 보여주고 있다. 지진 전문가들은 주기에 따라 반복되는 지진의 성격을 근거로 규모 7.0이상의 지진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운영하는 조선왕조실록에서 검색되는 지진 관련 내용만 총 8782건으로 과거 500년 동안 전국에서 크고 작은 지진이 빈번했음을 알 수 있다. 사진은 니콘 D4카메라로 IOS400 셔터스피드 30초 조리개 2.8에 놓고 144장의 사진을 촬영한 뒤 합성했다.

“아이고 마 난리도 아니였심더, 사람들이 어파지고 기와가 다 무너지가 말로 표현 못합니더. 건물 전체가 흔들렸다 아입니까. 이제 다시는 없어야 될낀데...” 
그날의 상황을 회상하는 김정오(70·경주 황남동)씨는 아직도 자신이 느꼈던 공포가 채 가시지 않은 듯 했다.
"집들마다 절단났다 아이가, 밭일하다 놀래가 마 달려가고...“ 경주 지진 당시 상황에 대해 답하는 황남동 마을에 거주하는 92살 손영임(가명)씨의 얼굴에 불안과 공포가 서려 있다.

지난 9월 12일 경주에서 발생한 리히터 규모 5.8의 강진은 그렇게 대한민국에 충격과 공포를 안겨 주었다. 지난 해 발생한 여진만 556회에 이른다.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강진에 대한 공포와 불안감이 도시 전체를 감싸고 있다.
경주 황남동 일대는 수개월이 지났지만 지진의 흔적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황남동 역사문화미관지구의 한 기왓집에서 햇볕에 말리는 빨래 뒤로 기와가 지진으로 인해 파손되어 있다.

경주에서 발생한 지진은 1978년 지진관측 이후 내륙에서 발생한 가장 강력한 규모의 지진이다. 역대 최대 규모인데다 5.0대 지진이 짧은 시간에 두 차례나 발생했다는 점은 더 이상 대한민국이 지진으로부터 안전한 나라가 아니라는 사실을 대변한다.
주로 2005년 이전에 지어진 서울 동작구 일대 주택 밀집지역. 3층 이상의 건물에 내진설계 의무화가 실시된 것은 2005년이다. 이전 건물들은 내진설계가 적용되지 않아 지진에 무방비 상태다. 해외 지진 사례를 살펴보면 높은 건물보다 낮은 건물이 더 많이 무너져 큰 우려를 낳고 있다.

지진의 여파로 건축물 안전에 대한 불안감은 확산되고 있지만 공공시설물이나 민간 소유 건축물의 내진 설계율은 심각한 수준이다. 국민안전처에 따르면 2015년 12월 조사 결과 공공시설물의 내진 설계 이행률은 42.4%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보다 더 큰 문제는 2005년 이전에 지어진 5층 이하 건물이다. 이 건물들은 내진 설계가 적용되지 않아 지진에 무방비 상태이다. 
지난해 10월 서울시 주최로 진도 6.8 규모의 지진발생을 가정해 실시된 지진방재 종합훈련. 소방방재청의 2010년 시뮬레이션 결과 진도 7.0 규모의 강진이 발생하면 서울에서만 42만명의 인명피해가 발생하고, 재산피해는 총 67만여동 중 76%의 건물이 붕괴 및 부분손실을 입을 것으로 나타난 바 있다.

또한 2005년 이후 내진설계가 적용된 아파트조차 진도 6이상의 강진 앞에서는 속수무책이다. 수도권의 한 유명 건설사 관계자는 “철근이 많이 들어가면 가격이 비싸진다. 우리나라 입찰가로는 현실적으로 6이상의 내진 설계는 무리다”라며 “6이상의 진도에 견딜 아파트가 대한민국에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기상청 지진화산감시센터 관계자가 설명한 경주 지진과 비슷한 형태의 지진 파동 영상.

전문가들은 주기에 따라 반복되는 지진의 성격을 근거로 한반도에 규모 7.0이상의 지진이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지적한다. 고윤화 기상청장은 지난 9월 13일 국회에서 열린 지진대책 당정협의회에 참석해 “향후 규모 5.8에서 6.0 초반대를 넘어서는 지진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경주 황남동주민센터에서 관계자들이 기와 복구 작업에 분주하다.

경주 지진은 다행히 규모에 비해 피해가 적었다. 하지만 그것은 지진의 불확실성에서 기인된 운 때문이다.
지진해일대피소로 지정된 울산시 북구 옛 강동중학교. 경상일보 보도(2016.4.20)에 따르면 내진설계를 갖추지 않고 있다고 한다. 이에 울산시는 "건물이 아닌 운동장이 대피소"라고 해명했다.

지진을 직접 경험한 권오만(76)씨는 “지진 이후 바뀐 게 없네예. 공터에 대피소 팻말 하나 세운 게 전부라예.”라며 혀를 찼다.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지난해 5월 열린 '제6회 튼튼쑥쑥 어린이 안전건강 박람회'에서 아이들이 지진 발생 시 행동요령을 체험하고 있다.

이번 지진을 계기로 유비무환의 자세가 필요하다. 지진대피 요령 등 교육을 강화하고 내진설계 기준도 강진에 맞춰 강화해야한다. 소 잃고 외양간을 고쳐봐야 모든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의 몫이다. 지진은 끝나지 않았다.
대한민국 최초의 천문대인 국보 첨성대는 1300여년의 긴 세월에도 굳건하다. 1978년 지진관측 이후 내륙에서 발생한 가장 강력한 규모의 지진 또한 버틸 수 있었던 것은 1300년을 견딜 수 있도록 건축한 선조들의 내진설계 때문이다. 첨성대를 교훈 삼아 천년이 지나도 무너지지 않는 대한민국 건축의 틀을 다시 짜야 한다. 사진은 니콘 D4카메라로 IOS100 셔터스피드 1/640초 조리개 22에 놓고 300장의 사진을 촬영한 뒤 합성했다.

윤성호 기자 cyberco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