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 일군 네티즌들… 소녀시인 장유진 스토리펀딩 희망

입력 2016-12-30 17:16 수정 2016-12-30 19:09
기적(奇蹟). 상식적으로 생각할 수 없는 기이한 일, 신(神)에 의해 행해졌다고 믿는 불가사의한 현상을 일컫는 말이다. 지난 6개월간 국민일보와 밀알복지재단은 ‘기적을 품은 아이들’이란 이름으로 저소득 장애아동·청소년과 그 가족들을 찾아 나섰다. 현장에서 가장 먼저 접한 단어는 ‘불가능’과 ‘포기’였다. “불가능에 가깝다. 수술해도 식물인간이 될 거다.” “이 아이를 키웠다간 집안이 망할테니 포기해라.” 하지만 삶의 기로에 섰던 아이들과 가족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새로운 기적과 꿈을 마주했다. 2016년의 마지막 날 지금도 가슴에 품은 기적을 삶으로 펼쳐 보이는 이들의 소식을 다시 전한다.

장유진양(오른쪽)이 회복 중이던 지난 8월 어머니 이성자 집사의 부축을 받으며 스프링노트에 시를 쓰고 있다. 밀알복지재단 제공


[국민일보-밀알복지재단 공동 캠페인] 기적을 품은 아이들 그 후…
스토리펀딩으로 희망 잇는 소녀 시인 장유진


선천성 뇌동정맥 기형을 딛고 스프링노트 58권에 1만여편의 시를 써내려간 ‘기적의 소녀 시인’ 장유진(뇌병변 2급)양을 만난 건 지난 8월이었다. 1년 전 뇌출혈과 발작으로 쓰러진 뒤 5개월 만에 기적처럼 깨어나 회복 중이었다. 뇌혈관이 실타래처럼 엉켜 14차례나 뇌출혈을 일으켰다는 유진이는 반가운 웃음으로 기자를 맞았다. 그동아 지나온 역경의 시간이 상상조차 되지 않을 만큼 그녀의 미소는 환했었다. 온몸을 덮친 전신마비 가운데서도 유일하게 움직일 수 있는 오른손을 들어 인사 대신 ‘기자님’이란 제목의 글을 써줬다. ‘나를 취재하러 오신 기자님. 멋지게 취재해 주세요.’

장유진양이 직접 적어 자신의 방에 붙여 둔 ‘꿈 목록.’

‘기적을 품은 아이들’을 통해 가녀린 소녀의 생을 지탱해 준 시(詩)와 사연이 알려지면서 유진이는 ‘시로 희망을 써내려가는 장애인’이란 별명을 얻었다. KBS 뉴스를 비롯해 여러 언론 매체들이 유진이의 꿈을 조명했고 구세군자선냄비, 안산시평생학습관, 문인단체 등 각계각층의 후원도 이어졌다. 보건복지부 산하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공익광고 모델로 발탁돼 어머니 이성자(52) 안산제일교회 집사와 함께 4대 중증질환(암·심장·뇌혈관·희귀난치성질환)의 보험보장성 강화와 복지사각지대 개선의 중요성을 알리기도 했다.

다시 멈춰 버렸던 희망 릴레이

계속 이어질 것 같던 희망 릴레이는 지난 10월 말 또 다시 찾아 온 뇌출혈로 멈춰서고 말았다. 휴진이는 회복세를 이어오며 간신히 떼냈던 콧줄을 다시 붙여야 했다. 자신의 작품 속 ‘코끼리 할머니’와 똑같은 모습이 된 셈이다. 매일 밤 작고 따뜻한 손을 맞잡은 채 기도로 하루를 마감하던 엄마는 지난 성탄절 밤 눈물을 머금고 유진이에게 말했다.

뇌출혈로 다시 의식을 잃은 유진양의 최근 모습. 머리 위엔 이 집사가 적은 ‘기적은 일어난다’는 문구가 벽에 붙어있다. 이성자 집사 제공

“올해는 꼭 유진이랑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말해주며 잠들게 해주고 싶었는데 또 이렇게 성탄절이 지나가네. 그래도 우리 유진이는 착하니까 꿈속에서 꼭 예수님한테 ‘생일 축하해요.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말해줄 수 있겠지.”

