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기고] 함께 또 홀로
허정윤(미국 클레어몬트 신학교 실천신학 박사과정 학생)
몇 년 째 제자리 걸음인 청년 실업률과 꺽일 줄 모르는 물가 상승률, 그리고 현 시국을 살펴보았을 때 생겨날 수 있는 불안감을 생각해보면 놀랄 일은 아니다. 하지만 위로 라는 것이 진정으로 우리가 찾는 것인지는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만약 그 위로가 필요하다면, 어디서 나와야 하는 것인지 등 철저히 해부해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위로를 받고 한걸음 나아서지 못하고, 수동적으로 위로를 받는 현상이 반복될 여지가 있다. 제대로 된 위로라면, 효용이 나타나는 즉시, 사라져야 한다. 그래서 위로를 받은 사람이 이제는 위로없이 스스로 일어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첫째, 다른 사람이 해주는 위로는 한계가 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내가 나 자신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진정한 위로는 내 마음 속에서 나와야 한다. 명상에서도 가장 힘있는 깨달음은 스스로 얻어내는 깨달음이라고 말한다. 스스로 치고 박고, 싸우고, 괴로워하고, 그리하여 철저히 나의 고뇌와 시간으로 빚어진 깨달음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종교가 중요하다.
종교는 나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주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믿으면서, 우리는 우리 내부의 힘을 일으켜 세워나간다. 밤새도록 싸워 천사와의 씨름에서 이긴 아브라함을 생각해보라. 불교에서도 내 안의 부처를 부수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둘째,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우리 마음 속을 들여다 보며 나의 두려움과 고민을 마주할 수 있는 환경이 제공되고 있는가? 내 마음 속을 들여다 보는 것, 어찌보면 사치일 수 있다. 내 마음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여유도 그럴만한 심적, 현실적인 여유가 있어야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우리 사회가 청년들이 스스로를 투명하게 들여다 볼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고 있는지를 재고해 보아야 한다. 남들과 다른 길을 간다고 해서 손가락질하는 분위기나, 질투와 패배감 그리고 위화감이 팽배한 곳에서는 누구도 나 자신을 바라볼 용기를 가질 수 없다. 왜냐하면 두렵기 때문이다.
이 곳, 두려움이야 말로 출판계의 위로시장과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지는 곳일지도 모른다. 이 글을 통해서 나는 절대로 출판계의 위로시장을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그들의 입장에서 따뜻함을 전하려고 하는 것, 그 속에는 분명 인류가 종교와 학문을 통해 지켜온 지혜가 있다. 그리고 그 지혜 속의 위로는 우리가 나아가야 하는 길을 밝혀 주는 로드맵도 될 수 있다.
하지만, 거기서 그치면 안된다는 것을 나는 말하고 싶다. 책을 덮고 나면 이제는 오롯이 투명한 나와의 대화에 들어가야 한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이고 또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인지를 묻고, 세상과 나를 구분하고, 나의 가치관을 정립하고, 나를 만들어가는 것은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그 일을 다른 이 아닌, 내가 해내었을 때만이 진정성이 생긴다. 이 때 바른 종교는 나 홀로 신과의 대화로 인도한다. 그 때, 신과 함께 하면서도, 혼자 걸어 가는 도저히 양립할 수 없을 것 같은 “함께 또 홀로” 의 구도의 길이 실현될 수 있다.
청년들의 의견을 듣는 ‘청년기고’ 코너는 다양한 청년들의 목소리를 담는 코너입니다. “청년의, 청년에 의한, 청년을 위한” 셋 중 하나 이상에 해당하는 모든 기고는 수정 없이 게재하며 국민일보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청년기고 참여를 원하시는 분께선 200자 원고지 6매 이상의 기고문을 김동우 기자 love@kmib.co.kr 에게로 보내주시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