엄마는 딸 대신 조용히 펜을 들었다. ‘기적은 일어난다.’ 그리고 유진이의 머리맡에 소중한 친구를 보내주듯 문구를 적어 올려뒀다. 이 집사는 30일 국민일보와 통화에서 “재활치료를 통해 의사표현도 늘고 다시 시도 쓰면서 정말 많이 좋아졌는데 한 순간에 타임머신을 타고 사경을 헤매던 때로 돌아간 것 같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새로 움튼 기적, 스토리펀딩

딸을 향한 엄마의 간절한 기도가 위기 속에서 기적을 움트게 한 걸까. 이번엔 다음카카오가 ‘스토리펀딩(Story funding)’을 통해 유진이 소식 알리기에 나섰다. 지난 27일 시작된 ‘기적을 품은 아이들’ 펀딩은 여러 분야의 펀딩 가운데 가장 높은 관심을 받으며 이틀 만에 목표 모금액의 45%를 달성했다(storyfunding.daum.net/episode/16850).

모금된 후원금보다 더 눈에 띄는 건 300명 넘는 후원 참가자들의 응원 메시지였다. ‘아줌마 제 아들도 유진이와 같은 병으로 수술을 했는데 기적처럼 잘 생활하고 있어. 기적을 믿고 함께 기도하자.’ ‘유진아 포기하지 않는 너의 모습에 정신을 차렸어. 희망을 줘서 고마워.’ ‘끝까지 포기하지마. 유진 어머님 힘내세요.’ ‘얼른 시 잘 쓰는 예전 모습으로 돌아오길 응원할게’…. 진심을 담은 격려가 줄을 이었다. 밤새 딸 곁을 떠나지 못하는 이 집사는 “유진이와 제게 말로 다할 수 없는 위로가 됐다”고 했다. 그리곤 “오늘 밤엔 응원글을 하나하나 유진이 귀에 들려줄 것”이라고 했다.

정형석 밀알복지재단 상임대표는 “국내 중증장애아동의 절반 이상이 저소득 가정 출신이어서 부모가 의료비를 감당하지 못해 치료 중단 위기에 처해 있다”고 현실을 전했다. 이어 “수술이나 치료만으로 장애아동이 비장애인이 될 순 없지만 치료시기를 놓치지 않고 건강악화를 막는 게 기적의 출발점”이라며 “위로와 격려를 통해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심어주는 일은 결코 포기할 수 없다”고 힘을 주어 말했다.



스토리펀딩이란

스토리펀딩은 뉴스 콘텐츠를 넘어 캠페인 출판 음악 영화 신기술 이슈 등을 주제로 창작물을 만드는 사람들이 이야기를 소개하고, 자금제공(펀딩)을 받을 수 있도록 참여의 폭을 넓힌 플랫폼이다. 이를 통해 콘텐츠 생태계를 확대하는 것은 물론 더 많은 창작자와 후원자를 연결하고 소통의 장을 만들어줌으로써 후원자 또한 창작과정에 기여할 수 있도록 돕는다. 지난 1년 동안 900여명의 창작자들이 자신의 꿈과 비전을 이야기로 풀어냈으며 26만7000여명의 후원자들이 동참해 83억원 이상의 후원금이 모아졌다.

캠페인 분야 스토리펀딩은 저소득층 장애인 가정의 현실, 법적 테두리를 벗어난 외국인 노동자가 당면한 위기, 위안부 할머니를 향한 응원, 임금체불 아르바이트 직원 돕기 등 우리 사회의 다양한 단면을 보여주고 후원자들이 직접적으로 그들을 응원하는 도구가 돼준다.

특히 후원과 함께 댓글로 전달되는 응원 메시지는 수혜자들에게 물질후원만으론 체험할 수 없는 특별한 경험을 제공한다. 이 같은 경험은 ‘불가능’ ‘포기’란 단어에 익숙해져가던 수혜자들의 삶을 ‘희망’ ‘용기’로 전환시키며 감동을 주고 있다.

최기영 기자